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아저씨

by baekja

나는 동안은 아니지만, 또 그렇게 노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군복을 입고 있으면 23이라는 젊은 나이에 아저씨라는 말을 엄청 들어야 한다. 아주 그 말 한 마디가 비수에 날아와 꽂히는 게 짜릿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다. 좀 20대 같아 보이면 군인 형이라고 한 마디 해주면 안 되는지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직 형 소리를 들을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보다. 집에서도 아재 드립 몇 번 치면 진짜 아저씨라서 그런 거 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핀잔을 들을 때마다 아주 부들거리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절망스럽게도 내가 아저씨 소리를 들은 건 군인이 되어서가 아니라 고등학교 때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펙 좀 쌓고 봉사활동 시간도 쌓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자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했었다. 흔히 우리가 아는 도슨트 같이 사람들 앞에서 문화재를 설명하는 멋있는 자원봉사가 아니라 어린이 박물관에서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기물 파손을 하지 않게 하려고 지키고 가만히 서서 있는 장승과 다를 바 없는 자원봉사였다. 이런 불쌍한 자원봉사를 하는 10대 청년에게 아저씨라는 말을 한 건 다름 아닌 30대가 넘어 보이는 아줌마셨다. 그저 지키고 있을 뿐인 사람에게 건축 구조 조립하는 걸 물어보더니 모른다고 하자 “아저씨가 모르면 어떻게 해요?”라는 명언을 남겨 10대의 순수한 마음에 깊고 깊은 스크래치를 남기셨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아저씨라는 단어는 군대에 오자 다시 듣게 되었다. 군복을 입고 있으면 대부분 그냥 아저씨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때의 일은 백령도에 처음 입항하던 날이었다. 훈련소에서 준 군용 개인 지급 물품이 가득 들은 의류대(더플백)을 배 화물보관소에서 빼고 있던 나에게 4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그리고 남긴 한마디. “아저씨, 저기 있는 가방 좀 빼줘요.” 당시 여기저기 신경 쓸 정신이 없던 신병이던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가방을 빼드렸지만, 이내 다시 생각해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젊은 남자를 부르는 다른 말인 총각, 청년 다 놔두고 아저씨라니! “내가 아저씨란 소리 들으려고 나라 지키러 군대를 왔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이번 기회에 내가 아저씨라는 소리를 왜 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찾아보기로 했다. 일단 국어사전. 부모와 같은 항렬에 있는 아버지의 친형제를 제외한 남자를 이르는 말, 결혼하지 않은 아버지의 남동생을 이르는 말, 고모부나 이모부를 이르는 말. 여기 도대체 어디에 내가 3,40대 아주머니들께 아저씨라고 불려야할 이유가 있단 말인가? 아주 이해가 되지 않던 차에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하나가 아님을 알게 되는 국립국어원 사이트의 질의응답이 있었다.


그 질문은 요약하자면, “왜 남자들은 젊은 때나 늙은 때나 아저씨라고 불려야 하나? 다른 좋은 말은 없나?”라는 질문이었다. 원빈처럼 아저씨를 붙여도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없는 나와 같은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립국어원의 대답은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국군 아저씨/이웃집 아저씨/기사 아저씨, 여기서 세워 주세요.’와 같이, 남남끼리에서 남자 어른을 예사롭게 이르는 말로 '아저씨'가 쓰이고 있으므로, 이러한 쓰임을 고려하면 문의하신 상황에 '아저씨'를 쓰는 것도 별 문제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참고로 알려 드리면, 젊은 남자를 부르는 말로, '○ 군', '○ 선생님', '○○○ 선생님', '○○○ 씨'를 쓸 수 있습니다.” 좀... 부정해주면 어디가 덧나는지 묻고 싶다.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니. 아무래도 국립국어원의 답변자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쨌든 결국 남남끼리에서 성인 남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말로 대체로 쓰이고 있으므로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는데, 사실 이런 식으로만 보면 그렇게 나쁜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저씨라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나쁜 건 왜일까? 아니 왜 20대 청년들이 대부분 기분 나빠하는 것일까? 아저씨라는 말에 담긴 나이의 무게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고, 자신을 존칭으로 부르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 군인들이 느끼는 열등감을 배가 시켜주는 말이기도 해서 군인으로서는 더 큰 불만을 느끼는 것 같다. 나라를 지키러 군에 자원해서 입대했더니 아저씨라니!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군인 형, 오빠, 언니, 누나 등의 발언이 아닌 아저씨라는 명칭으로 편지를 쓰기도 하고 나라를 지켜주는 소중함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쓰는 말이 존칭이 아닌 아저씨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매우 불만이지만, 매우 오래된 관습인지라 바꾸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누구나 3,40대의 불특정한 남자를 보고 아저씨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그저 군인을 보고 아저씨라고 칭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군대에 와서 고생하는 군인들에게는 청년, 오빠, 형, 또는 누나, 언니 같은 말을 써주는 것이 좀 더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예우를 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아저씨라는 말이 듣기 싫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글이지만, 군인에 대한 예우가 좀 더 좋아져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친한 친구끼리 사석에서 장난으로 “군대 나오면 아저씨지!”라는 발언이야 웃어넘길 수 있지만, 공석에서도 군인 아저씨를 계속 사용하는 건 조금 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저씨라는 말이 사람을 정말 ‘예사’롭게 부르는 말이라면 자신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려가며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함부로 쓸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군인이 군복을 입고 사회에 나와 사고치는 게 눈에 띄어서 부정적인 인식을 줄 때도 있지만, 그런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할 군인들이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쯤은 군인 아저씨라는 말보다는 다른 말들을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