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기행을 하며
제 여행이 자주 그랬듯 이번 여행도 한국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관광지나 다른 유적지에 붙어 있는 문학관이 많아 버스 대수가 1시간에 1대 정도는 있었습니다. 하루에 가는 버스가 5대 이하였던 영천 거조사, 장흥 보림사, 강진 무위사 등을 생각하면 감지덕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가기로 정한 문학관들이 나름 교통편을 생각하고 정한 것도 있기 때문에 버스가 제법 있는 것이었지 계획에 있지 않은 문학관 중엔 어떻게 가야 할지 답도 없는 곳들도 있었습니다. 영양의 조지훈 문학관은 대중교통으로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할지 답이 안 나오더군요. 나중에 영양에 직접 가서 부딪혀 보아야 답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자연히 자가용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언제까지 면허를 장롱에 묵혀둘 것이냐고 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시더군요. 이제는 20대 중반인지라 운전을 하지 않는 제가 걱정되셨나 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운전은 사실상 필수가 되었습니다. 회사원을 뽑을 때 운전 가능이 스펙이 되는 경우도 많고, 출장을 갈 때 운전을 못하면 머쓱한 경우가 많죠. 짐을 자유자재로 넣고 먼 길을 쉽게 갈 수 있게 하는 자가용과 그 자가용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운전 능력은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줍니다.
일상뿐 아니라 여행에서도 이러한 장점들은 극대화됩니다. 도로만 있다면 자기가 원하는 곳을 맘껏 갈 수 있게 하고, 많은 짐을 편하게 실을 수 있다는 점은 대단한 장점이죠. 좀 큰 차를 산다면 숙소를 따로 구할 필요 없이 차박을 할 수도 있으니 좋은 점밖에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행에서 운전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가는 길이 험해 무릎이 아프고 발바닥이 쑤시고, 등에 멘 짐이 제 어깨를 종일 짓눌러도 저는 제 자가용을 운전하며 여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은 수도권의 인구 집중화로 인해 지방의 버스 노선이 계속 줄고 있습니다. 어느 시골 버스터미널을 가도 시간표의 배차가 늘어난 것은 보이지 않고, 배차 시간을 빼서 시간표의 빈 곳만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내버스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외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운 옆 도시를 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대 없고, 서울 가는 버스만 가득한 버스터미널의 모습은 갈수록 지방의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도권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은 더욱 편해졌지만, 지방을 다니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여행 자체의 증가로 유명한 관광지를 가는 버스는 유지되는 편이지만, 유명하지 않은 곳은 거의 버스가 없는 편입니다. 자가용의 증가도 이런 상황을 만드는데 한몫했죠. 그래서 저는 여행을 갈 때 자주 많은 시간을 버스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 데 활용합니다. 배차 시간이 길어지면 10km 내외의 거리는 그냥 걸어가 버리죠. 택시는 비싸니까요. 누군가는 힘들지 않겠냐고 묻지만, 저는 웃으며 이 방법이 훨씬 즐겁다고 말합니다.
자가용의 가장 큰 가치는 편함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행에서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는 편함이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합니다. 운전하면 가는 시간을 줄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반박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운전은 여행의 목적지와 결과만을 보게 하고 과정은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운전하는 동안은 운전에 신경 쓰느라 차창 너머의 풍경들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지점에서 지점으로 나 혼자 이동하기에 그 지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고 눈을 감은 후 되새길 여유조차 가질 수 없습니다. 버스에 올라타 버스 기사님이 정답게 혹은 무뚝뚝하게 건네는 사투리와 인사말도 받을 수 없고, 장바구니를 지고 다니며 지역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얘기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일도 없습니다. 운전을 통한 여행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전에 친구들과 여행을 다닐 때는 몰랐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기 바빴고, 놀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교토의 거리와 올레길을 혼자 걸어보고 남도의 곳곳을 혼자 누비며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 지역의 분위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낭을 메고 걸어 다니며 대중교통을 타야 한다는 것을요. 여행객과 지역민, 상인과 여행객의 관계를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할 기회를 한 번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여행의 모든 과정을 그 지역의 것들과 함께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는 자가용에 타고 운전을 해서는 얻기 쉽지 않다는 것을요.
이번 여행에서도 제가 만약 자가용을 탔다면 보지 못했을 무수히 많은 광경들이 있습니다. 구수한 욕을 하며 동료 기사에게 인사말을 건네는 원주 버스 기사님, 매일 똑같은 시간 같은 버스를 타고 카페로 공부를 나가 버스 기사님도 어디서 내릴지 알고 있는 인제의 학생, 택배를 이송하는 것을 깜박해서 욕을 하면서도 후배에게는 친절히 부탁하며 정중히 감사를 표하는 구미 버스 기사님, 도산서원 삼거리에서 굳이 내리지 말고 도산서원 앞까지 가는 버스니 더 기다려도 된다고 친절히 알려주시는 안동 버스 기사님, 하동시장을 갔다가 무거운 짐을 들고 타는 어르신들을 위해 아직도 버스 안내원이 존재하는 하동의 버스, 하동 버스 안에서 입을 쉬지 못하시고 수다를 떠시는 어르신들까지 버스를 타면서 만날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었습니다. 그 사람 사는 냄새를 놓치고 어떻게 그 지역을 여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면허도 있고 하니 가까운 시일 내에 운전을 배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편리함은 대체하기 쉽지 않은 것이니까요. 하지만, 여행할 때만큼은 늘 저는 대중교통을 탈 것입니다. 시내버스 안에 앉아 차창 밖의 풍경을 만끽하고, 정겨운 지역 분위기를 느끼며 사람 사는 냄새를 맡는 것만큼은 절대 제 여행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무수한 이야기들이 늘 가득한 시내버스를 풀벌레 우는 소리 가득한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저는 늘 기꺼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