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단상
한 술자리에서였습니다. 죽음에 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친구들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죽음은 0이라고, 대부분의 삶은 플러스지만, 만약 자신의 삶이 마이너스라고 느낀다면 0으로 돌아가는 선택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삶이 마이너스라고 생각할 정도로 위기에 몰린 이들이 죽음을 택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저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으니까요. 다만, 친구들이 한 이야기에서 딱 한 가지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이 0이라는 것. 죽음은 0이 아닙니다. 그냥 모르는 무언가죠. 생의 끝. 그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정말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을지, 사후세계가 있을지, 아니면 윤회를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죽음은 ‘무지(無知)’이지 ‘무(無)’가 아닙니다. 어둠도 이와 같습니다. 어둠 속에 혹은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을지,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지, 아니면 무서운 무언가가 있을지. 그래서 빛 하나 없는 형체 하나 잡을 수 없는 어둠은 죽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제주에서 서귀포를 넘어갈 때 저는 그 어둠을 보았습니다. 해안가를 넘어 중산간 지역으로 들어왔을 때 어둠은 서서히 공간을 잠식했습니다. 온갖 빛으로 치장한 버스 너머의 공간에는 이제 어둠만이 남았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의식의 손을 뻗어 그 어둠으로 향할 때마다 마음속 근본적인 공포가 느껴졌습니다. 어떤 것도 감각할 수 없는 순간, 무지가 공포로 바뀌어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순간 저는 의식을 거두었습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버스 안에서도 극도의 불안이 느껴졌습니다. 자연의 거대한 어둠에 대항하여 자그마한 버스의 불빛에 의지하는 제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살기 위해 무지함에서 나오는 어둠의 공포를 뚫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야 했습니다.
버스는 조금 지나 성판악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한라산 등반 코스로 잘 알려진 성판악 코스의 출발점. 원래 주차장과 안내소가 있어야 할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리는 어둠만이 있었습니다. 이 어둠을 뚫고 한라산 깊은 곳으로 향해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해안선 5km 밖의 중산간 지대에 사는 모든 이들이 빨갱이가 되었던 그때. 빨갱이라 불렸던 평범한 사람들은 어둠만을 틈타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둠의 끝이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의 힘든 삶 또한 끝을 알 수 없었기에 그들은 빛의 선동에 몰려 어둠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기다란 쇠막대에서 본 짧은 불빛을 마지막으로 영원한 어둠으로 빠졌습니다.
제주의 어둠은 깊습니다.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도 그렇고, 세월이 씻어내지 못한 죽음들이 곳곳에 가득해서도 그렇습니다. 정말 아름답지만, 꽃이 떨어질 때 통꽃이 떨어져 목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동백의 표식이 있는 곳은 늘 죽음이 함께합니다. 어둠 속에 미처 모르고 지나치는 제주 중산간 지역의 죽음은 어둠을 더욱 깊게 만들고 공간의 어둠에 세월의 어둠을 더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게 만듭니다. 그 죽음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황,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어둠은 더욱 깊어지고, 사람들의 마음엔 공포와 불안, 허무만이 남아 감돕니다.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4·3사건을 대면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동굴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야 합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콘크리트가 가로막은 지하에서 우리는 어둠을 늘 옆에 달고 있습니다. 걸음걸음에 어둠이 느껴지고, 말 하나하나에 서늘함이 느껴집니다. 등골이 오싹한 그곳에서 우리는 어둠 너머의 죽음을 확인합니다. 빛 아래에서 보여준 사람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빼앗고, 그들의 빛은 다른 이들의 빛을 빼앗아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 그림자 안에 가득한 죽음을 직면하는 순간 숨이 막히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죽음이 가득한 공간과 시간의 박제 속에서 어둠은 늘 함께합니다.
빛을 내뿜고 있던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빛을 뺏겼습니다. 섬에는 어둠이 내려앉았고, 빛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죽음과 죽음 이후도 모르는데 죽음 이전도 몰라야 했습니다. 그 무지는 섬의 모두가 무저갱의 어둠 안에서 나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밤, 제주 공항의 활주로를 쳐다봅니다. 조금씩 새어나는 불빛 사이 어둠이 곳곳에 자리합니다. 수백, 수천의 죽음은 곳곳의 어둠에 깊이를 더합니다. 아름다운 섬 제주, 그 아름다움의 빛 뒤에 머무는 어둠은 여전히 규명되지 못한 것들을 말하며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