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택시운전사>, <1987>
“진실은 언제나 하나!” <명탐정 코난>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추리 애니메이션이기에 늘 진실은 하나가 되고 진실이 밝혀지면 명쾌하게 사건이 해결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 복잡하고, 인간들이 복잡하게 얽힌 세상은 더 복잡하기에 삶은 그리 명쾌하게 해결되는 것들이 없습니다. 틀에서 늘 벗어나 있고, 틀 사이의 어중간한 회색 지대가 넓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러한 복잡한 것들을 단순히 정리하고 명쾌하게 알기 위해 틀에 집어넣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이 삶에서 얼마나 많은 비극을 일으키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민족이라는 틀, 종교라는 틀, 이념이라는 틀 등으로 사람들을 몰아넣고 자기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사고방식은 효율적이지만, 잔인했다. 가장 단순하고 명쾌했지만, 가장 비인간적이었다. 그래서 역사를 배울 때 교수님들은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하셨습니다. 역사에서 진실은 늘 여러 가지라고. 물론, 모든 역사적 진술이 다 어느 정도 진실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4·3사건의 피해자들을 전부 빨갱이로 몰아 군·경의 학살을 정당화한다거나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을 빨갱이로 모는 예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아예 벗어난 역사적 진술이 아닌 한 사람이 보는 역사의 면면은 다르기에 다양한 역사적 진술이 한 역사적 사건의 다양한 진실로 채택되곤 합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는 12·12사태를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다룬 <서울의 봄>은 12·12사태라는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의 사실 위에 관점을 더하여 12·12사태를 말합니다. <서울의 봄>은 12·12사태를 두 인물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전두광(전두환)과 이태신(장태완)의 대결과 그 승패에 따라 12·12사태가 전개되었고, 마무리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화나지만 능력 있는 전두광과 능력은 있으되 전두광의 방해작전과 윗선의 무능으로 무너진 이태신입니다. 실제로도 12·12사태를 일으키고 그것을 승리로 이끌 정도의 능력이 전두환에게는 있었습니다. 그가 한 무수한 비인간적인 선택들을 빼고 본다면 그가 능력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물론 그 비인간적인 선택들을 빼고 전두환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아야합니다.
10.26사태 이후 18년 간 독재를 한 박정희 대통령이 죽자 사람들은 막연히 민주화가 찾아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부마민주화항쟁이나 이런저런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는 있었지만, 전국적이지는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주화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무관심했거나 그저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전두환입니다. 만약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것에 대해 전국적이고 적극적인 반발이 크게 일어났다면 전두환의 쿠데타는 당장에 정권을 잡는 데는 성공했을지라도 결국 실패했을 겁니다. 하지만,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독재 체제를 갖추려함에도 시위는 대학생을 위주로 조금 일어났을 뿐 계엄령이 내리자마자 모두 진압되었고, 마지막까지 시위를 계속하고자 했던 광주는 큰 피해를 보아야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전두환의 능력에 집중해 전두환의 독재 시작이 전두환의 능력과 윗선의 무능 때문이라고 말합니
다. 이 또한 진실입니다만, 사회 분위기가 민주화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아 전두환이 정권을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진실입니다. 한 역사를 개인이 바꾸어 나가느냐와 한 역사를 많은 사람들과 사회가 바꾸어나가느냐에 대한 관점 차이로 이렇게 진실이 두 가지가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을 중요시하는 요즘은 역사를 많은 사람들과 사회가 바꾸어나가는 식으로 서술하며 정치권의 지도자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택시운전사>는 이런 일반인의 이야기입니다. 한 개인 택시운전사가 외국 기자를 태우고 광주를 가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목격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회고록만 의존해서 상상으로 만들어낸 영화다 보니 가장 왜곡된 이야기가 많은 영화이긴 합니다만, 한 소시민의 시선에서 바라본 광주민주화운동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무슨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몇 명의 택시운전사와 몇 명의 기자, 그리고 군인들의 폭력에 항거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들. 아마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평범한 일상을 살았을 사람들은 폭력의 시대 앞에서 비일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비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참합니다. 특히 일상을 살다 온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본 사람들의 모습이라 더욱 처참합니다. 병원에는 붕대를 잔뜩 감은 부상자들이 넘치고, 죽은 사람들은 많은데 광주에 있는 관의 개수는 한정적이라 모든 시신을 관에 넣지도 못했습니다. 군인에게 끌려간 이들의 시신은 구덩이에 묻어지고, 논두렁에 버려지기도 했습니다. 평화로운 서울의 모습을 보다 온 주인공 김사복의 눈으로 본 광주는 서울과 대조되어 더욱 처참합니다. 이토록 광주민주화운동을 영웅적이지 않고, 담담하고 비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일반인의 시선으로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반인이 본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보다는 비극에 가까웠습니다. 역사책에서 볼 때는 대단한 투쟁으로만 보였던 한 사건의 다른 진실은 잔인하고 비참한 비극이었습니다.
김사복과 외국 기자는 자신들의 본 광주의 진실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성공했습니다. 광주의 진실은 묻히지 않았고, 빨갱이라고 탄압받던 이들이 민주화운동 투사로 복권되는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이건 이후의 이야기이고 당시에는 참담함과 슬픔, 억울함이 모두의 가슴속에 잠들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사회를 바꾸려는 하나의 몸짓이었고, 7년이 지난 후 전두환을 몰아내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인의 시선에서 사건을 살펴보았다면 영화 <1987>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개인들을 제3자의 시선에서 살펴봅니다. 검사, 대공처장, 경찰, 안기부장, 교도관, 민주화운동가, 평범한 대학생까지 다양한 시선에서 보는 1987년의 상황은 정말 복잡합니다. 누군가는 그냥 검사를 쉽게 보는 게 열 받아서, 누군가는 빨갱이를 잡기 위해, 누군가는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누군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누군가는 민주화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주변인들의 영향으로 이런저런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6월 민주항쟁으로 귀결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합니다.
영화 <1987>의 내용은 역사를 바꾸어 간 것이 사회의 분위기와 많은 개인들의 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 인물만 조명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에게 조명을 비추고, 마지막에는 광장에 몰려나온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며 현재의 민주화가 한 영웅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힘을 모음으로써 이뤄졌음을 보여줍니다. 1987년의 여러 사건들이 누구의 손에 어떻게 벌어졌고, 그것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진실은 다르게 적힐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참여했고, 그 사람들이 보는 관점마다 사건은 다르게 적힐 겁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 항쟁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이 독재를 몰아내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진실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해졌습니다. 어느 때는 이념적으로만, 어느 때는 민족적으로만 바라보던 역사는 이제 다양한 틀로 보게 되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시대가 왔고, 그 어느 틀에 속하지 않아도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 시대 속에서 우리는 역사를 기록합니다. 역사가들이 기록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시선에서 과거의 역사를 감독의 기준으로 기록하는 영화 또한 현재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는 현재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법이고, 현재를 사는 우리가 과거에 건네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대화만큼이나 다양한 진실들이 수용되고, 그 진실을 수용한 현재가 더 많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