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土地)≫의 무대, 자연과 생명의 터전

하동 악양면 평사리

by baekja



통영에서 진주로 넘어와 1박을 한 후 아침에 하동으로 향했습니다. 하동도 이번에 처음 가게 되는 곳이었으나 이름만큼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사회 시험 중에 한국의 특산물을 외우는 것이 있었습니다. 충주 사과, 나주 배, 상주 곶감, 안성 유기 등등. 녹차는 두 곳이 있었습니다. 보성과 하동. 그렇게 하동은 제 기억 속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다음으로 하동을 기억하게 된 것은 지리산과 쌍계사였습니다. 3년 전 사찰 기행을 기획하면서 지리산의 사찰들을 스윽 보아두었습니다. 구례의 연곡사, 화엄사, 천은사에서 이어지는 하동의 쌍계사가 눈에 띄더군요. 가지는 않았지만, 하동이란 지역의 이름만큼은 확실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올해 저는 하동에 방문했습니다. 녹차 밭을 구경하며 녹차를 마시러 온 것도, 쌍계사에 답사를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기 전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 이곳이 소설 ≪토지(土地)≫의 무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동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하동시장을 거쳐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다 마을에 들러서 어르신들을 계속 내려드립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이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버스 창가에서 마주한 그 풍경은 이번 여행에서 마주한 그 어떤 풍경보다 황홀해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한국의 풍경을 접한 저도 이토록 광활하면서도 압도적인 풍경을 주는 곳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높은 산봉우리들이 이어진 채 구름과 맞닿으며 땅을 감싸고, 그 안의 땅은 평평하고 광활한 상태를 유지한 채 넓고 넓은 분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삭이 막 영그는 벼가 가득한 논이 그 땅 위에 있어 푸르면서도 노란 물결이 바람이 불 때마다 요동쳤습니다.


20230922_155542.jpg 버스 안에서 본 악양평야


그렇게 버스는 악양평야를 한 바퀴 돌며 어르신들을 전부 내려드리고 악양평야를 벗어날 때쯤 되어서야 최참판댁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압도적인 풍경에 가슴이 들떴습니다. 박경리 문학관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인데도 마음은 가라앉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최참판댁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서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퍼뜩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이곳이 바로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대하소설 ≪토지(土地)≫의 무대구나.’


최참판댁으로 오르는 길은 잘 발달한 관광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온갖 잡다한 음식들을 파는 상점들이 가득하고,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오전 10시경의 이른 아침이라 상점들이 막 문을 열고 있어 번잡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고요하고 정겨운 언덕길을 오르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요? 살짝 더운 김에 얼음 식혜 한 병을 사서 마시면서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정류장의 입구에서 평사리 마을을 복원해 놓은 곳까지는 약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리고 평사리 마을을 복원해 놓은 곳 안쪽까지 깊숙이 들어가면 가장 최근에 지어진 박경리 문학관(2016)이 이 먼 길을 올라온 이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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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박경리 문학관, 오른쪽: 최참판댁 올라가는 언덕길


번듯한 기와집으로 지어진 박경리 문학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박경리 문학관 앞에서 바라보는 악양평야의 모습을 봐야합니다. 산 아래 듬성듬성있는 주택들과 그들을 팔로 안듯이 품고 있는 봉우리들, 봉우리의 머리에 살짝 걸린 구름, 그리고 각기 다른 녹색으로 사각형을 이루며 평야를 차지한 논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탁 트여 시원해집니다. 장엄하고 웅장한 풍경 앞에 말을 잃게 됩니다. 이 땅을 다시 되찾기 위해 그리 노력하였던 서희의 마음이 이 광경을 보고서야 진심으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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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문학관 안으로 들어갑니다. 원주의 뮤지엄이나 통영의 기념관과는 다른 편안함이 있습니다. 빼곡한 연표와 작품 분석이 이곳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중심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문학관에서 집중하는 것은 ≪토지(土地)≫에 담긴 작가의 사상입니다. ‘그래, 글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작가의 글귀가 문학관의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썼고, 슬프고 괴롭기에 글을 계속 써왔다는 작가의 절절함이 처음부터 확 느껴집니다. 그 절절함을 가슴에 안고 천천히 문학관을 둘러봅니다. 입구에서 왼쪽에 있는 구석 쪽으로 갑니다. 영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학성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보다는 지난 역사를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이 글을 끝까지 마무리 짓게 한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나는 이 소설이 역사의 숲을 헤쳐 나가는 작은 실마리가 되길 바랍니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中


영상에서 이 글귀를 딱 보는 순간 제가 이번 여행에서 박경리를 생각할 때 크게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뭐가 됐든 ≪토지(土地)≫는 1894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고,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개인이 역사의 흐름과 함께하기에 작가의 역사관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을 놓치고서는 ≪토지(土地)≫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토지는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생명, 그 한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그릇입니다. 나를 오랫동안 누르던 그늘과 그것에 저항하려는 삶과 생명에의 연민-글쓰게 하는 힘은 바로 그 생명에의 연민이지요.”

<작가세계>, 1994년 가을 中


“과정이야말로 진실이며 그것이 옳든 그르든 간에 그것만은 명확한 것입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中


작가 한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 토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류 계층이 절절한 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죠. 시대의 물결에 치이고, 다른 이들의 욕망에 치여본 사람이 절절한 한을 가지게 됩니다. 보통 이러한 계층은 역사의 전면부에서는 찾을 수 없고 역사의 뒷면을 뒤져봐야 그 행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강력한 그늘에 저항하는 삶, 그 삶의 세계가 존재하는 생명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작가가 글을 쓰는 주제입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지만, 여전히 그들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연민이 작가가 시대를 보는 방식이고 역사를 보는 방식일 것입니다.


작가는 생명에의 연민을 바라볼 때 결과를 우선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과정이야말로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대부분 인과관계가 확실히 설정되어 있고, 모든 사건이 필연적인 것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과 우선적인 시선이죠. 하지만, 그런 방식은 말 그대로 권력자의 역사, 승자만의 역사를 남겼고, 지구 모든 것들의 역사를 추구하는 현재에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보는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모든 사건을 우연으로 보는 것이죠. 한 일이 일어난 것 자체가 우연이고, 마치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보일 때도 그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우연으로 엮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모든 사건을 독립적으로 바라보면 결과의 성패 이전에 과정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과정 안에 숨어 있던 가치들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생명을 전부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기반을 제공하죠. 그래서 작가는 “그 삶과 생명, 스스로도 그러한 존재이지만 그런 존재들의 동반자가 작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인식 위에 ≪토지(土地)≫는 쓰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인식을 한다고 모두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은 좀 어렵긴 해도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하고, 공간과 시간을 살아가는 생명의 저항에 연민한다는 인식은 생각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인식을 자신의 삶에 녹여내는 것은 다르니까요. “난 특별히 문학을 내 인생과 갈라놓지 않습니다. 내 인생이 문학이고, 지금 문학이 내 인생입니다.” 하지만, 이 말처럼 박경리는 이 인식을 자신의 삶에 녹여냈고 자신의 문학에 담아냈습니다. 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받은 뒤 15일 만에 그는 다시 ≪토지(土地)≫의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마치 주술에 묶인 것처럼요. 이미 그의 삶에서 문학이란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문학관의 동편으로 향했습니다. 악양면 평사리의 모습을 웅장하게 그린 그림과 ≪토지(土地)≫의 등장인물을 그린 그림, 향토적인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한 부조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소설 ≪토지(土地)≫와 관계된 것입니다. 땅이 품은 자연의 힘과 사람들의 굳건한 마음이 느껴지는 미술품들이라 ≪토지(土地)≫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듯했습니다. 그 옆에는 인물관계도가 있었습니다. 많은 등장인물이 얽히고설킨 관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욕망과 삶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역사가 도식적으로 그려진 것을 보니 뭔가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저것만으로 그들의 삶을 전부 표현했다고 하기는 힘들겠죠. 다만, 저렇게 얽히고설킨 관계가 후대로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끝나지 않은 것임을 암시하는 듯했습니다.


“삶이 지속되는 한 ≪토지(土地)≫는 끝나지 않을 것이에요.”

<작가세계>, 1994년 가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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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토지의 등장인물 그림, 오른쪽: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그림


문학관을 빠져나와 최참판댁을 구경했습니다. 드라마세트장으로 자주 이용되는 단정한 기와집이 청명한 하늘과 어우러져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것 이상의 감상은 나오지 않더군요.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과 생명과는 관련이 없는 그저 물체였으니까요. 언덕길을 내려와 드넓은 평야와 마주했을 때 사라졌던 저의 감상은 마음속 깊은 데서부터 다시 천천히 올라왔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자연의 푸른 생명이 가득한 들판, 풀벌레 소리 가득하고 잠자리 날아다니며 개구리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그 들판을 향해 두 팔 벌리고 뛰었습니다. 대지의 활력이 저한테 전달되는 듯했습니다. 신났고, 즐거웠으며 행복했습니다. 자연과 하나 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자연이 인간의 근원이라면 생명의 하나인 인간도 자연이라는 작가의 말이 온몸으로 체감되었습니다. 모두가 존엄성을 가진 생명, 자유를 갈구하는 생명 그곳에 인간이 있음을 진심으로 깨달았습니다. ≪토지(土地)≫는 이제 자연과 생명의 이야기로 제게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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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악양평야, 오른쪽: 최참판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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