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중학교 음악실은 무척 컸다. 2층으로 이어져 있었고, 푹신한 쿠션이 달린 책상 일체형 의자가 두 층에 걸쳐 놓여있었다. 그 앞에는 피아노가 놓인 무대가 있었고, 그 뒤로 창문이 있었지만, 늘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음악실은 무척 어두웠다. 그 음악실을 사용한 것은 1학년 때가 전부였다. 매번 음악실 갈 때마다 영화관 가는 것 같아 무척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나름 영화관의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수업이 일찍 끝나고 남은 5분이나 10분 동안 음악 선생님이 영화를 틀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때 보았던 영화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10년이 넘게 지난 현재 내가 기억하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내용은 유튜브나 친구들에게 보고 들은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세대에서 추천하는 로맨스로 늘 꼽혔기에 그 내용을 알고 싶지 않아도 계속 알게 되었다. 특히 피아노 대결 부분은 정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 내가 알고 있는 피아노 대결의 기억은 중학교 시절의 기억이 아니다. 유튜브에서 본 최신의 기억이다. 정작 내가 이 영화에 대해 가장 오래 가지고 있는 기억은 마지막 장면에서 상륜이 샤오위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시끄러운 친구들의 이야기 속 음악실에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오늘 다시 봤다. 결말은 알고 있지만, 하나하나 세세한 부분을 보며 ‘아, 이런 장면이 있었지!’하고 감탄하며 즐겼다. 처음 40분간 이어지는 상륜과 샤오위의 로맨스에 감탄하고, 그 이후에 과거와 현재가 엇갈리며 생기는 많은 오해를 안타까워하고, 샤오위를 믿어주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짜증을 냈다. 마지막에 주걸륜이 교실 문을 열고, 샤오위를 찾았을 때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중학생 때는 수업 시간에 수업 안 한다는 점이 즐거웠는데 이번에는 영화를 보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었다. 다만, 영화를 볼 때 영화 자체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종종 14년 전 중학교 음악실에 앉아있는 듯한 향수에서 오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한 5년 정도 피아노를 배웠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재능도, 열심히 연습하는 열정도 없었기에 상륜처럼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악보도 읽을 줄 알고, 악보에 따라 피아노를 칠 수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칠 수 있는 정도였다. 절대 연주는 아니었다. 음악에 그렇게 재능이 없었으니 당연히 초등학교 음악 시간은 나에게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자연히 피아노 학원은 그만 다니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음악 시간은 여전히 나에게 두려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중학교 첫 음악 시간에 본 영화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중학교 때 보여준 로맨스 영화가 나에게 어떤 감동을 주겠는가? 사실 진짜 마지막 상륜의 웃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즐거웠을 뿐. 나중에는 영화는 안 보고 애들이랑 떠들었다. 사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상륜의 웃음을 보며 중학교 음악실에 앉아있는 나다.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영화의 주제곡인 비밀을 들을 때마다 나는 중학교 음악실 의자에 앉아있다.
어떤 영화는 영화의 내용보다 그 영화를 보게 된 이유나 영화를 보고 있는 상황이 더 기억에 남는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영화다. 영화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과거로 돌아간다는 영화의 내용과 음악 영화라는 영화의 장르 때문에 그 영화를 보던 과거가 절로 떠오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즐거웠던 중학교 시절의 향수를 떠올릴 때 <말할 수 없는 비밀>의 ost인 <secret>을 듣곤 한다. 그럼 그 시절의 장면들이 바람처럼 나를 덮쳐와 나를 감싸고 잠시 그 시절을 느끼고 보게 해준다. 오늘도 상륜과 샤오위의 피아노가 잠시 잊고 있던 그날로 데려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