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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Nov 26. 2024

글을 쓰는 이유

<순간 수집가>

 처음 글을 썼던 계기는 그냥 써보고 싶다였습니다. 하나하나 쌓여가는 글을 보며 즐거웠고, 신났습니다. 즐거움과 신남만으로 글을 계속 쓸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동기가 필요했고, 저도 모르게 갖고 있던 글을 쓰는 동기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내 경험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제 살아가는 순간을 수집하고 모아두어 전시하고 싶다는 욕망이 글을 쓰게 했고, 이 욕망은 제가 여전히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제 경험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쓰는 것처럼 많은 사람은 자기 경험을 놓치지 않으려 사진을 찍습니다. 그것을 조용히 보관하기도 하고, SNS에 올려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도 합니다. 사진이 생기기 전에는 무엇으로 경험을 기록했을까요? 당연히 글이 있을 것이고, 시각적 자료로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림은 예술이지만, 그 이전에는 기록을 위해 그려졌고, 사진이 있기 전에는 시각적 기록의 거의 모든 것을 담당했습니다. 이것을 재현이라고 합니다. 현실의 경험, 순간을 재현하여 만들어낸 시각적 자료, 그림의 중요한 정의 중 하나였습니다.


 사진이 생기고 나서 그림은 ‘가장 완벽한 재현’이라는 의미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현실을 본 대로 완벽하게 그려내는 재현은 편한 첨단 기술인 사진이 그 의미를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재현의 의미를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닙니다. 그림은 이제 화가가 생각한 대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한 대로 그린 것이 어떻게 재현이 되냐고요? 사실 우리가 인지하는 시각적 상은 눈으로 보는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들어온 빛을 신경이 신호로 전달하여 뇌에서 만들어내는 상입니다. 이미 뇌에서 생각을 거쳐 만들어낸 상인 것이죠. 똑같은 순간을 보고 있더라도 사람에 따라 그 상을 달리 볼 수 있는 겁니다. 즉, 이제 화가들은 가장 보편적인 상을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기의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해서 그리는 어쩌면 진정한 의미 재현을 그림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순간 수집가>의 막스 아저씨도 이런 재현을 하는 화가입니다. 막스 아저씨의 그림을 보면 매우 현실적인 배경을 그렸지만, 그 안에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늘을 떠다니는 차, 초원 위에 세워진 3층 높이의 선물상자, 캐나다의 눈밭에서 나타난 코끼리들, 철도 회사 사무실 안의 펭귄들, 열기구에 의해 띄워진 거대 리코더 등등 일상의 요소를 전혀 있지 않을 만한 곳에 배치하여 자신만이 본 현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을 초현실주의라는 미술 사조의 데페이즈망이라는 기법이라고 종종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막스 아저씨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이 그려낸 것은 분명 마주했던 순간들이고, 그 순간의 앞과 뒤를 모두 유려하게 풀어낸 이야기들이니까요. 보는 이들에게는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막스 아저씨는 자신이 경험한 순간을 그림 안에 수집해 두었습니다. 


 막스 아저씨의 그림을 마주한 주인공은 그림 하나하나에 금방 빠져들었습니다. 그 속에 숨겨진 그림으로 가는 길을 찾아 순간의 이야기들을 듣고, 읽어냅니다. 어쩌면 주인공은 막스 아저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막스 아저씨가 말하기 전까지 단 하나의 요소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의 바이올린 선율이었죠. 주인공과 함께했던 순간부터 막스 아저씨에게는 주인공의 바이올린 선율이 자신의 모든 순간에 들어있었습니다. 막스 아저씨가 떠난 후 켜켜이 먼지가 쌓인 바이올린을 주인공은 다시 집어 듭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음악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사람이 됩니다. 순간의 재현을 넘어 그 순간의 뒷이야기까지 막스 아저씨는 그림으로 재현해낸 것이죠.


 막스 아저씨의 순간 수집을 보면서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았습니다. 순간을 모아두고 단순한 저만의 재현으로 글을 쓰는 것 이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담아둔 순간이 더욱 널리 퍼지고, 이야기되고, 누군가의 현실에 다시 재현되는 글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설렙니다. 제가 본 순간, 제가 재현한 순간이 다른 순간으로 이어지는 때가 온다면, 제가 수집해 온 무수한 순간들은 그때 찬란하고 따뜻한 행복을 가져다 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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