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ekja Oct 21. 2023

고양이

문학관 기행을 하며

  어렸을 때만 해도 보기 쉽지 않던 길고양이들이 이제는 정말 보기 쉬워졌습니다. 도시 골목골목 곳곳을 쏘다니는 고양이들은 이제 도시의 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길고양이들은 도시에서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고양이들이 야행성이다 보니 우는 소리로 인해 잠 못 드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들은 버려진 길고양이들이 불쌍하다고 물과 음식을 챙겨주는 이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벌어진 문제기도 합니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키우다 힘들다고 동물들을 집에서 내쫓는 몰상식한 인간들이 아직 많다는 데 있죠. 원래 한국의 자연환경 내에는 고양이가 그리 많지는 않았으니까요.      

뭐 고양이에 대한 이런저런 갈등과 문제는 뒤로하고 일단 고양이가 귀엽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이들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그러니까 고양이 카페가 늘어나고, 길고양이들을 보고 멈추어 서서 같이 사진 찍으려는 이들이 많은 거겠죠. 저도 고양이가 참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던 박경리 작가도 고양이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푸른 기둥 아래

노니는 고양이들이 보인다

섬광같이

생명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도시의 고양이들> 中 


 작가가 고양이에 대해 쓴 시만 봐도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박경리 작가는 고양이를 무척 사랑해서 원주의 집에 고양이 그림을 걸어두고 고양이가 지나다닐 수 있는 캣플랩을 만들어두기도 했습니다.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에서도 고양이 그림을 찾을 수 있을 정도죠. 하지만, 작가가 떠난 자리에 고양이들은 없었습니다. 박경리와 관련되었으면서도 가장 많은 고양이를 볼 수 있던 곳은 하동이었습니다. 하동군 내에는 찾기도 힘든 길고양이들이 최참판댁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가득했습니다. 최소 5마리 이상은 봤습니다. 털 색깔도 무척 다양해서 검은색, 회색, 갈색 등등 다양한 색깔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관광객들을 자주 보다 보니 사람을 보고 바로 도망가지는 않고 눈치를 보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슬그머니 도망치곤 했습니다. 사진을 찍기도 쉬운 편이었죠. 다만, 사진 찍는 와중에 가게 주인들이 화를 내며 고양이를 내쫓는 모습을 보니 고양이들이 상당히 상인들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피해를 받는 상점 주인은 화가 나겠지만, 어느 정도 피해를 주면서도 이곳에서 많은 고양이가 살 수 있는 것은 아직 많은 상점이 생명을 사랑하고 고양이를 사랑했던 박경리 작가의 정신을 잇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겠죠.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습니다.   


왼쪽 아래: 박경리 기념관의 고양이 그림, 나머지: 하동 최참판댁 근처의 고양이들


 박경리 작가가 쓴 시 말고도 고양이에 대한 시를 봤습니다. 이장희 시인이 쓴 시인데 제 마음에 드는 시였습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조용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절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봄은 고양이로다> 中 


 귀여운 고양이의 모습에 봄의 모습이 어려있다는 낭만적인 시죠. 이 시를 보고 있으면 김홍도 작가가 그린 황묘농접(黃猫弄蝶) 떠오릅니다.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계절 패랭이꽃이 피어있는 들판 위에서 노란 고양이가 제비나비를 흥미롭게 쳐다보는 그림이죠. 고양이의 묘사가 세밀하여 고양이의 심리마저 느껴지는 듯한 이 그림은 봄의 따스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느낌을 잘 표현했습니다. <봄은 고양이로다>와 딱 맞는 그림이죠. 이장희 작가의 대구에서 만난 고양이는 그림의 노란 고양이와는 달리 검은 고양이였습니다. 밤의 골목을 헤매다 우연히 마주쳤는데 경계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치는데 가만히 앉아서 쳐다보기만 하더군요.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친구 같았습니다. 대구에 가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대구에 있는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게스트하우스가 이 시를 테마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니 한 번쯤 들려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이런 숙소고 있는지 모르고 예약을 못 해서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대구 고양이


도산서원 앞에도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비를 피하려 상점 앞에 있는 마루에 앉아 홀로 비를 피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고양이였습니다. 마치 선비처럼 얌전히 앉아 가만히 바깥 구경을 하며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주에서는 숙소 근처에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털 색깔이 지저분해서 깔끔한 도산서원의 고양이와 대비되었습니다. 이것이 시골 고양이와 도시 고양이의 차이인가 싶었습니다. 아마 전주 사는 고양이가 도산서원의 고양이를 보았다면 너 참 윤택한 삶을 산다고 한 마디 해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왼쪽: 도산서원 고양이, 오른쪽: 전주 고양이


 군산에서도 많은 고양이를 보았습니다. 근대 거리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고양이들 때문에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관광지지만, 엄청 발달한 도시는 아니다 보니 고양이들의 털이 무척 윤택했고, 저녁이 되자 골목 어디에서나 고양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에게 밥과 물을 주시는 분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밥 주니까 쪼르르 달려와서 밥을 먹는 친구들이 얼마나 귀엽던지. 그중에서도 한 고양이는 무척 특이했습니다. 살이 엄청 쪄서 몸집이 다른 고양이의 두 배이던 친구는 제가 가까이 다가오자 도망가고 싶은데도 갈 수가 없어서 그냥 거대한 뱃살을 바닥에 깔고 누워버리더군요. 그 친구를 앞에 두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군산 고양이들


 길고양이 만을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안동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1층이 고양이 카페라 입구부터 많은 고양이가 바깥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들은 카페에 있기도 하고, 게스트하우스 밖으로 나가기도 하면서 이곳저곳을 쏘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바깥이 조금 쌀쌀하다 보니 안에 앉아 있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비슷하게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보는 제가 다 행복해졌습니다.


안동 고양이들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본 것은 고양이었지만, 고양이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주의 게스트하우스 안에서는 앵무새를 기르고 있어 앵무새와 인사하기도 했습니다. 통영의 박경리 추모공원에는 개가 한 마리 터줏대감처럼 누워있었습니다. 사람을 경계하는 친구였습니다. 다만, 사람이 다가간다고 으르렁거리지는 않고 조용히 멀어지는 것이 평화를 사랑하는 개 같았습니다. 그 만사 귀찮다는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아른거립니다. 벌교터미널 근처에서는 큰 닭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던 게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길고양이도 들개도 아닌 길닭(?)이라니. 덩치도 커서 가까이 갔다가는 쪼일 것만 같았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시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왼쪽: 벌교 닭, 오른쪽: 통영 강아지


 이렇게 이런저런 동물들을 많이 보았지만, 가장 많이 본 것은 역시 고양이였습니다. 이렇게 여행에서 고양이를 많이 본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마냥 귀엽기도 했습니다. 아마 고양이를 사랑했던 박경리 작가의 가호가 이번 여행에서 함께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박경리 작가처럼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양이를 좋아한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그런 연민의 감상은 아무렇게나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냥 귀여우니까 매우 귀여우니까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귀여운 고양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이번 여행은 무척 즐거웠습니다. 

이전 19화 일상을 노래한 시인, 김광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