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無等山) 여행기

by baekja

요즘 주 5일 알바를 하느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저 학교를 다닐 때의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매일 일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가 쌓이고 있죠. 육체적 피로는 쉬면 해결되었으나 정신적 피로는 그렇게는 안 되었기에 가을의 선선함이 제 피부에 처음 와 닿는 10월 초 저는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0월 말이나 11월초 쯤 단풍놀이를 테마로 여행을 가고자 했습니다. 정작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계획을 짜는 것은 너무 귀찮더군요. 그래서 잠시 미뤄두고 있었는데 요즘 등산에 푹 빠진 친구가 등산이나 같이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경주 남산과 광주 무등산이 후보지로 올라왔습니다. 둘 중 경주 남산은 나중에 답사의 느낌을 가지고 제대로 가보고 싶어서 포기하고 광주 무등산을 선택했습니다.


여행은 1박 2일 일정으로 계획했고, 친구와는 오후 3시 30분쯤 용산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일요일의 용산역은 사람이 무척 많아 복잡했지만, 간만에 친구와 여행을 같이 간다는 설렘은 그런 복잡함마저도 신경 쓰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친구와 만나 인사를 하고 무궁화호에 올라탔습니다. 용산역에서 광주까지는 무궁화호로 대략 4시간 40분. 꽤 길어 지루함이 느껴질만한 시간이지만, 친구와 수다를 떨고, 유튜브를 보고, 독서를 하다 보니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습니다. 별일 없을 것 같은 평범한 기차 여행의 평온이 잠시 깨진 것은 기차가 서대적역에 도착했을 즈음이었습니다.


어떤 예순에서 일흔 되어 보이는 남성이 취한 상태로 기차에 올라타 한 자리에 앉더군요. 다만, 그 자리는 주인이 있는 자리라 그 자리의 주인과 취한 남성 사이에서 말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주변의 승객들이 전부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 달려왔고, 남성의 표를 확인하고는 입석이라며 몇 분의 실랑이 끝에 남성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남성은 논산역에서 내려야 했는데 어찌나 취했던지 논산역이 다가오는데도 열차 객실의 사이 칸에 누워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를 않더군요. 승무원이 도움을 요청하여 저와 다른 남성 승객이 팔을 한쪽씩 잡고 문 앞에다 데려다 놓았습니다. 승무원이 논산역의 역무원을 불러 취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서비스업은 참으로 고된 것임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잠깐의 사건을 제외하고 기차는 아무 문제없이 달려 광주역에 저와 친구를 내려주었습니다. 광주는 세 번째 방문으로 2020년에 5.18 답사로 한 번, 2021년에는 광주 비엔날레로 한 번 방문했었습니다. 2022년에는 무등산 등반을 위해 방문했으니 목적이 다 다른 방문으로 매년 광주를 방문하게 된 것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좀 익숙한 광주역을 한 번 둘러보고 광주역 앞의 편의점에서 저녁거리를 사고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숙소에서는 저녁을 먹고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11시쯤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6시에 잠에서 깨서 6시 30분에 숙소를 나왔습니다. 무등산 원효사 코스 입구로 데려다주는 1187번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습니다. 무등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해발 1187m인지라 버스 번호를 1187로 붙였다는 그 버스에는 사람이 많이 타진 않았지만, 대부분 등산객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버스에서는 짤막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어젯밤 무궁화호가 탈선했다는 뉴스였습니다.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뉴스를 봤는데 이것이 집에 갈 때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저와 제 친구는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버스는 약 40분을 달려 무등산 쉼터 건물이 있는 종점에 등산객들을 내려다주었습니다. 완만한 능선 아래로 보이는 울긋불긋한 산의 옆면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정말 간만에 제가 여행을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 설레고 신나고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들뜬 마음을 안고 포장도로 옆 샛길처럼 나 있는 무등산 옛길을 타고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KakaoTalk_20221108_193356307_14.jpg 원효사 정류장 옆의 무등산 쉼터


무등산은 해발 1000m가 넘어 우리나라에서는 꽤 높은 산으로 분류되지만, 등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평탄한 오르막길을 쉬엄쉬엄 두 시간 오르고 평탄한 내리막길을 쉬엄쉬엄 두 시간 내려오면 될 뿐이죠. 가끔 몇몇 산에서 해야 하는 사족 보행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조금 큰 동네 뒷산의 느낌이 강합니다. 특히 원효사 코스는 산길이 꽤 심심한 편이어서 친구는 무등산의 원효사 코스를 두고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교수님의 강의가 재미는 없는데 진도는 잘 나간다.’


정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간 쉼터 지점인 목교 가까이 와서는 고도가 높아 그런지 단풍이 다 져 있었는데 이를 보고 친구가 한 말은 압권이었습니다.


‘나무들이 권태기가 와서 단풍이 없는 거야. 다른 높은 산들 가면 안 이럴 걸?’


그 말을 듣고 어찌나 웃었던지. 산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광주의 풍경도 나무에 잘 보이지 않아 한참을 그저 오르기만 했는데 해발 800m 이상 지점인 목교에 다다라서야 광주의 시가지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등산에서 뿜어져 나온 산줄기들이 광주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오랜 기간 무등산을 어머니 산이라고 불러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분지의 모습이 아주 잘 드러나는 광주의 풍경을 제하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심 쪽 하늘에 보이는 하나의 선이었습니다. 마치 바다의 수평선을 연상케하는 하늘의 선을 보고 아름답다며 감탄하고 있는데 친구가 미세먼지라고 제 감동을 깨더군요. 미세먼지에 뒤덮인 도시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씁쓸함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마치 모기장이 씌워진 것 같은 도시의 모습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환경오염의 대가를 인간이 치루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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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목교 쉼터, 오른쪽은 목교 쉼터에서 내려다 본 광주의 모습


목교를 지나 서석대가 보이는 곳까지 오르자 무등산의 자랑인 주상절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해발 1000m 위의 주상절리는 저를 무척 압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거대한 돌기둥 아래 서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돌기둥들을 하나하나 올려다볼 때마다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서석대 밑에 쉬고 갈 수 있는 벤치가 있었는데 이곳 걸린 현수막에 적힌 말들이 무척 재밌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곳부터 음주금지입니다.’였습니다. 해발 900m 즈음 되는 곳부터 음주 금지라니. 무등산이 국립공원이고 꽤 높은 산이기는 하지만, 그 난이도가 얼마나 쉬운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상투적인 글이었는데 밑에 영어 해석이 재밌었습니다. ‘Don't be a litterbug.’ 직역하면 쓰레기 버리는 벌레가 되지 말라는 뜻으로 이런저런 말에 ‘-충’을 붙이는 현재 대한민국 신조어와 비슷하여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벌레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는 널리 퍼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akaoTalk_20221108_193356307_10.jpg 서석대


그렇게 조금 더 걷자 해발 1100m의 서석대 위에서 광주와 순창, 담양 등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무등산의 정상인 천왕봉엔 군부대가 있어 들어갈 수 없고 1년에 한 번 개방하는 때에만 들어가 지왕봉, 인왕봉을 비롯한 주변부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2023년까지만 군부대에 임대를 허락하고, 그 이후에는 시민들에게 개방할 것이라고 하니 무등산에서 군부대를 볼 수 있는 것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서석대에서 지왕봉, 인왕봉, 천왕봉을 가는 길은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인데 양쪽으로 억새가 가득하여 그 길을 걸을 때는 마치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이 들 것 같았습니다. 서석대 위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광주 쪽과 그 반대가 완전히 다릅니다. 분지인 광주는 대도시의 모습이 완연히 드러나는 반면에 그 반대인 담양은 한국 가사문학의 중심지라는 전통적인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마치 한 폭의 수묵산수화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군부대에서 하는 아침 방송을 들으며 서석대와 그 풍경을 맘껏 즐긴 뒤 올라온 원효사 코스가 아닌 증심사 코스로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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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담양의 모습, 오른쪽은 광주의 모습


증심사 코스는 해발 600m 정도인 중머리재까지는 시야가 뚫려 있어서 원효사 코스보다는 그 풍경이 훨씬 볼만 했습니다. 서석대 밑의 입석대나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백마능선. 장불재 밑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단풍까지 눈이 쉴 틈이 없었습니다. 호방하면서도 수려한 풍경에 눈을 호강하며 내려오면 중머리재부터는 다시 나무들에 의해 시야가 막힙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단풍길이 시작되어 단풍이 든 나무들이 내 머리 위를 감싸고 단풍잎들이 길을 뒤덮는 휘황찬란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단풍길의 끝에는 500여 년 된 느티나무인 당산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척이나 큰 느티나무가 무등산과 사람이 함께해 온 역사를 증명하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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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단풍길의 모습, 오른쪽은 당산나무


긴 산행의 마지막을 알리는 것은 오방수련원입니다. 새로 지은 건물에 페인트 냄새가 나서 얼굴이 찌푸려지지만, 오방 수련원이 기리는 오방 최흥종 목사만큼은 기릴만한 위인이라 칭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라 할 수 있는 제중원에서 조수로 일하고, 목사로서 일하며 널리 선교했던 그는 그냥 인품이 훌륭한 목사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3.1운동에 참여하였고, 일제의 불합리한 요구에 저항했던 독립운동가입니다. 또한, 일제가 들여온 근대의 개념에 의해 소외된 해외 동포들과 나병 환자들을 돌보았던 사회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35년 교계의 신사참배 결의에 실망해 무등산에 들어와 신림마을에서 선교를 하고 성경과 ≪도덕경≫을 탐독했습니다. 독립해서도 괴물 취급을 받고 아무도 찾지 않는 나병 환자들을 위한 재활 센터를 소록도에 만들었습니다.


무등산의 명칭의 유래는 이전에 광주를 말하던 무진주와 무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론이나 이후에 무등산으로 이름을 붙이면서 불교적 의미를 넣었다고 합니다. 무등은 평등을 넘어 평등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두가 동등한 상태를 의미하며 말 그대로 평등의 의미가 없어진 최상의 상태를 불교에서는 의미합니다. 불교 용어이나 평생을 누구나 동등하게 대하며 약자들의 편에 서왔던 최흥종 목사의 삶은 무등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을 알게 해 준 수련원을 한 번 쯤 더 쳐다보며 그의 삶 속에 담긴 무등을 마음속에 담아둔 후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KakaoTalk_20221108_193356307_03.jpg 오방수련원


산행을 끝내고 증심사의 일주문을 나와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친구가 전화를 받더니 얼굴이 심각해졌습니다. 전화는 코레일에서 걸려온 것으로 전날 밤 일어난 무궁화호 탈선 사고 때문에 모든 무궁화호가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때아닌 낮에 날벼락을 맞은 저와 친구는 당황하며 급하게 KTX로 표를 돌렸습니다. 다행히 오후 1시 30분 경에 KTX표가 남아있었고, 표를 예약한 뒤 친구와 저는 웃으며 “이런 일도 다 있네.”라고 말하며 포장된 길을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는 호남 산수화의 기틀을 잡은 의재 허백련의 미술관이 있었으나 시간이 많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며 지나치고, 10분을 좀 넘게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증심사 코스의 시작인 버스정류장은 등산물품을 팔고 파전과 막걸리를 파는 상점이 있는 우리나라 산 초입의 그 모습이어서 조용한 원효사 코스와는 대비를 이루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10여분을 가서 학동역에 내려 지하철을 탔습니다. 광주송정역까지는 25분 정도가 걸렸고, 송정역에 들어가서는 역 내의 전주현대옥에 들어가 콩나물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1시 30분 경 열차에 올라타 3시 30분에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며 피곤한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습니다. 전례 없는 지연에 저와 친구가 잡히게 될 줄은.


광주송정역을 출발한 열차는 정읍을 지나 무난하게 익산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열차 내 안내방송이 켜지더니 탈선사고로 인한 복구가 끝나지 않아 지연될 것이라 하더군요. ‘설마 한 시간을 넘겠어?’ 하며 저와 친구는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익산역에서 한 시간을 멈춰있던 열차는 이내 오송역으로 출발했고, 저와 친구는 안도하며 지연 배상 50%를 받을 것이라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열차는 다시 오송역에서 멈췄고, 1시간을 더 끌었으며, 원래 정착지도 아닌 천안아산역에서도 멈춰 서서 30분이 지나자 많은 승객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고, 객실 내는 내내 웅성거렸습니다. 3시 30분에 도착했어야 할 열차는 이제 5시가 되도록 천안아산역에 멈춰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천안아산역을 지나 광명역으로 들어서서 열차는 다시 한 번 정차했고, 아예 승무원들이 옆에 서 있는 다른 열차가 먼저 간다고 갈아타라고 안내해주기까지 하더군요. 옆 열차의 객실은 많이 비어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옆 열차에 탔습니다. KTX 환승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어 친구랑 껄껄 웃다보니 어느새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후에 전달된 안내메시지에는 173분 지연이 되어서 죄송하다는 말이 적혀 있더군요. 참 잊지 못할 추억을 마지막에 남긴 채로 친구와 저는 서울역에서 헤어졌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1박 2일의 여행이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제 서울의 단풍은 거의 끝물이기에 아마 이번 주말이 마지막으로 단풍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가오는 연말 벌써 한 해가 다갔다는 한 구석의 시원섭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근교의 산을 찾아가 아름다운 단풍을 구경하고 오는 것은 어떨까요? 분명 좋은 기분전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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