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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Oct 22. 2023

시간여행자의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肆)

문학관 기행 후기

 군산의 근대거리를 돌아다니다 한 독립 서점을 발견했습니다. 생김새가 참으로 예뻐 어차피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밤이고 하니 서점에서 책 한 권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군산의 근대거리가 무척 맘에 들었던지라 군산에 관한 책 한 권 사야지 싶었습니다. 보통 이런 독립 서점에는 지역에 관한 책들을 모아 파는 곳이 있으니까요. 다만, 서점의 이름은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 있어 읽지 못하고 들어왔습니다. 


 들어와서 서점의 이름을 확인하니 ‘마리서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 머리를 굴려보니 며칠 전 인제 박인환 문학관을 방문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박인환이 운영했던 서점의 이름이 ‘마리서사’였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박인환이 열었던 서점입니다. 이곳은 서점일 뿐만 아니라 김수영, 김광균, 김기림 등과 같은 시인들의 아지트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매개로 삶과 문학을 교류하는 공간이었죠. 이 이름이 같다는 기막힌 우연에 저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와, 대박. 시원한 바닷바람과 근대거리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있던 저는 문학 기행이 이어준 ‘마리서사’ 또 다른 만남에 기분이 하늘을 날 듯했습니다.


 서점 안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책이 있었고, 예상했던 것처럼 군산에 대한 인문학을 다룬 책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 하나를 뽑아 샀습니다. 책은 예쁜 종이봉투에 담아 주셨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시간여행자의 서점, 마리서사.



 이번 여행은 무척이나 길었습니다. 12박 13일이나 되는 기간동안 계속 장소를 바꾸고 움직였습니다. 무수히 많은 공간을 여행했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채집했습니다. 쉽고 재밌는 이야기도 있었고, 어렵고 지루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계속 걷고 이야기를 끊임없이 맞이하는 순간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자 살짝 지루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공간만 이동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서사를 보는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공간만을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그 공간에 있는 시간도 함께 보았고 탐험했습니다. 마리서사를 보고 9일 전의 박인환 문학관의 마리서사를 탐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뛰어넘어 70여 년 전 종로에 있던 마리서사까지 탐험했습니다. 그제야 제가 듣고 얻어온 이야기의 무수한 층들이 제 앞에 서서 말을 걸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무수히 많은 공간과 시간을 문학을 매개체로 12박 13일 동안 여행했습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나고 보면 좋지 않은 일들이 없었습니다. 많은 우연이 이야기에 이야기를 더했고, 원래 쌓여 있었던 작가들의 이야기에 제 이야기가 더해졌습니다. 제 이야기가 더해지다 보니 문학이 자연히 친숙해졌고, 조금 더 재밌어졌습니다. 아는 작가들이 늘어났고, 아는 작품들이 늘어났습니다. 제 세계가 늘어나는 즐거움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즐거움은 끝이 났고, 저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수히 많은 공간과 시간에 담긴 이야기들은 이제 글과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이제 또 똑같은 여행이 떠나고 싶다면 그 공간과 시간을 담은 글과 사진을 펼쳐보면 되겠지요. 그러면 그 즐거움을 또다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시간여행자의 서점 마리서사를 발견했을 때 즐거움을 느꼈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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