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을 보관하는 곳

대공원역

by baekja

날씨 좋은 주말 4호선을 타고 슬슬 움직여 대공원역으로 향했습니다. 아침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상당히 귀찮음이 가득한 저의 엉덩이는 12시쯤 되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주 간 것으로는 손에 꼽는 역인 만큼 가는 길마저 무척 익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대공원 여행은 서울에서 하행선을 타고 방문했지만, 오산에서 상행선을 타고 방문하는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 뭔가 학교와 집에서 딱 절반 정도 되는 느낌이 든달까요? 애매한 위치의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공원역 주변이 서울 시민들의 유원지 성격을 띠는 서울대공원으로 뒤덮여 있기에 이 역을 방문하는 것은 서울대공원 혹은 국립과천과학관을 방문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과천에 있는 이곳의 이름이 서울대공원입니다. 조금 이상합니다. 역의 이름은 대공원역이지만, 영어 명칭은 ‘Seoul Grand Park’로 분명히 서울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이상한 명칭의 유래를 따지려면 조금 오래전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신무기 개발 연구소를 세우기 위한 부지였던 이곳이 북한 장거리 미사일의 사거리에 닿는다는 것을 알고, 연구소를 취소하고 창경궁 안의 유원지였던 창경원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개장은 무척 늦어져 1984년에야 개장을 했고, 이때부터 서울시에서 운영을 하고 있어 서울대공원이라는 명칭이 굳어진 것이죠. 과천에 있기는 하지만,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위치적 특성 덕에 많은 이들이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여전히 다수의 나들이객이 이곳을 찾고 있죠.


날씨 좋은 초봄 그날도 대공원역의 승강장에 아이들이 안 보일 리 없었습니다. 오후 1시였지만, 줄곧 아이들이 타고 내렸습니다. 엄청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하철역에서 아이들을 꽤 많이 본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나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가족들의 손을 잡고,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내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 물론 승강장에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만한 수의 커플과 더 많은 수의 등산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트레킹하기 참 좋은 곳이라 그런지 올 때마다 다수의 등산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하고 많은 이들이 많은 이들이 여길 방문하듯 다양한 시간의 제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기억이 안 나는 꼬꼬마 시절부터 20대 중반까지, 가족들의 손을 잡고 동물들을 보러왔을 때부터 미술관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볼 때까지 정말 다양한 추억들이 이곳에 쌓여 있습니다. 이 추억들을 다 살펴보기엔 너무 기니 장소에 따라 하나씩만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국립과천과학관입니다. 대공원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이곳은 2008년 개관을 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개관하여 시설이 무척 좋은 편이고 볼거리 또한 무척 많은 편입니다. 이런저런 체험을 하며 꼼꼼히 볼 요량이라면 하루를 꼬박 이 과학관에서 보내야 하지요. 지금이야 인문학을 주로 공부하지만, 어렸을 적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제게 이곳은 놀이터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처음 방문했던 이곳은 신기한 것으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이리저리 흔들리는 지진 체험과 물과 바람을 맞는 태풍 체험만큼 재밌는 게 없었죠. 과학원리는 제쳐두고 감각적으로 쉽게 다가오는 체험들에 쉽게 홀려 과학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소 버스를 타는 체험도 있었는데 사실 그냥 버스와 똑같아서 ‘이게 뭔 차이지?’하면서 어머니와 동생과 떠들었던 것이 이상하게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동심, 이제는 가지지 못하는 이러한 마음들이 국립과천과학관을 생각하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여름 제 생일 즈음 저는 문득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하는 그 동물원이 그냥 궁금해졌기 때문이죠. 기억 너머에 존재하는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집에서 보며 느끼던 향수를 실제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친구를 설득했고, 두 친구는 흔쾌히 같이 가자고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큰비가 예보되어 있었습니다. 비 맞는 걸 무척 좋아하는 저는 일정을 강행하기로 했고,(아, 내 생일인데 어쩔건데~) 비가 쏟아지는 동물원에서 셋만의 탐험을 즐겼습니다. 비가 오니 몇몇 동물들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치타, 호랑이, 곰 등의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넓고 생각보다 다양해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친구들과 비 맞은 머리를 보고 깔깔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20대 중반의 나이이지만, 어린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무척 좋았고, 한때의 청춘 같은 느낌이 들어 아련한 감각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옆쪽으로는 놀이공원인 서울랜드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있습니다. 이 두 곳의 인상적인 추억은 같은 날 만들어졌습니다. 중3 기말고사가 끝나고 단체 체험학습을 서울랜드로 왔습니다. 친구들과 떠들며 놀이기구 몇 개와 오락실 몇 군데를 돌아보았습니다. 즐겁긴 했지만, 원래 놀이기구를 잘 못 타고 놀이동산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서 마음이 맞는 친구 몇 명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가기로 했습니다. 당시의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미술관 내부가 어두웠고 무척 넓었다는 것은 기억에 있습니다. 어떤 전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딱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김환기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각형과 그 안의 점들. 무언가를 초월하여 무한한 느낌을 주는 그 작품에 홀려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도록 쳐다보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즐거운 기억, 현대미술 작품에 처음으로 홀렸던 경험이 그 장소들에 남아 있습니다.


길고 긴 과거 회상을 끝내고 승강장을 돌아보았습니다. 반원들이 계속 이어지는 바닥의 무늬가 눈에 띄었습니다. 공이 뛰어가는 듯한 그 무늬가 어린이들이 뛰노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하철이 막 지나간 빈 승강장은 서늘한 공기가 가득했지만, 아이들이 뛰노는 온기 또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올 이 역이지만, 이 역만 방문하기 위해서 오는 일은 더는 없겠지요. 철모르고 뛰놀던 이곳이 추억을 되새기며 동심을 떠올리는 곳이 된 것이 제가 나이를 조금 먹은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가끔 일상에 지칠 때면 이 역만을 방문했던 것을 떠올리고, 역에서 회상한 과거의 추억들을 하나씩 되돌아보며 아련한 동심 속에서 미소지으며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을 겁니다. 잃어버렸던 동심을 조금 마음에 담아두고 이 역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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