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도 신도시가 있습니다. 무려 전선이 지하에 매설되고, 2018년에 만든 깔끔한 아파트가 즐비한 곳, 대관령면입니다. 여름에도 밤에 20도가 잘 넘어가지 않는 그곳은 평창 알펜시아가 있는 곳이며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평창 자체가 춥지만, 평창에서 제일 추운 곳을 얘기하면 늘 대관령면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창에서 유일하게 배스킨라빈스와 스타벅스가 있는 대관령면은 평창읍에서는 차로 1시간 30분까지 걸리는 아주 먼 곳입니다. 다만, 진부면에서는 차로 20분, 친구가 차를 몰고 온다면 아주 가기 좋은 곳입니다.
고향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오산에서 차로 안 막힌다면 두 시간, 새벽 다섯 시에 출발한 친구들은 7시에 도착했습니다. 5월의 봄이 완연했는데 이때도 분명 해지면 추우니까 바람막이는 필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들 잘 챙겨 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피곤해 보였지만, 온 김에 열심히 구경하자는 마음으로 조금 쉬고 바로 움직였습니다. 아침은 ‘친정 엄마’에서 다슬기 해장국을 먹었습니다. 다슬기가 살짝 비린 맛이 있어 단짠단짠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연주의 입맛(?)을 가진 사람들은 다 좋아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잠시 누워 있다가 슈퍼 J인 제 일정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대관령면으로 넘어가는 언덕길 드라이브였습니다. 진부에서 대관령으로 넘어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잘 닦인 직선도로와 구불구불 언덕도로입니다. 저희의 첫 목적지인 용평리조트는 언덕도로와 가까워서 언덕도로를 타게 되었습니다. 맑은 공기에서 보이는 푸른 하늘과 천천히 지나가며 보이는 산의 푸른 능선은 피곤한 친구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고, 모두가 여행 왔다는 감탄사를 뱉어내게 만들었습니다. 공기의 선선함은 드라이브 내내 창문을 열게 했죠.
용평리조트에 온 목적은 발왕산 케이블카였습니다. 왕복 7.4km, 도착 고도 해발 1,458m의 발왕산 케이블카는 힘들이지 않고, 높은 고도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등산과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아무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는 경험을 만끽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앞의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향해 티켓을 끊었습니다. 평창군민은 무료! 아주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케이블카를 탑승했는데 뭐가 됐든 매우 높은 곳을 오르다 보니 속도도 빠르고 케이블카와 산 능선과의 높이 차이가 제법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고소공포증이 심하다며 당황하기 시작하더군요. 못 버틸 건 아니었지만, 흔들면 죽여 버린다며 협박했습니다. 조용히 수다만 떨다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은 추웠습니다. 5월 중순에 바람막이까지 입었는데 꽁꽁 싸매야 했습니다. 참 쉽지 않은 곳입니다. 평창. 바람은 무지막지하게 불어서 눈을 뜨기도 힘들고 위의 전망대는 조금씩 흔들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시원함과 맑은 공기, 아름다운 풍경이 그 모든 것을 잊고 넋을 잃고 바라보게 했습니다. 정상은 짤막한 산책길인 천년 주목 숲길과 이어집니다. 도암댐과 끝없이 늘어진 산이 어우러진 풍경, 푸른 주목과 함께하는 고즈넉한 숲길은 마음에 평화를 찾아주었습니다. 식물 전공한 한 친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한두 개 식물을 설명해 주더군요. 멋있다고 칭찬해 준 뒤 그런 모습을 이제 소개팅 가서 보여줘야 모솔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친절히 말해줬습니다. 그 친절함은 바로 욕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쉬웠습니다. 평탄한 주목 숲길의 끝에는 발왕산 정상비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상비와 찍은 사진이 한 친구의 카톡 프사가 되었습니다. 데려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내려올 때도 고소 공포증 친구를 달래며 내려왔습니다. 케이블카에서 블루투스 연결을 해서 노래를 들으며 조금은 안정되게 내려왔습니다. 다 보고 오니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대관령면의 중심지로 가서 도암식당을 갔습니다. 오삼불고기 집인데 대관령면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삼불고기가 유명하더라고요. 맛나게 먹었습니다. 원래는 블루리본이 10개가 넘는 유명한 집인데 그날따라 사람이 없어서 편하게 먹었습니다. 볶음밥까지 시원하게 다 비벼먹으니 배가 불렀습니다.
그다음 향한 곳은 삼양 목장, 삼양 목장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 셔틀버스가 잘 되어 있어서였습니다. 뭐가 됐든 목장이 산에 있다 보니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는데 친구들이 전부 오를 자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입장에서도 ‘굳이’ 긴 해서 삼양 목장을 골랐습니다. 삼양은 우리가 아는 그 삼양입니다. 그래서 기념품점에 가면 라면이 가장 많습니다. 맵탱을 여기서 처음 사봤는데 나름 입맛에 맞아서 종종 먹고 있습니다. 불닭볶음면은 제 최애 중 하나고요. 여기서 시음하라고 음료를 나눠주었는데 정말 맛이 없어서 냉장고에 넣어놨던 것이 자취 끝나고 나갈 때까지 남아 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언젠간 먹어야지 먹어야지 하면서 결국 안 먹고 버리고 갔습니다. 가끔 왜 그런 걸 만드는지 식품회사의 생각이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중간에 양몰이 개 시연을 봤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강아지가 신호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군견병을 한 입장에서 저런 훈련을 하기 위해 사육사와 강아지가 얼마나 많은 호흡을 맞춰야 하는지 알기에 둘의 유대감이 잘 느껴졌습니다. 양을 꺼내서 풀을 먹인 뒤 다시 울타리 안으로 보내는 것을 늘 영상으로만 봐왔었는데 실제로 보니 무척 신기했습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계속 올라가 목장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습니다. 대관령 위에 올라서는 것은 인생 처음이라 그 풍경들을 눈에 담기 위해 감탄사를 연발하면서도 계속 둘러보았습니다. 흰 풍차와 더없이 가까운 하늘, 멀리 보이는 강릉의 경포대와 바다. 느긋한 곡선을 뿌리며 연녹색을 눈으로 보내는 산등성이들까지. 근데 저기 능선 너머로 초록색 구체 하나가 보였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무언가. 레이더였습니다. 문득 공군 부대 중에 하나가 황병산에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대관령면에도 황병산이 있죠. 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명복을 빌었습니다. 당장 바람도 계속 불고, 5월에도 추운 여기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저 부대는 진짜 얼어 죽겠구나 싶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고생하시는 후임들에게 따봉을 날려준 뒤 관광객인 저는 좋은 풍경이나 마음껏 감상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소화도 시킬 겸 잠시 걸었습니다. 아무래도 햇볕이 강한 5월이다 보니 바람이 안 부는 곳은 더웠습니다. 숲길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 앞에서 땀을 닦으며 바람을 맞는데 소가 다가왔습니다. 눈빛이 예뻤습니다. 근데 눈은 안 마주쳐주고, 무심하게 도망가더군요. 참 붙잡기 힘든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려와서는 기념품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나눠먹었습니다. 매우 비쌌는데 맛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남자들만 모인 모임이라 가성비는 아니라며 투덜대다 다시 차에 탔습니다.
대관령면 하나로마트에 들러 발왕산 막걸리와 평창 메밀 막걸리를 기념품으로 사고, 집에서 먹을 과자와 술도 조금 샀습니다. 이제는 직선 도로로 달려 제가 일하던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을 구경하고, 유천 막국수에서 꿩만두에 막국수를 먹었습니다. 저녁까지 배불리 먹었으니 야식을 먹어야죠. 치킨과 라면에 술을 먹었습니다. 모두 만족했는지 다음부턴 저한테 맛집을 찾게 시키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아, 맛집이라니. 나 그런 거 몰라……. 진부면은 몇 개 없어서 쉬운 거지.
마지막으로 입가심을 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 오자는 얘기를 했습니다. 문제는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오대천 너머에 있어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는 점이었죠. 밤에 비가 조금 왔는데 바람이 무척 강하고 추워서 준비를 하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위대하고 강력한 자연 앞에 인간의 준비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친구 한 명은 우산을 떠나보내주어야 했고, 저는 우산 피기를 포기했으며, 다른 한 명은 아빠 우산이라 버텼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데 재난영화 한 편 다 찍고 온 우리는 눈물 젖은 아이스크림을 다 먹지도 못했습니다. 배불러서. 배도 부르고, 비로 asmr도 틀었으니 잠이나 잤습니다. 한 친구는 그 와중에 핸드폰 게임 자동 사냥 돌려놓고 자더군요.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친구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났습니다. 그날 이후로 대관령면 여행을 가지 않았으니 제게 대관령면 구경을 시켜준 친구들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친구들은 무료 숙박 평창 여행을 했고, 저는 대관령면 여행을 했으니 윈윈이었습니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요. 요즘 사람을 수단으로 쓴다는 얘기를 제법 듣는데 서로가 서로의 수단이 된다면 그거야 말로 건강한 관계가 아닐까요? 수단 이전에 저는 그 친구들이 와서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한 거고, 친구들은 제가 있으니까 온 거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싶습니다. 15년을 본 징글징글한 친구들을 그래서 여전히 제가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