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초월과 조화로 가는 길

제주여행 단상

by baekja

제주도를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무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집이나 밭 근처에서 쉬이 발견할 수 있는 무덤들은 처음엔 선득하지만, 보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양지바른 선산이나 납골당, 공동묘지를 가야 사람들의 죽음을 찾을 수 있는 육지와는 달리 섬에서는 죽음이 늘 일상과 함께합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계속되는 수탈을 견뎌내며 스러져간 많은 이들의 죽음은 그들에겐 삶의 끝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겐 삶의 일부였습니다. 그렇게 일상과 함께하는 무덤들을 섬에서는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산들은 늘 돌로 만든 담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이를 ‘산담’이라고 하였습니다. 높지는 않지만, 일상의 침범을 적당히 막아주는 산담은 죽음과 삶이 무척 가깝지만, 무척 멀기도 함을 보여줍니다. 그 산담 위에는 이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해소하는 동자석이 있습니다. 천진무구한 어린아이로 만들어진 동자석은 무엇인가 하나씩 들고 있습니다. 그 물건들은 빛의 세계에 있는 이들이 어둠의 세계로 향한 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받든 동자석은 죽은 이들을 도와 어둠으로 나아갑니다.


그 동자석들을 국립제주박물관에 모아두었습니다. 빛이 별로 없는 어두운 박물관의 전시실은 장엄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어떠한 음악보다도 침묵이 어울리는 그곳에서 마주한 동자석들은 추상화된 모습으로 인해 이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가만히 동자석을 쳐다보고 있으면 생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듯합니다. 탈(脫)시간적이고 탈(脫)공간적인 영원의 느낌이 드는 석상들은 무척이나 친숙하지만, 무척이나 멀리 느껴집니다. 닿을 수 있을 듯하지만, 절대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저 너머, 초월(超越)의 저편에 있는 듯합니다. 그들의 표정은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 너머의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과 사의 굴레에 묶인 이들을 도와 초월의 세계로 데려갔고, 이를 막연히 인식하는 이 세계의 사람들은 위로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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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간지역 거친오름 밑 거대한 건축물과 공원은 동자석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이들을 굿과 제사와 같은 의식을 통해 원한을 풀어주어 초월의 세계로 보내고, 억울한 죽음과 피해에 대한 진실을 밝혀 여전히 억울함에 사로잡혀 삶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위로합니다. 이것으로 조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면 참 좋겠지만, 여전히 몇몇 이들은 이 건축물과 공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억울한 죽음에 또 다른 악의를 더하여 원한을 끝없이 만들어냅니다.


70여 년 전 벌어진 대량 학살은 시대나 말하는 이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 불러왔습니다. 4.3폭동, 4.3사태, 4.3항쟁 등등. 하지만, 인과와 원한이 너무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라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한 이름을 명확히 짓지는 못하고, 4.3사건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4.3사건이라 부름으로써 해방 이래 최대 규모의 제노사이드(genocide) 사건은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30만이 사는 섬을 ‘빨간 섬’이라 규정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했던 말도 안 되는 사건은 이제 적어도 가해자의 잔혹함과 피해자의 억울함에 대해서는 명명백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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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중요 가해자의 사과가 있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갈라졌던 피해자들이 서로 화해하고 상생을 택하면서 이제야 어둠 속에서 고통받던 영혼들이 빛을 받고, 의례를 통해 초월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죽은 이들은 너무 많고, 다양합니다. 그 죽은 이유의 다양함으로 인해 여전히 갈등이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가해자의 행동을 정당화함으로써 이미 상처 입은 이들에게 한 번 더 상처를 입힙니다. 조화가 깨지고, 편안함을 얻고자 했던 삶엔 다시 고통이 밀려옵니다.


무수히 많은 묘비와 위패가 있는 공원의 모습은 그 이름과는 달리 여전히 평화를 찾지 못했습니다. 깔깔거리는 학생들의 웃음, 드높은 가을 하늘과 대비되는 검은색 돌들의 향연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고 규칙적입니다. 가만히 서서 멍하니 바라보다 그것을 매개체로 저 너머로 떠난 이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빛, 어둠, 생과 사를 떠나 그곳에서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더 이상의 고생은 하지 않기를. 이러한 몇 마디 위로가 그들의 안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그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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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올라탑니다. 땅거미가 진 공항의 활주로 어딘가에는 죽음들이 숨어 있습니다. 몇몇 빛을 본 죽음은 세상의 위로를 받았지만, 아직 많은 이들이 이러한 위로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기나긴 세월 속 고통을 느끼고 있는 그들에게 미안해지고, 슬퍼집니다. 비행기에 올라탑니다. 비행기 아래에는 어둠을 몰아내는 많은 빛이 보입니다. 열심히 생을 살아가는 이들이죠. 그들에게도 위로를 건넵니다. 열심히 산만큼 행복할 수 있기를. 이러한 위로를 서로가 서로에게 건넨다면 죽은 이들은 해원(解冤)을 통해 초월의 세계로 떠나고, 남은 이들은 서로에 대한 악의를 거두고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모두가 위로를 건네는 가슴 따뜻한 세상이 언젠가 오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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