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세계적인 음악가인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영어식으로 류이치 사카모토라고 읽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한국식 어순으로 그대로 적겠다.)는 2023년 3월 28일 사망했다.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좀 나중의 일이었다. 한창 글을 쓰려고 집중을 돕기 위한 음악을 모아 놓은 유튜브 동영상을 찾던 도중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진을 올려둔 동영상에 몇 가지 제목들이 보였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별이 지다’, ‘세상에 많은 소리를 남겨두고 간 류이치 사카모토를 추모하며’. 동영상이 올라온 지는 길어야 한두 달 정도. 그가 죽은 지 별로 안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사카모토 류이치를 알게 된 것은 뉴에이지 곡들을 한창 듣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흘러흘러 곡들을 듣고 있었는데 한 곡을 듣고 확 끌리는 느낌이 들었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전장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의 영어 제목이자 대표 테마곡의 제목이다. 쓸쓸하고 처연하지만, 따스함이 느껴지는 진중한 느낌의 곡에 확 몰입되었고, 그 음악을 내내 돌려듣기도 했었다. 그 곡 하나만으로 나에게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이름은 정말 좋은 곡을 쓰는 음악가의 이름으로 고정되었다.
그 곡의 음악가가 죽었다는 것은 나의 감정에 쓸쓸함을 가져왔다. 내가 계속 들어온 음악의 음악가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 믿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그 쓸쓸함을 달래려 그의 곡을 계속 들었다. 그냥 듣다 보니 강렬하게 인상에 남지도, 제목을 기억하기도 힘들었지만, 좋았다. 다 좋은 곡들이었다. 이런 만족감을 주는 곡들을 썼던 그 사람이 좀 더 궁금해졌고, 그의 음악관과 삶이 조금이나마 알고 싶어졌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그런 조금의 궁금함과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찾은 영화였다.
인두암에 걸렸던 그는 음악을 시작한 뒤로 가장 긴 시간을 쉬었다고 했다. 먹는 양이 줄어 부드러운 과일을 씹는 것도 힘들어 보였던 그는 음악을 만들 때만은 늘 진지했고, 열성적이었다. 음악을 만들려고 숲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채집하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날마다 소리에 둘러싸여 살지만, 보통은 그런 소리들을 음악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귀 기울여 들어보면 재밌어요. 음악적으로도 흥미롭고. 그 소리들을 내 음악에 넣고 싶어요.”
음악은 뭘까. 누군가는 수(數)에 비유했고, 누군가는 심(心)에 비유했다. 다만, 대체로 만들어낸 ‘음악’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데 주력했다. 정해진 소리가 있었고 그것은 정해진 음(音)이 되었다. 각자 달리 만들어낸 음악의 틀은 서로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도레미파솔라시도’로 통일되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계이름. 사람은 복잡하고 변덕스러워 이 통일된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음악을 만들 때 장조(長調)나 단조(短調)의 조(調)에 의지하지 않고 만들어낸 무조 음악과 같은 것들을 창시하기 시작했고, 악기들로 체계가 갖춰진 ‘음악’이 아닌 그 밖의 ‘소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서는 악기에 제한을 두지 않고 그 소리들을 엮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카모토는 이처럼 일상과 자연에서 그대로 들려오는 소리를 사용하고자 했다. 그 소리를 얻기 위해 북극에서 아프리카까지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컵이나 양동이 같은 일상의 기물들을 이용하여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후쿠시마를 찾아가 이곳저곳을 보고 소리를 채집하였다.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를 열정적이면서도 진지하게 눌러보는 모습은 거장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피아노를 쳐보고 말하는 소감에서 그가 흔히 생각하는, 정해져있는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는지가 보였다.
“…쓰나미가 순식간에 밀려와서 소리를 자연으로 되돌려놓은 겁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이 조율해준 그 쓰나미 피아노 소리가 굉장히 좋게 느껴져요. 즉, 일반적인 피아노 소리는 인간이 억지로 조율한 부자연스러운 상태인 거지.”
인간이 만든 음악의 틀을 벗어나는 것을 넘어 그 틀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자연으로 돌아가 그 소리를 찾는 것. 자연친화적인 이 말은 그가 어떤 음악을 추구했는지 엿볼 수 있는 말이다.
그는 환경 혹은 자연친화와 관련해서만 음악을 만들지는 않았다. 자신이 예전에 작업했던 영화의 곡이나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영화들에서 영감을 얻어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영화에 음악을 맞추어 써야 하는 영화음악의 성격은 자유롭게 곡을 쓰기를 원하는 사카모토가 영화 음악을 마냥 좋아하지는 않게 했다. 하지만, 정해진 상황에서 빠르게 곡을 만들어야 하는 극한 상황은 나름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극한 상황에서 남긴 결과물들(아카데미·골든 글로브·영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생각해보면 꽤 그의 음악적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처럼 바쁘디 바빴던 그의 삶에서 음악은 하루도 쉬질 않았고,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음악 자체가 사라진 날이 있었다. 9.11 테러 당시 사카모토는 맨해튼에 있었다.
“맨해튼에 음악과 소리가 사라졌어요. …나조차도 그 7일간 음악을 듣지 않았더라고요. 이렇게 매일 음악에 둘러싸여 살아왔는데도 음악이 들리지 않는 것조차 잊고 있었어요. …음악이나 문화는 평화롭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어요.”
그의 삶인 음악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 인류의 보편적 생존을 위해서 그는 늘 고민했다. 영화에서도 9.11테러에 대한 것 말고도 평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내뱉었다. 원자폭탄에 대한 부정적 의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적극적으로 앞에 나섰던 반핵 운동이 영화에 실린 것은 그의 이런 가치관을 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소리를 모으고 음악을 만들어내기 이전에 인류의 보편적 생존을 위한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그의 음악이 더욱 진정성 있게 들리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코다(coda)이다. 악곡 끝에 결미로서 덧붙인 부분이라는 코다의 의미는 사실 이 영화 그 자체이다. <async>앨범에 들어간 곡 끝에 덧붙여진 이야기이며,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에 덧붙여진 이야기이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삶에 덧붙여진 이야기이다. 그는 죽고 없어진 이 세상에서 이 이야기는 그의 생 자체에 덧붙여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101분이라는 시간, 영상에서 만나는 그는 이 세상에 계속 덧붙여지며 그의 음악과 함께 영원을 살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그는 피아노를 연습한다. 거장이라는 칭호로 불렸던 그지만, 그는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늘 열성적이었다. 아마 죽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음악과 함께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의 음악이 내게 선사한 감동만큼 그가 편안하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