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사주를 봤다. 사주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냐 하면 ‘딱히’라는 말을 내뱉을 나지만, 무언가 기댈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도 막막한 상황은 기억에 없기에. 짧지만, 다양한 삶의 경험에서 아무리 찾아도 상황을 타파할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제법 많은 돈을 내고 AI가 봐준 그 사주는 물과 파란색을 가까이하라는 조언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갑할 때마다 강과 바다, 안 되면 주변 천이라도 찾아가는 게 그런 데 이유가 있을까?
단순히 이 영화도 그런 이유에서 머리에 남아 있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유튜브에서 본 소개 영상에서 물을 따라 유영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장면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다시 보려고 이 영화를 꺼내드니 두 버전이 있었다. 하나는 실사, 하나는 애니메이션. 실사와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에는 20년 가까운 간극이 있었고, 내용도 제법 다른 듯했다. 실사는 그 말이 담아내는 것처럼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를 묘사한다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애니메이션은 동화나 판타지에 나올 이야기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아마 실사 영화의 결말은 가슴이 아릴 것이고, 애니메이션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는 얘기겠지. 가끔 현실은 그 어떤 동화보다 더 동화같고,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 같지만, 냉혹하니까. 그래도 종종 현실에서 일어날 작은 기적에 마음을 기대보기도 한다. 없지는 않지만, 흔하지는 않을 그런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이빙 샵에서 알바를 하며 취미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남자가 있다. 이름은 츠네오. 해양생물과 관련된 과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집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알바를 구하고 있다. 그가 공부에 알바까지 힘든 일을 병행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멕시코시티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 해양생물을 공부하고, 그 바다에서만 사는 클라리온엔젤이라는 물고기를 보는 꿈. 그의 꿈은 확고하고 빛나기에 누구나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그걸 이룰 학력과 체력도 충분하니까.
할머니의 과보호 아래 집 밖을 거의 나가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이름은 쿠미코.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아파 동작이 자유롭지 않았던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그림이다. 책과 인터넷으로만 보아온 바닷속을 그린 그림은 황홀했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를 무척 꺼려한다. 남에게 드러내는 것 자체가 익숙지 않고, 외부와 단절된 삶을 늘 살아왔기에.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우연이다. 경사로에서 휠체어가 실수로 밀렸고, 휠체어에서 튕겨져 날아가는 쿠미코를 잡은 것은 츠네오였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하필 그 시간에 그 공간에 어떻게, 왜 둘이 만났을까? 알 수 없다. 그냥 삶의 선택 속에서 마주쳤을 뿐. 삶의 우연을 만드는 것도 선택이지만, 우연을 개연으로 만들어나가는 것도 선택이다. 구해줬을 뿐인 사이가 될 뻔한 것을 붙잡아 인연으로 만든 것은 쿠미코의 할머니다. 알바가 필요한 츠네오에게 쿠미코의 관리를 대가로 두둑한 시급을 약속한다. 조건은 딱 하나 쿠미코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쿠미코는 마음이 문이 닫힌 상태였다. 자기를 조제라고 부르라는 것을 빼면 츠네오를 변태라고 부르며 멀리한다. 시키는 것은 하나하나가 어이없는 것들뿐. 종일 정좌자세로 있으라고 하거나 다다미의 구멍 개수를 세게 시킨다거나 네잎클로버 10개를 찾아오라고 말한다. 네잎클로버 10개를 모은다고 기적은 일어날 리가 없기에 조제는 나간다. 자기가 마음으로만 봐온 바다를 실제로 보러.
조제가 사라지고, 츠네오는 조제의 방에 들어가 본다. 고래가 위를 자유롭게 헤엄치고 다정하면서 아담한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아름다운 상상의 바다에 츠네오는 눈을 뺏긴다. 그의 꿈과 그녀의 꿈이 맞닿는 순간이다. 꿈이 맞닿은 순간 그는 그녀를 놔둘 수 없다. 조제는 바다까지 굳이 데려다주는 이유를 묻는다.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가 이상향인 츠네오가 대답한다.
“아니 어떻게 보일까 해서. 숲이랑 사막 뉴욕이랑 파리도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니까.
그림을 그리다니 놀랐어.
그런 바다가 있다면 즐거울 거야.”
서로의 마음을 터놓게 되고, 변태 츠네오는 관리인 츠네오로 이름이 바뀐다. 바다를 향해 끝까지 가는 것을 도와주고, 츠네오의 품에 안겨 조제는 바다를 만끽한다. 둘의 관계는 둘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꿈과 함께 바뀌어간다.
바다로 시작한 관계는 공원, 요리점, 대관람차, 수족관, 도서관을 거치며 깊어진다. 둘은 표현할 수 없지만, 특별한 관계가 된다. 서로와 함께하는 순간이 즐겁고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관계. 말로 꺼내기는 힘들지만, 몽글몽글한 그 관계가 서로에게 더 다가가게 한다. 이제 둘에게 서로는 더없이 소중한 관계가 되었기에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유일한 마음의 걸림돌이 된다. 꿈으로 만난 그들이기에 꿈을 어기고 두 사람만을 향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관계의 끝을 의미한다. 삶은 냉혹하여 이 끝을 앞으로 당겨온다.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조제는 꿈을 포기하려 했다. 그런 조제를 말리려다 사고로 츠네오의 꿈도 망가진다.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츠네오는 바닷속에서 점점 숨이 막혀 죽어간다. 그들의 꿈이 망가지고, 관계도 망가졌지만, 이 모든 것을 되돌리는 것은 그들을 만나게 해준 꿈이었다. 조제의 바다는 츠네오의 망가진 바다를 다시 채워주었다. 꿈은 만나다 못해 뒤섞여버렸고, 그들의 관계는 좌절을 극복해낸 후 다시 깊어진다.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는 만큼 멕시코로 떠나야 하는 츠네오의 꿈은 멀어진다. 그걸 알고 있기에 조제는 떠나려한다. 하지만, 굳이 그래야만 할까? 조금 힘들더라도 관계와 꿈을 전부 붙잡는 선택을 할 수 없을까? 같은 꿈을 꾸며 미래를 이야기하고, 서로의 만남에서 즐거움이 가득한데 굳이 포기해야 할까? 꿈 때문에 관계가 조금 멀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걸 끊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츠네오는 채 재활이 다 되지 않은 다리로 달린다. 그는 둘 다 포기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이미 있었던 꿈과 우연과 사건 속에서 새로 쌓아올려진 인연, 이 전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것은 이런 선택이다. 처음 둘이 만났던 그 경사로에서 다시 휠체어가 미끄러진다. 조제는 다시 휠체어에서 튕겨져 나갔고, 그곳에는 다시 츠네오가 있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껴안는다. 작은 기적이 거기 있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 츠네오는 멕시코로 떠났고, 조제는 사무직 직원으로 일하며, 그림을 그린다. 관계도 여전하다.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봄날 봄방학을 맞아 츠네오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조제다. 조제에게 츠네오는 변태도 관리인도 아닌 단 하나의 고유한 츠네오다. 꿈과 사랑이라는 관계를 모두 얻어낸 꽉 닫힌 해피엔딩. 동화 같으며 판타지 같은 이야기. 누군가의 평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지고한 순애’
내가 답답할 때 물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은 사주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저 내 선택일까? 나는 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선택이 만들어낸 우연이, 그리고 사건들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미래는 현실 같을 수도 동화나 판타지 같을 수도 있다. 모든 서사가 입체적이고 복잡해야만 현실일 이유는 없다. 사실 가장 현실을 바꾸는 것은 복잡한 마음 위에 새겨진 화려한 말들이 아니라 깊은 고민 끝 나온 단순한 몇 마디일 수 있으니까.
현실과 허구를 비교하며 복잡한 얘기들을 꺼내고 이런저런 생각과 말들을 붙이다보면 될 것도 안 되기 마련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정말 좋아하는 것 두 개가 있는데 그걸 포기할 텐가? 어떻게든 붙잡을 생각을 해야지. 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보수적이고 단순하여 둘 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대단하기에 둘 다 이룰 수 있다. 그런 희망이 사람을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찬란한 꿈을 이뤄내며 서로에 대한 따뜻하고도 소중한 마음을 이어나가는 츠네오와 조제가 오랜 기간 기억에 남을 듯하다.
벚꽃 아래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한 번도 그리 달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빼빼로 과자가 무척 달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