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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Nov 26. 2023

추억 너머 이어지는 삶

<UP>



 ‘죽음을 앞둔 노인이 사랑에 빠졌던 여름을 떠올려’, 영화에서 나오는 한 대사입니다. 이 대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영화 의 주인공 칼의 이야기를 본떠 만들어진 대사이죠. 삶의 끝이 다가온 노인이 가장 찬란했던 삶의 순간을 떠올리는 장면은 듣고 상상하는 이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칼과 앨리의 행복했던 삶을 담은 영화 초반 5분은 라는 노래와 함께 보는 이들을 전부 울려버립니다. 시네마틱 역사상 최고의 5분(?)이라고도 종종 칭해지는 이 5분이 전부였다면 사실 은 그저 감동적인 멜로물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5분 이후로 영화는 이어집니다.


 노인은 고집불통의 완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했던 때의 부드러움과 미소는 사라지고, 아내와 함께했던 추억만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멈추어 있던 그를 움직인 것은 세상이었습니다. 과거에 멈추어 살고 있는 그에게 변화하는 세상은 빨랐고, 그는 그 세상에 맞추어 변화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앨리와의 추억을 모두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한 가지 선택을 합니다. 끝에 다다른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꿈, 앨리와 어렸을 때부터 바랐던 단 하나의 꿈. 닳고 닳아버린 자신의 인생 속에 남은 하나의 꿈을 이루고자 앨리와의 추억이 가득 담긴 집을 풍선으로 띄워서 파라다이스 폭포로 향합니다.


 그 폭포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한 멋있지만, 조용한 모험은 아버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놀고 싶은 야생탐험대원 러셀과 신비의 새 케빈, 그 새를 쫓는 탐험가 찰스 먼츠, 먼츠의 개지만 칼과 러셀, 케빈을 돕는 더그가 뒤섞이면서 소란스러워집니다. 그 과정에서 케빈은 찰스에게 잡혀가고 러셀과 칼의 거리는 멀어집니다. 그 다사다난한 과정을 넘어 칼은 목표를 이룹니다. 파라다이스 폭포 위에 집을 안착하는 데 성공합니다. 소란스러운 여정 끝 적막함밖에 남지 않은 집 안에서 칼은 앨리가 어렸을 때부터 써온 모험책을 펼칩니다. 파라다이스 폭포로 시작한 모험은 칼과 앨리의 결혼부터 죽을 때까지 다양한 일상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적힌 한 마디는 파라다이스 폭포에서 죽을 때까지 살고자 했던 칼의 마음을 바꿉니다. 


 “당신과의 모험 고마웠어요. 이제 새로운 모험 찾아 떠나요.”


 마지막까지 같이 꿨던 꿈을 이루고자 했던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꿈을 꿨던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고마웠고, 행복했다는 메시지를 전한 여자의 마음이 겹치며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꾸었던 꿈을 넘어 새로운 삶을 살라는 여자의 말에 여자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하나씩 파라다이스 폭포에 내리기 시작합니다. 다시 떠오른 집으로 러셀과 함께 찰스에게서 케빈을 구한 칼은 집을 떠나보내고 찰스의 비행선에 올라 러셀과, 더그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떨어진 집은 조용히 파라다이스 폭포 위에 안착합니다. 칼과 앨리의 보금자리이자 모험이었고, 일상이었으며, 꿈이었던 그 집은 이제 과거로 남아 파라다이스 폭포에 서 있습니다. 그들의 꿈은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추억일 뿐 현재는 아닙니다. 늘 함께했던 순간들은 마음속에 남아있겠지만, 이미 끝난 이야기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잊을 수 없었던 추억들은 칼의 모든 집착에 개연성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순간들이 현재의 순간들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소중했던 예전의 현재는 과거가 되어 세월의 흐름의 저 뒤편에 서 있을 뿐입니다.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것들이지만, 그래서 더욱 뒤를 돌아보게 만들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들과 앞으로 나아가라 이야기합니다. 추억에 집착하지 말고 앞을 보라는 것이죠.


 삶에는 모두 끝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어온 것들일지라도 죽음이라는 끝 앞에서 아무도 그 너머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정말 사랑했던 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억 속에만 남은 그 사람의 삶은 너무나 슬프지만 과거의 것입니다. 현재를 붙잡고만 싶지만, 붙들고 있는 동안 현재는 과거가 됩니다. 진정한 의미의 끝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그 삶은 의미 없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삶이 소중한 만큼 과거가 현재했을 때 무척 즐겁고 행복했다는 것이니까요. 그 감정만큼은 가슴에 남아 늘 아련한 미소를 띠게 합니다.


 사람은 그 아련하고도 행복한 감정만으로 살 수 없기에 그 삶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계속 ‘down’ 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up’ 된 상태로 삶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래서 칼은 앨리와의 추억을 모두 파라다이스 폭포에 남겨두고 다시 삶의 공간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러셀과 새로운 삶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갑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은 사랑에 빠졌던 여름을 떠올리고, 친구와 함께하는 새로운 여름을 만들어 갑니다. 한 사랑과 함께 했던 마음의 맹세와 지금의 우정과 함께하는 마음의 맹세가 그 노인을 계속 웃음 짓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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