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의자
어렸을 때부터 중학교 때에 이르기까지 이 동화책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화재로 모든 걸 잃은 엄마와 아이가 열심히 일해 커다란 유리병에 동전을 가득 모아 푹신한 의자를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 잃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삶을 헤쳐 나가는 모녀의 모습과 그 노력으로 동전이 유리병에 가득 쌓이는 것을 보면서 무척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조금씩 모은 돈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뤄나간다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전이 가득 찬 유리병을 볼 때마다 저도 뿌듯해지고는 했죠. 어렸을 때 딱히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돕는 이웃의 따뜻함과 노력으로 고난을 극복해 원하는 것을 이룬 모습이 제게는 참 보기 좋았던 듯합니다.
이후 대학생 때 이 동화를 한 번 더 읽었을 땐 일하는 어머니의 고됨이 느껴졌습니다. 택배 상하차, 물류센터, 방청객, 편의점 등의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버는 일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던 때였는데 매일 식당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식탁에 기대에 잠을 자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어른의 고됨이 느껴졌습니다. 그 고됨 이후에 팁으로 받은 동전을 조금씩 유리병에 채워나갈 때의 기쁨과 거의 못 채울 때의 슬픔도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을 벌어 책임을 지고 있는 ‘어른’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처음 어른을 깨달았던 20대 초반은 이제 20대 후반이 되어 이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제는 책임에 따른 무게감 너머의 무언가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이 전부 불타는 자신의 삶에서 큰 재난을 겪고도 일어나는 강인한 정신력, 웃음을 잃지 않고 돈을 모아가는 불굴의 노력이 이제는 제 마음에 와 닿습니다. 군 전역 이후 제 삶은 큰 고난은 없었을지언정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뜻대로 된 적 없고, 제 장래는 불투명하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노력이 쌓이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에 계속 노력했습니다. 세상살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쌓이는 노력은 오히려 제게 답답함만 가져왔습니다. 평소에는 웃음을 흘리며 아닌 척 하지만, 답답함은 늘 계속 쌓였습니다.
그저께 간만에 오산천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황이 찾아온 후 생각이 많아지면 몸이 힘들어져 잘 가지 않았지만, 그날은 그냥 오산천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들으며 가는데 소리가 너무 지르고 싶었습니다. 밤이었고 사람들이 많으니 진짜로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지만, 내면에서는 계속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제야 제가 무척 답답해하고 있었음을 실감했습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계속 아파서 참아왔던 달리기를 오늘은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을 거의 뛰지 않고 살아왔기에 길게 뛰지는 못했습니다. 100m 정도 전력질주를 한 후 숨을 몰아 내쉬었습니다. 온몸에 힘을 쓰는 그 감각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답답함이 조금 해소되었습니다.
사실 제 고난은 별 거 아닐지도 모릅니다. 동화 속의 모녀만 해도 집이 모두 불에 탔었으니까요. 제가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상황도 아니라는 것이겠죠. 조금씩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제가 상상하고 꿈 꾼만큼은 아니더라도 앞에 나아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노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노력을 한다면 분명 보답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으니까요. 동전이 가득 찬 유리병을 은행에서 지폐로 바꾸고, 푹신한 의자를 사서 편안하게 밤을 보내는 모녀의 모습이 곧 제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의 노력과 그 보답을 받아 일상에서 웃음과 안정을 되찾는 그 아름다움을 오늘도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