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생의 풍경

제주여행 단상

by baekja

저녁의 김포공항, 많은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탑승장의 의자에는 모두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일본 환율이 싸지고, 해외여행이 풀렸다고 제주 여행 인원이 크게 줄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긴 줄을 지나 비행기에 올라탑니다.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나고. 뜨문뜨문 불빛들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 시선을 봅니다. 제주공항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하차장으로 향합니다. 하차장을 지나 제주공항의 로비에 섭니다. 그리 넓지 않은 공항의 로비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몇몇 이들과 여행의 설렘과 긴장을 드러내며 밤의 숙소로 향하려는 이들이 뒤섞입니다. 겨울과 코로나 시기에만 제주를 방문했던 저는 제주를 방문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랍니다. 상록수가 많은 제주는 솔직히 단풍을 보기에는 좋지 않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지는 몰랐습니다. 사람이 모여 덥고 습하는 공기를 풍기는 공항 로비를 나갑니다.


로비를 나가자 버스정류장 앞의 야자수가 제주에 왔음을 실감케 합니다. 공항으로 들어오는 도로는 전조등을 켠 택시와 차량 버스가 가득합니다. 곳곳에 어둠이 스며든 하늘과는 달리 온갖 불빛으로 가득한 지상은 밝고 활기찹니다. 근대 이후로 가지게 된 밝디밝은 밤의 풍경입니다. 각 버스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가득 찬 배낭과 캐리어는 삶의 한 자락인 여행에 대한 기대를 보여줍니다. 그 기대는 여행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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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를 지나 중산간도로로 들어섭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제주의 밤길은 무섭습니다. 멀리 해안가 가득한 도시의 빛이 사라지고 만나는 어둠은 인기척을 모두 지워버립니다. 분명 버스에 타고 있음에도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깊이에 근본적인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낍니다. 그 어둠 가득한 길을 비추는 것은 야광 표지입니다. 버스의 불빛을 밝게 반사하는 야광 표지는 어둠으로 가지 않는 길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어둠을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어둠은 길밖에 계속 존재합니다.


아침이 됩니다. 햇빛이 온누리를 비추고, 차갑고 무서운 어둠은 걷히고 따뜻하고 친절한 빛이 세상에 내려앉아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중산간도로의 어둠은 맑고 푸른 하늘과 그 아래 짙은 녹빛을 자랑하는 식물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초원을 달리는 말들도 도로 옆의 공간이 생의 공간임을 말합니다. 똑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장소입니다.


올레 사이를 지나 삼성혈에 도착합니다. 낮은 높이의 건물들이 위치하는 제주 원도심 사이에 존재하는 제주 역사의 근본. 삼성혈에 들어갑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진 사이로 현무암으로 잘 닦인 길이 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생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화장실 방문을 하러 갑니다. 근심을 해결하고 있는데 하얀 연기가 들어찹니다. 살충제가 한 평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가득 찹니다. 근심을 하나 내려놓았더니 근심이 하나 더 생깁니다. 콜록대며 나오니 하얀 방구를 살포하시던 분이 다가와 사과합니다. 괜찮다고 말하며 지나갑니다. 몇 번 콜록대니 괜찮아집니다. 이제야 아침 유적지의 고요함을 맛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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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이 지나고 고요함은 깨집니다. 2학년 6반을 크게 외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왁자지껄한 학생들의 무리가 밀어닥칩니다. 삼성혈에 전혀 관심 없는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그 삶에서 지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친구들에게 관심이 더 많습니다. 무수히 많은 무리 속 무수히 많은 말이 쏟아지고, 무수히 많은 삶이 제 옆을 지나갑니다. 시간이 지나 역사의 장이 된 공간은 어느새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 됩니다. 따스한 빛만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계속 내리쬡니다.


해가 다시 지고 저녁이 됩니다. 금요일 저녁 여행객들로 북적거리는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과장 좀 보태 명동 거리를 방불케 합니다. 호객하는 상인들과 길거리 음식을 구경하고 먹는 사람들로 거리는 정신이 없습니다. 전쟁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많은 이들의 눈빛에 즐거움과 편안함이 있다는 것이겠죠. 어두운 밤하늘을 상점들의 전등으로 가리고, 추운 공기를 사람들의 체온으로 가립니다. 서늘하고 쓸쓸한 가을 저녁은 그 어디에도 없고, 따스하고 삶의 냄새가 진한 삶의 현장만이 아케이드 내 공간을 가득 메웁니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제주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은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행객들입니다. 하지만, 제주에 여행객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섬의 주민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삶의 풍경은 시끄럽지만, 따스하고 활달합니다. 그리고 그 삶의 풍경에는 늘 빛이 있습니다. 자연의 해든 인공의 전등이든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 빛 아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눈빛 속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합니다. 그런 삶들이 만나 생을 지속하게 하고, 삶의 빛을 내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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