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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Jun 19. 2023

픽사의 마법같은 이야기

엘리멘탈

*스포 있습니다.



 사람은 다 다릅니다. 생김새, 체형과 같은 외형에서부터 성격과 같은 내면까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없죠. 그래서 가끔은 맞춰주고, 누군가에게 맞춤을 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어도 마법의 단어인 “그럴 수 있지.”를 남발하며 이 사회에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같은 종인 사람들의 삶이 그러할진대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진 원소들이 만약 사회를 이루어 살아간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요? 픽사의 무한한 상상력은 그 해답을 내놓았습니다.


 4개의 원소들이 모인 도시 엘리멘트 시티에는 4개의 원소가 살고 있습니다. 물, 흙, 공기, 불. 물 위를 달리는 전차, 흙 위의 나무들이 가득한 건물, 바람들이 날아다니며 골대에 골을 넣는 에어볼과 같은 스포츠까지. 개척 전의 모습이 생각도 나지 않는 번화한 도시는 불빛으로 번쩍거립니다. 이처럼 원래는 같이 살지 않았을 여러 원소들이 모여 사는 모습은 다양한 삶의 경관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점도 있습니다. 멀리 여행을 떠날 때 공기는 비행선을 사용하고, 흙은 배를 이용하고 물은 잠수함으로 이용하는 장면은 그러한 점을 나타냅니다. 세 원소가 같이 어우러져 사는 모습은 꿈꿔보지 못한 환상적인 도시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가장 늦게 온 불은 이 도시의 중심에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변두리에 ‘파이어타운’을 만들어 불과 함께 모여 살고 있죠. 물이 가득한 도시에서 불은 이 영화에서 말하듯 ‘불에 물을 타는’ 행위를 당할까 도시 주변으로 잘 가지 못합니다. 이 특성 때문에 물을 배척하는 불 또한 상당히 많죠.


 불의 정체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다른 원소에 배타적인(특히 물) 버니의 딸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앰버 또한 파이어타운에서만 나고 자랐기에 불의 이런 특성에 자부심을 느끼고 다른 것들을 배척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터진 파이프에서 흘러나온 웨이드와 만나면서 자신의 평범했던 일상은 변하기 시작하죠. 남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앰버와 달리 남들의 감정에 잘 공감해주고 그를 통해 분위기 자체를 만들어내는 웨이드와 도시 곳곳을 다니며 자신이 정말 원했던 꿈을 찾아가고, 늘 살아왔던 평범한 일상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둘은 사랑에 빠지죠.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부잣집 도련님인 웨이드와 낙후한 동네에서 자라온 앰버의 환경 차이부터 생각과 사고방식까지, 그들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 불과 물은 닿을 수 없다는 근본적인 정체성의 문제가 있었죠. 불은 물에 닿으면 꺼지기 마련이니까요.


 앰버와 웨이드도 이를 모르지 않습니다. 둘이 사랑하면서도 닿는 것을 피하는 건 그렇기 때문이죠. 그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원소니까요. 누군가는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포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웨이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물에 잠긴 센트럴가든 역에서 앰버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기적의 꽃 ‘비비스테리아’를 보여주고 적극적으로 앰버와 닿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물과 불이 맞닿는 기적을 일으키죠. 말도 안 되는 기적은 가끔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현실적으로 돌아보게 만듭니다. 앰버는 웨이드에게 등을 돌려 돌아갔고,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으려 했으나 웨이드가 이를 망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 상황에서 만나 그 위기를 헤쳐 나가고 앰버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꿈을 이루게 합니다.


 앰버와 웨이드의 다름은 근본적이고, 바꿀 수 없는 현실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 다름은 외면과 내면을 넘어선 어떤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이 다름은 인정해야만 하고, 변할 수 없는 것이기에 원소들 간의 갈등의 골을 깊어지게 합니다. 사람의 삶은 사실 근본적인 다름이 있을 수 없죠. 서로 손을 맞닿는 다고 한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위기에 처하지는 않으니까요. 서로가 존재함이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도 일반적인 경우엔 없습니다. 하지만, 불과 물은 다릅니다. 불은 물에 꺼질 수 있고, 강한 불은 물을 증발시켜버릴 수 있죠. 늘 아슬아슬합니다. 하지만, 깊은 사랑은 그 근본적인 다름, 그 근본적인 다름에서 나오는 무수한 다름마저 극복해냅니다. 그들은 여전히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깊은 사랑을 가진 둘 뿐입니다. 주변은 그렇지 않죠.


 둘의 기적 같은 만남과 그 만남이 만들어낸 조화는 말도 안 되는 벽을 하나 넘었지만, 더 큰 벽이 남아 있습니다. 앰버와 웨이드 간의 깊은 사랑과는 달리 근본적인 다름만을 단호하게 보고 있는 외부 환경을 설득시키는 일이죠. 사실 훨씬 물과 불의 정체성을 극복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있을까 싶지만은 이 영화에서 앰버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희생과 자신의 행복을 저울질하는 과정은 절대 편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부모님의 세월과 자신의 세월이 쌓여 만들어진 벽은 앰버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하지만, 웨이드의 도움으로 앰버는 이 벽을 부숩니다. 그리고 앰버의 부모님은 이를 인정해주죠. 앰버에게는 마음의 짐을 전부 벗어던지는 가장 마법 같은 순간이었을 겁니다.


 영화의 서사와 메시지는 조금 뻔한 편입니다. 서로 다른 남녀가 위기 상황을 겪고 서로를 사랑하며 그 차이를 극복해나가고, 자식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아가는 매우 당연하고 진부한 스토리입니다. 영화 초반부 즈음에 이미 앰버가 자신의 꿈을 말하고, 그 아버지가 ‘나의 꿈은 너란다.’와 같은 대사를 칠 것까지 예상을 했는데 정확히 맞아 떨어졌죠. 하지만, 이 영화의 소재와 연출은 어쩌면 지극히 진부하고 평범한 서사와 메시지를 새롭고 재밌게 전달합니다. 전혀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을 닮은 원소들의 삶과 그들이 사는 도시의 모습은 이전에도 본 적 없는 아니 상상해보지 못한 경관들입니다. 그 경관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매혹시키죠. 엘리멘트 시티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영화에서 ‘디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불 원소들의 전통어로 불빛은 빛날 때 만끽하라는 뜻이죠. 자신의 삶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무더운 여름 지치고 힘든 하루, 바쁜 일정으로 인해 멀리 피서를 가기 힘들다면 시원한 영화관에서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지만, 자신들만의 이야기와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원소들의 도시 엘리멘트 시티를 만끽하며 하루에 만족감을 더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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