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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Oct 22. 2023

종점

문학관 기행을 하며

 종점, 막다른 끝입니다. 버스든 기차든 그 이상 갈 수 없는 지점. 일상에서 종점을 갈 일은 별로 없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집이 종점에 있는 것도 아니고, 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종점을 볼 일이 없죠. 하지만, 여행에서는 다릅니다. 늘 한 번은 종점에 들립니다. 아무도 없는 시내버스를 타고 끝까지 갑니다. 대부분의 버스 기사님은 제게 말을 걸지 않기에 공공장소인 버스가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제 것이 됩니다. 길이 안 좋아 덜컹거리고 2차선의 좁은 길을 조심히 달리는 모든 순간은 저만이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됩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종점은 박경리 뮤지엄이 있는 회촌 종점이었습니다. 종점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종점 바로 전 정거장까지 같이 타고 오신 어르신이 있어 버스에서 혼자 있을 시간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버스 정류장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종점이 뜨는 순간,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마음 자체가 차분해지고 고요해지면서도 남들은 잘 오지 않는 어느 종점까지 왔다는 설레는 기분. 그런 기분을 가지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 하늘은 흐렸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곳이 끝이니 지금부터 네가 나아가는 발걸음에는 그 어떤 도움도 없을 것이라 말하는 듯했습니다. 끝이라 정해진 곳에서 더 나아가는 것. 그것이 종점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행은 한순간이기에 언젠가는 돌아와야 합 니다. 회촌 종점에서 버스는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버스는 굉장히 과묵한 느낌이어서 어딜 갔다 왔냐고 이런저런 말을 묻는 밝은 성격의 친구보다는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는 진중한 성격의 친구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버스에 앉아 연세대 미래캠퍼스까지 가는 10분 동안은 온전히 제 것이었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고요하게 시골 풍경에 빠져들었습니다. 연세대까지 출강하러 다녔던 박경리 작가님의 발걸음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회촌 종점


 모든 종점이 시골의 분위기를 가득 풍기며 버스 한 대의 엔진 소리만 부릉부릉 들리는 조용한 풍경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많은 이들이 들리고 자주 방문하지만, 이곳이 종점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터미널입니다. 터미널이라는 이름을 한국어로 해석하면 그냥 종점입니다. 버스들이 모이고, 다시 출발하는 곳. 가장 큰 종점이 바로 터미널이죠. 나 혼자만 오롯이 즐길 수 없는 무척 커다란 종점입니다. 특히 시골에서는 많은 시내버스의 출발점이자 종점이 되기도 해서 여행을 할 때 터미널을 기점으로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여행에선 하동의 터미널이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하동버스터미널은 하동역 바로 옆에 있습니다. 사실상 하동 교통의 메카인 셈이죠. 하동버스터미널에는 큼지막하게 버스운행시간표가 붙어 있는데 시외버스 시간표는 왼쪽에 조그맣게만 있고, 오히려 시내버스 시간표가 대부분의 시간표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골의 터미널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죠. 이렇게 시내버스 시간표가 잘 되어 있으면 관광객은 무척 편합니다. 그래서 하동터미널에 도착해서 시내버스 시간표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동터미널은 시내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서 시장에 냅다 붙어 있는 장흥 터미널처럼 북적북적한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대합실에는 사람이 제법 많았습니다. 물론 매점도 있었고요. 도시의 터미널처럼 크고 정신없다기보다는 정겹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동버스터미널


 제게 있어 종점은 여행의 끝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행의 시작에 가깝죠. 새로운 곳에 도착해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본격적인 저만의 여행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종점을 갈 때면 즐겁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여행을 하는 기분이라서요. 지루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난 느낌이 확 듭니다. 제게 있어 종점은 막다른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것들을 만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곳입니다.


 여행의 진짜 종점은 집입니다. 일상이 계속되는 곳. 불편한 새로움 대신 편안한 지루함이 함께하는 곳. 집에 도착해서 만날 수 있는 새로움은 없습니다. 늘 날 봐오던 물건들, 늘 먹던 음식이 여행에서 만난 많은 것들을 대체합니다. 집에 와서 빨래를 돌리고,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차려 먹으면 정말 여행이 종점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죠. 그 모든 것들을 마무리하고 일상에 다시 돌아온 저는 지금 여행을 다 마치고 종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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