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되는 공간

근정문~근정전

by baekja

흥례문을 지나 근정문(勤政門)이 보이는 공간 안에 들어섰습니다. 근정문은 근정전(勤政殿)이라는 정전(正殿) 전문(殿門)이라 그 이름이 그렇게 붙었습니다. 흥례문과 근정전 사이 공간은 그냥 모래밭이 아니라 나무가 심어져 있고 다리가 놓여져 있으며 왕이 다니는 삼도(三道) 또한 놓여 있습니다. 들어온 우측을 돌아보면 관광안내소가 위치해 있고, 좌측을 보면 물품보관소가 있습니다. 야외에 놓여 있어서 그런지 조금 거칠고 관리가 안 된 느낌이 들지만, 나름 튼튼하고 안전하니 무거운 짐은 물품보관소에 두고 움직이면 됩니다. 저도 가방을 물품보관소에 두었습니다.


20220629_091000.jpg


어깨에 지고 있던 가방을 내려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흥례문 뒤에서 근정문 앞 공간을 둘러보았습니다. 우측 회랑에는 몇몇 기기들이 보였습니다. VR기기로 궁궐의 옛날 모습들을 가상으로 구현해 놓은 기계였습니다. 한 번 이용해봤는데 제가 보았던 것은 경회루에서 하는 불꽃놀이였습니다. 약간 엉성하기는 했지만, 제법 아름다웠고, 가상으로 이런 공간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220629_090833.jpg


근정문 앞 공간에는 건천(乾川)과 그것을 건너는 영제교(永濟橋)가 있습니다. 원래는 천(川)만 파두고 다리만 설치해두었으나 태종 11년(1411)에 물을 끌어들여 흐르도록 하였습니다. 이처럼 궁궐에 들어갈 때는 천을 건너야 하고, 그것을 건너는 돌다리가 늘 있습니다. 이 천을 금천(禁川)이라하고 금천을 건너는 다리를 금천교(禁川橋)라고 합니다. 경복궁의 금천교는 영제교라고 이름 붙은 것이죠. 금천은 궁궐 권역과 외부를 나누는 경계 역할이며 사특한 것들을 씻어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제는 서울의 물길이 예전과 달라져 물이 흐르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많은 시간 이곳을 다녔지만, 빗물이 고인 것 말고는 물이 흐르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물은 흐르지 않지만, 금천 주변에는 매화나무와 앵두나무, 복사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어 봄이면 화사함을 뽐냅니다. 상춘객들이 가득한 봄이면 이곳은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죠. 매화의 아름다움이야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앵두꽃이나 복사꽃도 그 아름다움이 대단합니다. 흰색 혹은 연분홍빛의 꽃잎이 달린 동전 크기의 앵두꽃은 귀여운 화사함을 뽐냅니다. 복숭아가 달리는 복사꽃은 화려합니다. 진달래와 철쭉 사이의 절묘한 분홍빛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지요. 괜히 이상향으로 복사나무가 가득한 무릉도원을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복사꽃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저는 이 경복궁의 영제교 근처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금천과 영제교 주변을 둘러보면 천록(天鹿)이 4마리 배치되어 있습니다. 웅크린 모습과 표정이 모두 생생한 명작이지만,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마냥 귀엽기만 합니다. 궁궐의 여러 것들로 굿즈를 만든다면 무조건 천록 인형을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히 귀엽습니다. 4마리의 모습이 모두 다른데 그 중 ‘메롱’을 하고 있는 천록 상은 보는 이에게 즐거움까지 더해줄 정도지요. 이 천록 석상들은 경복궁 중건이 아니라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600여년 전 장인들의 마음에 여유가 가득했기에 아마 이런 귀여운 석상들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한, 600여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귀여움에는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20220629_091110.jpg


경복궁의 긴 역사를 함께한 천록에서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면 왼쪽에 유화문(維和門)과 기별청(奇別廳)이 있습니다. 유화문은 서쪽의 궐내각사와 빈청(賓廳)을 근정문 앞의 이 공간과 연결하는 문이고 기별청은 ‘기별(奇別)’ 혹은 ‘조보(朝報)’라 불리는 것을 작성하여 배포하는 곳이었습니다. 빈청은 조선 시대에, 비변사의 대신이나 당상관이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하던 곳으로 무척 중요한 업무 기관이었으며 기별은 승정원에서 처리한 국정사안을 닷새마다 작성하여 정리한 것을 말했습니다. 이 기별은 각 관청에서 필사해가거나 먼 지방은 파발로 기별을 돌렸습니다.


봄에는 사진 찍기 바쁘고, 물품이나 보관하고 있는 이 공간은 즉위식과 조회(朝會)가 열리던 곳이기도 합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즉위식?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즉위식은 조정(朝廷) 즉, 근정전 앞의 뜰에서 열립니다. 드라마에서도 보통 그렇게 나오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즉위식은 오례(五禮) 중 흉례(凶禮)에 속했습니다. 이유는 생각해보면 꽤 단순합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왕이 죽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매번 즉위식을 근정문 앞 공간에서 한 것은 아니고 근정전에서 한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전왕이 왕위를 양위한 경우가 대표적이죠.


조회는 조정에서의 궁중 모임으로 규모에 따라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규모의 조회는 조하(朝賀)라고 부르며 동지나 설날 아침, 탄신일 따위의 국가 경축일에 모든 신하들이 정전 앞 조정마당에서 임금에게 하례를 드렸습니다. 근정문 앞에서 열리는 것은 조하보다 약간 작은 규모의 조참(朝參)으로 매월 4차례 문무백관들이 임금에게 문안을 올렸습니다. 가장 작은 규모의 조회는 상참(常參)으로 사정전(思政殿)에서 열립니다.


잠시 근정문 앞에서 도열해 있을 신하들을 상상하다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으로 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로 보이는 근정전의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언제 봐도 늘 장엄함이 느껴지는 근정전의 모습은 저를 압도했습니다. 맑은 날이면 더욱 좋았겠지만, 적당히 흐린 날은 근정전의 위엄을 더하는 고요함을 더해주는 듯하여 나름의 매력이 있었습니다. 늘 변하지 않아 온 근정전의 모습을 눈에 담은 뒤 근정전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20220629_091247.jpg


근정전의 건물 다음으로 제가 늘 눈길을 가장 먼저 주는 것은 조정의 바닥입니다. 평평하지만, 울퉁불퉁한 자연의 맛이 살아있는 화강암으로 가득한 이 바닥은 제가 경복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박석’이라 불리는 이 화강암은 결대로 쪼개면 편평한 판들이 나와 왕이 다니는 길이나 궁궐의 바닥에 곧잘 깔고는 했습니다. 결대로 잘라 바닥에 깔기에 날카로움보다는 온화함이, 딱딱함보다는 부드러움이 느껴집니다. 울퉁불퉁한 표면은 생각보다 걷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햇빛을 난반사시켜 근정전에 서있을 때 눈부심을 덜하게 해줍니다. 박석의 다양한 모양을 다시 눈에 새기고 이제 제 발걸음은 회랑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동합니다.


처음 경복궁을 방문했을 때는 몰랐지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을 읽고 난후 알게 된 최고의 포토 스팟, 경복궁을 왔을 때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은 적이 없는 저의 보금자리와 같은 곳으로 향합니다. 회랑 두 곳이 만나는 오른쪽 구석 자리에 서서 근정전을 바라봅니다. 왼쪽에는 인왕산이, 뒤로는 북악산이 병풍처럼 자리하며 그 사이 절묘한 위치에 근정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명당(明堂)’이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저는 이 장면을 표현할 방도를 모르겠습니다. 살짝 북악산 쪽으로 기댄 근정전의 위치와 바위의 질감으로 그를 뒷받침하는 환상적인 광경에 저는 늘 압도됩니다. 맑은 날이면 역사 속의 나라 조선의 기세가 하늘로 뻗는 듯하고, 흐린 날이면 궁궐이 가지는 엄숙한 분위기를 공간에 전부 흩뿌리는 듯합니다. 그렇게 서서 혹은 앉아서 그 장관을 맘껏 구경하고 이제 박석을 밟으며 근정전 이곳저곳을 구경할 차례입니다.


20220629_091358.jpg


지금은 회랑인 조정의 동서남북은 원래 행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각의 일부는 동쪽의 융문루(隆文樓)와 서쪽의 융무루(隆武樓)를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관리들을 관리·감찰하던 사헌부의 관리들이 조회 때 참석한 관리들을 평가하여 인사 점수를 매기던 곳입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지루한 행사 때 졸던 사람들은 늘 나올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이제 바닥을 살펴보면 품계석과 쇠고리가 보일 겁니다. 웬 쇠고리인가 싶지만, 행사 때 햇빛을 가리기 위해 쓰던 천막인 ‘차일’을 거는 고리입니다. 고리에 걸려 드높이 올라간 천막들과 품계석에 선 관리들, 그 관리들을 몰래 관찰하던 사헌부의 관리들까지, 근정전 권역에서의 인간군상이 그려집니다.


20220629_091443.jpg
20220629_091507.jpg


이렇게 보고나면 근정전을 놓칠 수 없습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야 그냥 안에 구경하는 신기해서 이것저것 보았다지만, 이후로는 근정전을 관람하는 방법이 정해졌습니다. 근정전 정면의 남쪽 월대를 살펴보고, 근정전 내부를 한 번 본 뒤, 뒤를 돌아 세종로의 건물들을 한 번 봐준 후, 돌아 나오며 상하월대 문로주(엄지기둥)의 석상들을 살펴보는 것이죠.


정면의 월대 남쪽 동서 양끝에는 해태 가족이 있습니다. 새끼가 어미의 젖을 빠는 이 동상은 누구에게나 신기함을 불러일으킵니다. 딱딱한 궁궐에서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하는 석상이라니. 석상을 보고 임금이 가마를 타고 근정전을 오르는 계단인 답도(踏道)를 지나면 근정전의 내부와 마주하게 됩니다. 근정전의 엄숙한 내부는 켜켜이 쌓인 시간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간의 분위기가 겹치면서 엄숙함을 더합니다. 그 엄숙함은 사람을 전율하게도 하지만, 답답하게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광경은 잠시 눈에만 담고 늘 자리를 뜹니다.


20220629_091739.jpg


이제 고개를 돌려 세종로를 바라봅니다. 근정전이 가장 높은 건물이었을 시절과 달리 무수히 높은 고층 건물들이 경복궁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근정전을 제외하고 늘 어두웠을 이곳은 밤이면 무수히 많은 불빛들이 들어오는 멋있는 광경이 펼쳐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광경이 그저 멋있을 뿐이지만, 한때는 이 근정전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곳이 바로 근정전이었죠. 그래서 정도전은 근정전을 ‘부지런히 정치(일)해야 하는 곳’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부지런함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정사를 보고, 인재를 찾고, 법령을 닦는 등의 것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휴식 또한 들어있습니다. 휴식 없이는 이 모든 것들을 행할 수 없다는 정도전의 혜안이 보이는 명칭입니다.


KakaoTalk_20230516_112117501_06.jpg 근정전 앞에서 본 세종로의 야경


이제 근정전의 모퉁이를 돌아 서쪽에서 내부 천장을 올려다볼 차례입니다. 위에 황룡 두 마리가 천장의 가운데를 지키고 있습니다. 용의 발톱을 보면 일곱 개입니다. 중국의 황제도 발톱이 5개인 오조룡을 사용했는데 경복궁 근정전에 발톱이 7개인 칠조룡을 사용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조선 말 외세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권위를 올리고 싶었던 듯합니다. 화려한 용을 보고 이제 상·하월대의 귀여운 12지신 상을 보며 이름을 하나씩 맞춰보면 제 근정전 관람은 끝입니다. 전체적으로 권위가 가득한 조선의 중심 공간에서 압도당하다 이제 조금 숨통을 트이며 뒤편으로 넘어갈 차례지요. 근정전 바로 뒤에 보이는 문은 사정문(思政門)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