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의 매일 집 앞 도서관을 다닙니다. 도서관을 가는 길은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등굣길이었고, 친구들과 놀러나가던 길이었으며, 엄마 심부름으로 마트를 가는 길이도 했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그 길의 빛바랬지만, 따스한 추억만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들입니다. 보통은 그 추억들을 잊고 살지만, 갑자기 추억들이 떠오르는 때가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별 생각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때가 딱 그랬습니다. 두리번거리다 제가 다니는 길옆에 서있는 돌담이 확 눈에 들어왔습니다. 20년을 넘게 그 모습 그대로 서있는 담은 콘크리트 기와가 씌워져있고, 벽체에는 벽돌모양의 직사각형에 돌이 몇 개씩 박혀져 있었습니다. 그 돌이 박힌 담을 보자 초등학교 때 돌을 박은 개수에 규칙성이 있나 하면서 하나하나 세어보았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따스한 추억이 남아있어 정감은 가지만, 그리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이 담을 보며 아련한 과거에 빠져있다 문득 담을 아름답게 꾸며둔 궁궐의 꽃담이 생각났습니다. 제 오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담과 궁궐의 담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의 격은 분명 다르지만, 일상의 평범한 담을 새롭게 변화시켜 준다는 데서 분명히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궁금해졌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꽃담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요?
꽃담은 각종 무늬로 치장하여 아름답게 쌓은 담이라고 보통 정의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꽃담의 역사는 무척이나 오래되어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33 <옥사(屋舍)>에 “진골 계급 주택의 담장은 석회를 발라 꾸미지 못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죠. 이를 통해 진골보다 높은 성골은 석회를 발라 집을 치장하였음을 알 수 있기도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장가장(張家墻)이라는 유명한 꽃담이 있어 중국에서 온 사신들도 궁궐의 꽃담보다 월등하다고 칭송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검소한 것을 숭상하면서 화려한 꽃담은 저절로 그 기세가 꺾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벽돌로 만든 꽃담보다는 흙과 돌, 기와나 파편들을 사용하여 은은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꽃담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궁궐에서는 화려한 꽃담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꽃담은 임진왜란 이후로 계속된 전란과 외세의 침입으로 많은 수가 건설되지는 못하였지만, 꽃담의 명맥이 단절된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고궁이나 고택, 고찰에 가면 다양한 꽃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흔히 꽃담이 ‘울타리’로 표현되는 담장으로만 만들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건물의 벽체를 치장한 것도 꽃담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담장이나 벽체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무늬 놓는다.’고 하며 문헌에는 회면벽(繪面璧), 회벽화장(繪璧華墻), 화문장(華紋墻, 畵紋墻, 花紋墻), 영롱장(玲瓏墻)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이런 모든 말들을 꽃담이라고 하나 지방마다 다르게 부르기도 합니다.
꽃담은 쌓는 재료의 종류에 따라 돌각담, 토담, 토석담, 사고석담, 영롱석담, 화문장으로 나뉩니다. 돌각담은, 제주도 민가의 돌담처럼 아래에 큰 돌을 놓는 것을 시작으로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놓아 만드는 돌담을 말합니다. 토담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흙을 일정한 덩어리의 크기로 만들어 쌓아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흙을 거푸집에 넣어 고정시킨 뒤 쌓아올리는 것입니다. 토석담은 이름처럼 흙과 돌을 이용해 쌓는 담으로 자연석으로 쌓는 것과 인공석으로 쌓는 것,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사고석담은 돌의 크기를 일정하게 다듬어 사용하는 것으로 돌을 각 모서리를 한 뼘 정도의 크기를 가진 정사각형으로 다듬어서 쌓은 담입니다. 영롱석담은 영롱석(玲瓏石)을 사용하여 쌓는 담으로 영롱석의 정확한 정의는 말하기 힘드나 면이 반반한 돌을 넓게 포괄하여 말하는 듯합니다.(수석(壽石)으로 자주 사용되는 아름다운 돌 중 한 종류를 영롱석이라 지칭하기도 합니다.) 영롱석담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낙선재 밑의 꽃담이 있습니다. 화문장은 담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만드는 꽃담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꽃담은 다양한 종류의 꽃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같은 무늬를 가진 꽃담이 없고, 비슷한 무늬를 가진 꽃담이라 하더라도 그 표현방법이 천차만별이라 꽃담마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복궁, 창덕궁과 같은 궁궐부터 시작해서 관의 건물인 수원화성, 사대부들의 개인 집인 안동 하회마을, 운강 고택, 장흥 위씨 고택 등과 대흥사, 낙산사, 송광사 등 깊은 역사를 가진 고찰까지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꽃담을 가지고 있죠. 그 많은 꽃담들을 다 다루기에는 너무 길고, 제 능력도 그에 미치지 않으니 저는 경복궁 자경전(慈慶殿)의 꽃담을 중점적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경복궁 자경전의 꽃담을 설명할 때 늘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보물 제810호인 자경전 북쪽 담장의 십장생 굴뚝입니다. 장수를 의미하는 열 가지 생물과 무생물을 십장생이라고 합니다. 해, 구름, 산, 바위, 물, 사슴, 학, 거북, 소나무, 불로초가 여기 속하고 가끔 다른 것들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십장생들이 그려져 있는 굴뚝은 연기가 빠져나오는 구멍인 연가(煙家)가 없다면 굴뚝이라는 것을 알기 힘들 정도로 무척 아름답습니다. 붉은색 벽돌로 벽체의 틀을 구성하고 십장생 무늬를 새긴 돌을 벽돌로 만들어진 틀에 끼워 넣은 후 바탕을 삼화토(모래, 흙, 강회를 1:1:1의 비율로 섞어서 만든 고급의 건축 재료)를 채워넣은 방식으로 만든 것이죠. 한 폭의 병풍 회화 같은 십장생도에만 눈이 팔려 많은 이들이 잘 눈치 채지 못하지만, 십장생도 위 아래로 새겨진 부조도 눈여겨 볼만합니다. 위의 세 개 중 가운데는 굴뚝의 화기(火氣)를 억제하는 해태이고, 양 옆은 불로초를 입에 물고 있는 학입니다. 아래의 두 동물은 해태와 마찬가지로 화기를 억제하고 삼키는 불가사리입니다.
굴뚝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을 감상하고 자경전을 한 바퀴 둘러보면 온통 꽃담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직선과 면으로 만들어진 각종 무늬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육각형 무늬인 귀갑문(龜甲紋)부터 ‘수복강녕(壽福康寧)’과 같은 글자를 새긴 무늬 등 벽돌로 점과 선을 만들어 새긴 무늬가 자경전의 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자경전의 꽃담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경전 서쪽 담장의 꽃담입니다.
십장생 굴뚝처럼 벽돌로 만든 틀에 형상을 새긴 돌을 끼워 넣은 꽃담입니다. 대나무, 영산홍, 국화, 석류, 모란, 복숭아 등 다양한 모양들이 장식적인 무늬를 넘어서 사실적인 회화로 그려져 무생물인 벽을 생물들이 가득한 생동감 넘치는 정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꽃담의 그림들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월매도입니다. 보름달을 배경으로 고고하게 서 있는 매화에 한 마리 작은 새가 날아와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담장이 그려진 곳이 달이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이상을 꿈꾸는 현실이건 아름다운 매화와 손에 닿는 달이 있는 이상이건 그림에서 풍기는 고고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은 매화 향기처럼 저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습니다. 화려한 꽃담이지만, 전혀 사치스럽지 않고 오히려 화려함에서 느끼지 못하는 고요한 고상함을 가지고 있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붉은 벽돌이 들어간 화려한 꽃담만을 소개했지만, 궁궐이 아닌 곳에서는 벽돌은 비싼 재료라 많이 쓰지 못하고, 흙과 돌, 기와와 그 파편만으로 만든 꽃담이 많습니다. 언뜻 보면 소박해 보이나 그 속에 무늬의 화려한 미를 갖추고 있고, 무늬의 화려함 속에 자연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소박하고 검소하면서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미를 갖춘 무수히 많은 독창적인 꽃담들을 보고 있으면 눈이 매우 즐거워집니다. 이를 아마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 온조왕 기사에서 김부식이 백제문화를 표현한 여덟 글자가 아닌가 합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檢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꽃담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런 아름다움을 우리가 사는 주변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이 무의식 속에서 이어져 제가 도서관을 다니면서 늘 보는 장식된 돌담을 볼 수 있는 것이겠죠. 다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런 전통을 잊고 사는 듯합니다. 무늬 없는 콘크리트나 서양 장식으로 된 철제 울타리로 아파트 단지의 담을 구성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겠지요. 분명 예전 방식처럼 기와와 돌, 흙만을 이용해서 꽃담을 구성하는 것은 현대 한국의 환경과 어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꽃담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듯 아파트가 가득한 지금의 한국에도 어울리는 재료와 기법을 사용한 꽃담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저 무늬 없는 콘크리트나 틀에 박힌 문양이 새겨진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저의 적은 지식으로는 정확히 어떤 문양을 새기고, 어떤 재료를 써서 주변의 환경과 어울리는 꽃담을 지어야 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한 번 쯤 고민해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많은 이들의 고민과 생각이 모이면 꽃담이라는 전통의 부활과 동시에 틀에 박혀버린 도시 디자인에도 생동감을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이루어진다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한국의 미를 곳곳에서 쉬이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