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정원, 논

문학관 기행을 하며

by baekja

제가 보통 여행을 떠났던 시기는 여름이었습니다. 여름이다 보니 그냥 풀들이 자라 있는 들판과 논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다 같은 초록색이었으니까요. ‘그냥 들판이 있구나.’하고 지나쳤던 때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초가을이었습니다. 논의 벼 이삭들이 영글고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때였습니다. 아직 단풍은 채 찾아오지 않았었지만, 논의 벼들은 노란빛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연둣빛과 노란빛이 섞인 논의 모습은 푸른 다른 들판이나 산의 능선과 비교되어 확 드러났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자급률이 거의 100% 되는 곡물은 벼, 그러니까 쌀 뿐입니다. 다른 곡물들은 자급률이 현저히 낮아 현재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20% 아래입니다. 그나마도 저 자급률의 대부분은 쌀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지나다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곡물은 벼이고, 벼를 기를 논도 한반도에 산재합니다. 이런 논은 사실 너무 익숙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저조차도 대부분의 여행에서 논에 큰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도 노르스름한 벼이삭들이 아니었다면 그냥 논을 다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번 여행에서 논을 처음 인식한 것은 경주에서 통영으로 향하는 시외버스 안에서였습니다. 거가대교를 건너 부산에서 거제로 향하는데 거제도에도 가득한 논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이 섬에도 논이 참 많구나를 느끼며 논이 들어간 거제의 마을 풍경을 본격적으로 감상했습니다. 노란 연둣빛과 바다, 섬이 어우러진 풍경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지만, 무척 새로워서 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바닷가의 논이라니 아주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다음 여행에는 바닷가의 논에 서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바닷바람을 맞아봐야겠다고 다짐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논의 모습이 각인된 순간부터 저는 한순간도 논을 허투루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20230921_140946.jpg 거제 논


그런 노력은 결실을 맺어 통영에서 다시 바닷가에 있는 논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박경리추모공원의 전망대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항구 마을과 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멀어서 논이 생동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바닷가를 향해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있는 논을 보면서 저기까지 내려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가보지는 못했지만, 계단식 논이 항구 마을까지 이어지고, 마을이 바다까지 이어지는 그 수려한 풍경은 마음에서 계속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230921_163031.jpg 통영 논


논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었던 곳은 하동이었습니다. 하동은 바닷가를 벗어나면 대부분 산골이기는 하지만, 섬진강을 끼고 있어서 논이 참 많았습니다. 하동 시내에서 악양면 평사리를 거쳐 화개장터까지 가는 동안 내내 산등성이 사이로 논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조그만 논이 이어지다 악양 평야에 도착하면 시계가 넓어지면 매우 넓은 논이 등장합니다. 그 순간은 무척 감동적이죠.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섬진강과 같이 흘러내려온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인 악양평야는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 가까이서 볼 때 노랗게 익은 벼이삭들이 어찌나 탐스럽던지. 알알이 맺힌 이삭 하나하나가 눈에 생생하게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참판댁에 올라 악양평야를 내려볼 때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논이다.’ 반듯하면서도 삐뚤빼뚤한 사각형이 평야에 가득 들어차 있는 모습은 자연의 곡선과 인간의 직선이 만들어낸 거대한 정원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으면서도 그 안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더 거대한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의 일부가 되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어우러짐을 추구해온 한국의 전통적인 정신에도 잘 맞는 정원, 그것이 바로 논이었습니다.


20230922_113621.jpg 악양평야


곡성에서도 이러한 감동을 한 번 더 맛볼 수 있었습니다. 곡성 조태일 시문학관을 가는 버스 안에서였습니다. 매우 넓지는 않지만, 제법 너비가 되는 평야가 산 사이로 펼쳐지며 계단식 논이 죽 늘어서 있는 광경은 처음 보는 산골의 풍경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맑은 하늘과 논을 지키는 듯이 서 있는 산봉우리들이 함께한 그 풍경은 저를 시골의 감성에 듬뿍 젖게 했습니다. 조태일 시문학관이 리모델링 중이라 들어갈 수 없음을 산골 깊숙한 문학관의 정문에서 알게 되었을 때도 화나지 않았던 것은 산속에도 넓게 자리한 논이라는 아름다운 정원 덕분이었습니다.


20230924_103810.jpg 곡성 논


논에 대해 계속 감탄을 하고 감동하게 되자 김제에 가는 것이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호남평야를 가진 곳이었으니까요. 무척 넓은 논이 끝도 없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대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아리랑 문학관에서 더 가야 호남평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시간이 모자라 다음에 보기를 기약하고 그저 주변에 있는 논을 보며 마음을 달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저는 여행 중에 다양한 논을 보았습니다. 이 논들은 제가 느끼기에는 정원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식량 창고로 사람들을 먹여 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 특성은 논이 수탈의 대상이 되게도 하였습니다. 농민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뺏길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가득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무상 공급 해주는 땅과 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논을 재산의 대상으로만 보고 욕망에 가득 차 서로의 논을 뺏을 궁리만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것이 역사였고, 누군가의 처절한 삶이었습니다. 그런 삶의 이야기가 문학에 자주 보이기도 하죠. 논을 마냥 아름다움이 가득한 정원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논은 한반도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고, 이제는 하나의 자연경관이라고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봄이면 모가 심어지고, 여름이면 푸른 벼들이 쑥쑥 자라나고, 가을이면 노란 벼 이삭이 영그는 한 해의 순환은 늘 있었습니다. 그 많은 시간이 지나며 누군가는 논을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 생각했고, 누군가는 인간을 먹여 살리는 근본의 땅이라 생각했으며, 누군가는 수탈할 재산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를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정원이라고 생각했죠. 시간이 많았던 만큼 논은 많은 공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어느 정원보다 인문학적인 의미를 깊게 가지고 있는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가을을 맞아 여행을 떠나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벼를 추수하는 시기이니 황금빛 들녘을 보기 쉽지는 않겠지만, 본다면 한반도의 산천을 꾸미는 그 아름다운 정원의 의미에 대해 한 번쯤 더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