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

2023.02.09 새벽

by baekja

답답하다. 그저 알 수 없는 답답함만이 가슴을 짓누른다. 소리를 질러보고 싶지만, 지금은 고시원 안. 남들의 눈초리와 새벽의 침묵이 무서워 나오는 소리를 안으로, 안으로 삼킨다. 거리로 나가본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리지만, 아파트와 자취방이 주변에 가득한 이곳은 내 안에 가득 찬 소리를 내뱉기엔 너무 좁다. 밖으로 나와도 갑갑함만 는다. 당장 내일이라도 이 망할 고시원 주변을 떠나고 싶지만, 내일의 돈벌이가 있고, 내일의 돈벌이가 없으면 모레의 돈벌이가 있다. 꼬박꼬박 나오는 알바 월급은 이 생활의 유일한 기쁨이자 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지만, 이 생활에서 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다.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얼마 전부터 직장에서 매순간마다 피로를 느끼고 있다. 잠을 충분히 자고 전날 아무리 쉬어도 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딱딱한 스프링이 갈비뼈를 누르는 불편한 고시원 침대 때문일까? 글쎄, 그렇다면 고시원 생활을 좀 했을 때부터 피로를 떨쳐내지 못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관성적으로 마셔온 술이 결국 간을 망쳐버린 것일까?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지만, 매일 술을 먹는 것도 아니고 점차 줄여온 술이 나를 망쳐버렸다고 하기엔 조금 모자라다. 그럼 왜 나는 늘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몇 번을 되물어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싫다.


답답하다. 극단적으로 감겨오는 눈과 피로가 가득한 몸마저 잠마저 들지 못하게 할 정도로 무척 답답하다. 깊고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꽉 막힘이 몸을 잠식한다. 이런 온 몸을 뒤덮는 답답함에도 이유를 말할 수 없음은 반 년 동안 책을 손에서 놓은 탓일까? 단어들로 풀어보면 될까 싶어 학교 근처 편의점에 앉아 타자기를 두들겨보지만, 정작 깊은 곳은 건들이지 못한다. 답답한 나를 설명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답답하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해가 지면 탄산음료를 찾는 일을 반복해 오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1+1이벤트를 하는 탄산음료를 들고 와서 ‘치익’하는 소리를 들으며 시원하게 밀려드는 보글보글한 액체를 마시면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씻어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몸에 좋지 않음은 알면서도 탄산음료를 마시는 밤들은 늘어나고 내 좁은 고시원 방에는 페트병만 늘어난다. 발에 치이는 빈 페트병들은 마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 나 같다. 쌓이고 쌓인 방황하는 페트병들을 정리하는 날은 묵은 때를 벗길 때처럼 시원하다. 그 덕에 잠시 기분이 좋아지지만, 재활용센터로 길을 잡은 페트병과 달리 나는 여전히 길을 잡지 못한다.


이런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한 작년 11월 말, 나는 편하고 안정적인 지금의 알바를 평생하지는 못하리라고 깨달아버렸다. 몸은 꽤 피곤하지만, 휴일마다 충분히 쉴 수 있고, 적지 않은 월급이 들어오는 이 알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 일을 더하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생활 안에서 내가 정말 원하던 길은 무엇인지 잊어버린 나를 발견하는 것만큼 미쳐버릴만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2월 말까지만, 이 일을 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잊고 지낸 7개월, 그 시간을 투자해 모은 돈은 나에게 한 달을 벌어주었다. 나를 잊어버리게 만든 7개월이 다시 나를 찾을 한 달을 만들어주었다는 건 우습지만, 사실이다. 현실은 냉혹하고, 이상은 달콤하다. 간신히 버텨낸 7개월 끝에 봄의 시작이라는 듯 3월이 눈앞에 있다. 하지만, 그 3월의 봄 사이에 가시가 가득할 지는 아직 모르겠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눈을 키우려했던 한 사학도는 이제 한 달 뒤의 자신조차 예측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아니 한 시간 뒤의 나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원래라면 나는 이 시간에 모든 시름을 잊고 딱딱한 매트릭스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어야 했으니까.


이제 추운 밤을 뚫고 원래 있었어야 할 고시원의 방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내 방이지만, 옆방의 코고는 소리까지 들리는 내 방 같지 않은 내 방. 그곳에서 답답함을 안고 눈을 감고 꿈나라로 가야지. 오늘 밤은 좋은 꿈만 가득하길. 적어도 꿈속에서 만큼은 답답하지 않은 나이길. 고뇌를 안고 차가운 새벽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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