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날의 소나무, 이인상의 <설송도(雪松圖)>

by baekja


설날 아침, 여느 휴일과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지만, 밖을 보니 풍경이 다르더군요. 매일 보는 풍경이라면 갈색이어야 하는 아파트 지붕이 흰색이었습니다. 중부지방에 내린 대설주의보가 정확히 맞았는지 아파트 단지 주변에 눈이 한가득 쌓였습니다. 무척 많이 내린 눈에 어린아이처럼 신나 아침을 먹고 아파트 단지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이미 저보다 아침을 더 빨리 먹고 눈사람을 만들어 놓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보물찾기하는 마음으로 아파트 단지 곳곳에 만들어진 눈사람을 찾고 나서 조용히 단지의 설경을 둘러보는데 푸른 잎 위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소나무의 모습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는 그저 외형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옛날 선조들은 눈 내린 소나무의 모습을 외형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더우면 꽃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구천에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의 4연입니다. 춥고 눈 오는 날에도 푸른 잎을 뽐내는 소나무를 곧은 절개를 가졌다고 표현하며 칭찬하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선조들은 눈 쌓인 소나무의 외형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이 내림에도 꿋꿋이 버티고 서서 푸른 잎과 곧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소나무의 특성을 아름답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소나무의 특성은 시로만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림으로도 표현되었죠. 대표적인 예로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의 <설송도(雪松圖)>가 있습니다.



영・정조 시대 최고의 문인화가로 꼽히는 이인상의 대표적인 설송도를 보면 구도가 무척 파격적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화가들의 문인화와는 달리 소나무의 모습을 확대하여 전면에 내세워 소나무의 전체 모습이 화폭에 드러나지 않고 일부만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한, 곧은 소나무에 굽은 소나무를 교차시켜 그리는 이인상이 소나무를 그릴 때 즐겨 쓰던 방법으로 소나무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나무의 뿌리는 평범한 땅이 아니라 날카로운 윤곽선을 가진 돌에 박혀 있어 그 강고한 곧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설송도의 바탕을 자세히 보면 다른 작품들보다 먹의 얼룩짐이 심하고 흰색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바탕 종이 위에 무언가 두텁게 발라놓았기 때문이죠. 정확히 무엇을 발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규소 성분이 다량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덕분에 작품에 문기(文氣)가 훨씬 강하게 느껴집니다. 소나무와 돌에서 느낄 수 있는 강직함과 변치 않는 고고함과 같은 기운이 더 잘 느껴지는 것이죠. 이 정도로 문기가 잘 느껴지는 그림은 흔치 않았습니다. 시・서・화(詩・ 書・畵)에 있어 문자향(文子香) 서권기(書卷氣)를 무척 중요시했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이인상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하기도 했습니다.


“이인상의 예서법(隸書法)과 화법에는 모두 문자기(文字氣)가 있으니 이를 시험 삼아 관찰[試觀]해봄으로써 문자기를 갖춘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최고의 문인이라 불렸던 김정희의 평가를 읽고 <설송도>를 보아도 사실 눈과 소나무를 잘 그렸다는 느낌 정도만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문인화를 보고 문기를 느끼라고 하면 될 리가 없죠. 지금 당장 <설송도>에서 풍기는 문기를 온전히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 일부라도 느끼기 위해서는 이인상의 삶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인상은 1710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관인 전주 이씨 밀성군파(密城君派)는 당대의 명문 중의 명문으로, 다른 전주 이씨와 구분하여 완산(完山) 이씨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고조부인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는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사람으로 친명배청(親明排淸)을 강력하게 주장하다 청나라에 억류된 적이 있어 노론 사회에서 그의 지조와 정치적 입장으로 칭송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그의 자손들은 크게 번창하여 그의 자손들은 3대에 걸쳐 대제학을 지내고 5명의 정승을 배출했습니다. 다만, 이인상의 증조부 이민계(李敏啓)가 서자였기 때문에 이인상 역시 서출 신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서출 신분이었으나 노론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가문의 방계였기 때문에 고조부로부터 내려오는 친명배청 사상을 무척 중요시했습니다. 아예 자신들이 명나라의 의지를 잇는 유민(遺民)들이라 생각하는 유민 사상도 가지고 있었죠. 유민 사상을 내세우지 않는 남인들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며 같은 자리에 있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이러한 완고한 모습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꼰대’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는 자신의 사상을 지키며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고고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와 같은 서얼부터 정승까지. 그의 학문과 인품을 흠모하여 그와 교류하고자 했습니다.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하여 도덕적 정당성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삶은 사실 말뿐이었다면 그의 주변에 그렇게 사람이 넘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의 강직한 삶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그의 길지 않은 관직 시절 중 사근역(沙斤驛, 지금의 함양) 찰방(察訪, 조선시대에 각 도의 역참을 관장하던 종6품의 외관직)으로 일하던 때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조선 후기의 마지막 전성기인 영·정조 시대라고 하나 지방에서는 여전히 비리가 많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일을 원칙적으로 처리하면서 그런 비리를 척결하고, 더 나아가 먹을 것이 없어 가난한 이들을 위해 관찰사 등에게 건의해 쌀을 더 받아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의 편지에 담겨 있죠. 다만, 부러질 줄 모르는 강직함이 있다 보니 위든 아래든 이인상의 주변에서는 갈등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갈등들은 이인상이 관직에 질리게 만들어 후에 은거를 하게 하는 계기가 되지요. 어쨌든 그의 원칙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은 다른 이들과는 확실히 달랐던 모양입니다. 후에 이덕무(李德懋)가 사근역 찰방으로 부임하여 역대 사근역 찰방의 이름과 임기를 기록해둔 <역대선생안(歷代先生案)>을 쓰며 백성들에게 근래 가장 일을 잘했던 찰방이 누구냐고 묻자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인상이라고 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가 말로만 도덕적 정당성을 외치지 않았음이 증명됩니다.


이런 고매한 인품과 원칙주의적인 성격이 그의 행동과 삶 전체에 짙게 배어있듯이 그의 그림에도 이런 그가 추구하고자 한 문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가 김상숙(金相肅)의 글씨를 보고 평한 글을 보면 그가 그림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문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고인들의 묘처는 졸(拙)한 곳에 있지 교(巧)한 곳에 있지 않고, 담(澹)한 곳에 있지 농(濃)한 곳에 있지 않다. 근골기운(筋骨氣韻)에 있지 성색취미(聲色臭味)에 있지 않다.”


그는 교한 것보다는 졸한 것을 추구했고, 농한 것보다는 담한 것을 추구했으며, 성색취미보다는 근골기운을

추구했다. 여기서 졸은 기량을 튼실하게 갖추고 있지만, 이를 과하지 않게 표현하는 천연스런 경지이고 교는 피상적인 차원의 기교입니다. 담은 담박(澹泊)한 것이고 농은 농염(濃艶)한 것을 의미합니다. 근골기운 중 근골은 그림의 근육과 뼈가 긴장감 있게 중심을 잡으며 조화를 이루고 탄력 있는 힘을 갖춘 상태이며, 기운은 화가의 인품이 반영되어 생겨나고, 필묵의 운영하는 기량에서 찾을 수 있는 그려야 할 대상의 개성 또는 생명이나 정신을 가리킵니다. 성색취미는 소리, 현상, 향기, 맛을 나타내는 말로, 부수적이고 피상적인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인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기교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림에 내재되는 정신적이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이 그림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것이 바로 문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삶과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그의 <설송도>에 드러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푸른 잎을 자랑하는 굳게 선 소나무의 모습과 그 소나무가 오랜 시간 서 있을 수 있도록 강건하게 버티고 있는 돌의 모습은 바로 그의 원칙적이고 지조 있는 삶을 표현하는 소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소재들의 아름다움을 넘어 소재들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인 속성이 이인상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본질적인 주제가 되는 것이겠죠. 즉, 그가 살아왔고 추구했던 삶의 방향이 눈서리 맞은 소나무와 돌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소나무와 돌을 아무리 잘 그렸다 해도 기교의 아름다움에만 머무르면 소재가 가진 내재적인 본질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졸, 담, 근골기운을 추구했습니다. 소나무와 돌을 그저 아름답게만 그려놓으면 그것들이 가진 본질은 드러나지 않죠. 그의 필력은 그런 본질을 무척이나 잘 드러냅니다. 구도는 파격적일지 몰라도 그림에 사용된 먹의 풍기는 분위기는 파격적이라기보다는 고요하고 조용합니다. 이런 고요함과 조용함은 그림 자체와 그림에 그려진 자연, 그림을 그려낸 사람의 본질을 합일하여 범인으로서는 닿을 수 없는 문기를 은은하지만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기가 느껴지는 그림 속 소나무를 통해 이제 우리는 이인상의 삶이 보이고 느껴집니다. 하얀 눈이라는 고난을 버티고 외롭지만 굳건하게 서있는 소나무의 너머에 자신이 추구하는 성리학적 도덕적 삶의 원칙 아래 뜻을 굽히지 않았던 한 문인이 보일 것입니다. <설송도>의 소나무는 이인상이고, 이인상은 곧 소나무입니다. 이제 우리는 <설송도>의 소나무의 표피적인 아름다움 속에 감추어진 한 문인의 의지와 삶이 드러내는 내재적이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흠모하며 교류했던 많은 사람들이 증명하듯 <설송도>의 소나무와 일체였던 그의 삶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이상, 미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소나무에 쌓여있던 눈은 녹았습니다. 여전히 솔잎은 푸르고 소나무는 꺾이지 않고 서있습니다. 이런 소나무를 보며 선조들이 소나무를 보고 이러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피상적인 지식들만이 제 머릿속을 맴돕니다. 소나무와 같은 사물에 자신의 본질과 삶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야 할까요? 그러한 고민들이 담긴 문인화는 여전히 제게는 생경합니다. 그래도 그러한 고민 끝에 만들어진 문인화가 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피상적인 것을 넘어 내적인 것을 추구하고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그를 표현하고자 했던 사대부 문인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이 또한 한국의 미 중 하나라는 것을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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