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가는길, 흥례문
경복궁(景福宮) 개장 시간인 9시에 맞추어 가기 위해 집에서 6시 30분에 기상했습니다. 재빨리 준비하는 동안 본 바깥은 흐렸습니다. 우산과 가방 방수 커버를 챙겨 집에서 나왔습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줄줄 내리는 비를 보며 조금 기다리니 남부터미널행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톨게이트까지는 제법 길이 막혔지만, 수도권 버스전용차로 덕에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남부터미널에서 내려 바로 남부터미널역으로 내려가 3호선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만약 이번 여행이 답사였다면 저는 종로3가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탄 후 광화문역으로 가서 내렸을 겁니다. 광화문역에서 내려 광화문 광장에서 내린 뒤 정면에서 광화문을 보며 경복궁 권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겠죠. 하지만, 이번 여행은 궁궐을 산책하듯 돌아보며 궁궐과 관련된 저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살펴보는 것이기에 3호선 경복궁역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3호선 경복궁역으로 향한 이유는 경복궁에 대한 첫인상 때문입니다. 제가 기억 속에서 경복궁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8년 학교 현장체험학습 때였습니다. 자연히 경복궁 동편에 있는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내리게 되었고, 들어온 것은 광화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동편의 통로를 통해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복궁을 들어가기 위해 처음 마주한 것은 완전히 복원이 끝난 흥례문이었습니다. 2008년 당시 복원이 끝나지 않았던 광화문은 강익중 작가의 작품으로 가려져 있었고, 지금이야 현대미술을 좋아해 유심히 봤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의 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뇌리에 깊게 남았는지 저는 경복궁을 방문할 때 굳이 광화문으로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름에 이미 ‘경복궁’ 석 자가 들어있는 경복궁역으로 오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거리가 가까워서 편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복궁역에 내려 긴 연결통로를 따라 가야 하는 5번 출구로 향했습니다. 5번 출구로 향하는 중간에는 불로문(不老門)이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 권역에 있던 것을 베껴 설치해 놓은 것이죠. 불로문을 지나가면 이제 궁궐과 관련된 유물들의 이미지들이 가득한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나오면 바로 옆에 국립고궁박물관이 보입니다. 눈길을 조금 멀리 주면 북악산이 보이고, 바로 앞의 삼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광화문, 왼쪽에는 흥례문을 낀 넓은 공간이 나옵니다. 경복궁의 수문장 교대식이 이뤄지는 곳이며 매표소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방문했던 6월 29일은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이라 매표소는 문을 닫고 있었고, 무료 관람이 가능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이 날을 택했는데 횡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공간은 늘 경복궁 여행이나 답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경복궁을 방문했던 날 선생님들이 표를 구매하는 동안 이 모래밭에 줄지어 앉아 선생님들이 구매해오는 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막 다가오던 그때 햇빛이 살짝 따갑기는 했지만, 그리 덥지는 않았고 한창 뛰어놀 나이에 움직이지 못한다는 아쉬움만 약간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가족이나 친구, 누구와 와도 늘 이 앞에 서서 표를 받아왔습니다. 혹은 신분증을 꺼내 놓은 채로 가볍게 통과하기도 했지요. 경복궁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준비하는 공간, 그곳이 흥례문 앞이었습니다.
흥례문 앞에서 잠시 눈길을 광화문(光化門)으로 주었습니다. 경복궁의 정문은 고민도 할 필요 없이 광화문입니다. 경복궁 창건 당시인 태조 4년(1395)부터 이름이 붙은 후 조선과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경복궁의 정문은 늘 광화문이었습니다. 광화문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 보도와 붙임과 동시에 광화문 월대 복원 공사를 하고 있는 2022년 여름(현재도 월대 복원 공사는 하는 중입니다.)의 그날에도 광화문은 우뚝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머리와는 달리 광화문으로 들어왔다고 경복궁 권역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잘 주지는 않습니다. 그냥 한 문을 통과한 느낌이죠. 경복궁에 정말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는 정문, 저의 정문은 늘 흥례문이었습니다.
흥례문의 원래 이름은 흥례문이 아니었습니다. 홍례문(弘禮門)이었습니다.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종 9년(1427) 2월 19일의 기사로 뜻은 ‘예를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궁성의 남쪽을 가리키고 서있기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 중 남쪽을 가리키는 예(禮)자가 들어갔습니다. 지금의 흥례문이 된 것은 고종 때의 일로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1711~1799)의 이름인 홍력(弘曆)을 피하고자 흥례문으로 고쳐 짓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흥례문은 2001년 복원된 것으로 1916년 조선총독부 청사가 착공하기 전 철거되었습니다. 이후 1996년 조선총독부의 철거가 완료되었으니 공간과 건물의 역사라는 것은 돌고 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흥례문의 복원이 완료되는 2001년 전 저는 흥례문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 아래에서 놀고 있는 한 어린 아이의 사진. 그것이 제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 된 경복궁과의 만남입니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저의 어릴 적 모습은 복원 중이라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경복궁의 모습과 더불어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빛바랜 사진 텅 비어 있는 공간, 무언가 잃어버린 것이 그 사진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광화문의 홍예(虹霓) 아래에서 놀고 있는 너머에는 복원 중인 흥례문이 눈에 띕니다. 아마 이때 본 경복궁을 기억했다면 저는 경복궁의 정문을 흥례문이 아닌 광화문으로 기억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시간에 방문한 경복궁을 처음이라고 기억하게 되었고 제 마음 속의 정문은 흥례문이 되었습니다.
넓은 모래밭에서 흥례문에 대한 감상을 끝내고 이제 궁궐의 안쪽으로 들어갈 시간이었습니다. 비가 살짝 그친 흐린 날씨, 우산은 접어두고 현대 방식인 우측 통행에 따라 흥례문의 가장 오른쪽 입구로 들어갔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은 무척 적었습니다. 고요한 분위기에 발걸음은 살짝 무겁게 하여 천천히 궁궐 권역의 본격적인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