저와 친구 둘이 예약한 비행기는 아침 7시 5분이었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가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의 대부분을 계획한 친구 A가 인천공항에 가서 밤을 새자고 하더군요. 인천공항에서 밤을 샌다니. 해외여행에 문외한인 저는 그것이 가능한지 몰랐습니다. 친구 말로는 인천공항만큼 밤새기 좋은 공항이 없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친구 말에 따라 저녁에 인천공항에 가기로 했습니다.
인천공항에 가기 전 학교 앞 순대국 집에서 든든한 국밥 한 그릇 먹은 뒤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습니다. 당시 각자의 짐은 트렁크 하나에 배낭 하나씩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이고 4박5일 정도 되는 일정이니 이정도 짐은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후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줄이는 것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쨌든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대충 밤 9시였습니다. 그때부터 길고도 지루한 밤 새기가 시작되었죠.
처음에 한 시간은 열심히 시답잖은 농담을 하다가 그마저도 질려서 이곳저곳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 친구는 오늘까지라며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선물해줬습니다. 당시 아마 스타벅스 매장 종료 시간이 한 30분 남았었는데 스타벅스 매장이 저희가 있는 좌석의 완전 반대편이라 열심히 뛰어갔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천공항이 그렇게 넓은지 처음 알았습니다. 핫초코를 마시며 선물해준 친구한테 인증샷까지 보내고 나니 다시 지루함이 찾아왔습니다. 다들 각자 자신의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봤고, 저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3권≫을 읽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고 새벽 늦은 시간이 되면 잠이 올 줄 알았는데 전혀 안 오더군요. 잠자기를 포기하고 항공사 탑승 수속하는 곳 앞에 가서 진을 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민폐 아니냐고요? 놀랍게도 그 시간엔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는 우리와 같은 승객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수속해주시는 항공사 직원 분들의 첫 출근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몇몇 승객들과 더불어 수속하는 곳 앞에 앉아 트렁크에 기대어 쉬기도 하고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공항 바닥에 대자로 누워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인천공항 바닥에는 난방이 되는 곳이 많아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꽤 따뜻했습니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나고 직원 분들이 오시자 저희는 수속을 마쳤고,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탑승구로 향하는 길에 수속을 받는 줄을 보는데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항공사당 100명 이상씩 수속을 위해서 줄을 서고 있더라고요. 몇 백 명 이상씩 기다리는 곳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인천공항에서 밤새기 전에는 고작 일본을 가기 위한 수속을 밟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릴까 싶었지만, 밤새고 나서 그 광경을 보니 밤을 샌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믿기지 않는 광경입니다. 새벽 6시도 안 된 시각에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늘어선 사람의 행렬이라니.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행렬이죠. 거기에다 이때는 2019년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이 불매 운동으로 번지며 일본으로 가는 해외여행 숫자가 급감했던(그래도 순위권 안에는 있었지만) No Japan 이전의 시절이라 가볍게 해외여행을 가려는 이들이 일본으로 많이 향했다고 생각합니다.
길고 긴 행렬을 지나쳐 저희가 타려는 비행기 탑승구 앞에 도착하니 아직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잠을 청했고, 저는 여행의 설렘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해 책을 조금씩 보다가 그마저도 집중이 되지 않아 탑승구 주변을 계속 돌아다녔습니다. 찰나가 영원 같았던 설렘과 긴장의 순간이 지나고 어둠이 조금씩 걷히는 시간이 되자 저희는 비행기에 올라탔고 비행기는 패기 가득한 20대 초반 세 명의 여행객을 바다가 둘러싼 간사이 국제 공항에 데려다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