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면에서 예비군 훈련하기

by baekja

대한민국 남자 분들이라면 면제 분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예비군을 가보셨을 겁니다. 예전에야 이런저런 썰들이 많이 나오는 낭만의 예비군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엄청 편한 병영 캠프정도이죠. 공군 예비군은 화생방이 있어 지옥이라 불리긴 하지만, 저는 날씨 덕분에 한 번도 화생방을 안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날씨님. 공군예비군 4년 중에 2년은 코로나라 안 가거나 근처에서 당일치기로 받았고, 2년은 서산비행장에서 받았습니다. 2박3일 동안 밥 먹여주고, 훈련비까지 챙겨주니 백수 입장에서는 잠시 눈치 안 보고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이 생기면 예비군이 상당히 귀찮아집니다. 특히 사기업은 경우에 따라 미루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죠. 하지만, 제 직장은 국립 박물관이라 아무 문제없이 꼬박꼬박 다 다녀왔습니다.


예비군 5년차부터 지역 예비군을 합니다. 원래는 오산시 중앙동대였지만, 전입을 하면서 평창군 진부면대로 바뀌었습니다. 진부면은 인원이 적어서 봉평면·용평면, 대관령면과 같이 훈련을 받습니다. 대관령면이 가장 신도시(?)라 청년이 많고, 진부면은 인구는 가장 많지만, 젊은 곳은 아니라 대관령면보다는 적습니다. 봉평면과 용평면은 인원이 적어서 합쳐서 하나의 면대를 이룹니다. 그래서 작계훈련을 할 때 세 개 면의 면사무소에 돌아가면서 모여 훈련을 합니다. 첫 작계훈련이었던 4월 23일 훈련은 대관령면사무소였습니다.


대관령면사무소가 가장 시설도 좋고 널찍합니다. 무언가 좀 새로 지었다는 느낌이 강하죠. 밥은 전투식량이 나오는데 전투식량 안 받고, 돈으로 받았습니다. 구식 아니고 신식이라 먹을 만은 했을 텐데 점심을 잔뜩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아 안 먹었습니다. 멍 때리면서 좀 대기하다가 훈련 장소로 이동합니다. 훈련 장소는 진부면에 있는데 언덕을 좀 올라야 합니다. 산골이라 다른 작계는 동네 한 바퀴라는데 평창은 산을 좀 탑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야간 작계라 4월 말인데도 추웠습니다. 4월 14일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곳이니까 말 다했죠. 진지를 어떻게 지키는지, 진지 지키는 크레모어 사용법 같은 것만 배우고 또 대기를 합니다. 대기하면서 보이는 밤하늘과 별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 맛에 평창 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위가 강렬한 7월 10일 기본훈련을 가게 되었습니다. 원주 문막과학화예비군훈련장으로 가는데 버스를 타고 갑니다. 버스 한 대에 대관령면, 진부면, 봉평면, 용평면 사람들이 전부 탑니다. 가장 멀리서 오는지라 훈련소 도착도 가장 늦게 했습니다. 이때 당시 살이 엄청 쪘을 때라 군복을 빌려 입는데 맞는 군복 찾느라 매우 고생했습니다. M16에 적응을 못해서 예비군 사격을 늘 잘 못했었는데 전날 공무직 선생님들의 비비탄으로 연습도 했고, 감도 좀 잡혀서 간만에 엄청 잘 쐈습니다. 진작 이렇게 쐈으면 서산에서 일찍 집 갔을 텐데……. 문제는 이번 예비군은 조별로 성적을 매겼습니다. (요즘 예비군은 스마트워치 같은 걸 껴서 훈련 일과를 정하고 조를 지정해 주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실탄 사격부터 게임 같은 사격 시뮬레이션까지 간만에 정말 잘한 저와 달리 조별 성적은 바닥을 쳐서 일찍 퇴소는 물 건너갔죠. 근데 생각해보니까 어차피 단체로 버스 타고 가야해서 무슨 상관인가 싶었습니다. 더위가 심해서 시가지 훈련 서바이벌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KakaoTalk_20260325_131233695_07.jpg 훈련장까지 데려다 준 버스입니다.


마지막은 8월 20일에 봉평면사무소에서 했습니다. 대관령면사무소에서 했던 작계와 똑같았으나 한 가지 다른 점은 여름이었다는 점입니다. 진지에 모기가 잔뜩 있어 잠시 머무르는데도 엄청 물렸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밤하늘은 아름다웠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둠 가득한 주변을 보며 이제 예비군까지 끝났고, 갈 날이 다가온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KakaoTalk_20260325_131233695_01.jpg 진지에서 본 밤하늘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은 예비군 면대장님이 오는 사람 얼굴을 다 기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 명 없는데다 지역 주민들이다 보니 대부분 아는 사이였습니다. 젊은 남자들이 모이니 보통 직장 이야기를 하기 마련인데 양수기가 고장 났다느니 작물을 지금 심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주라 무척 신기했습니다. 원래는 도시 사람인데 부인이 여기 사셔서 결혼하여 이쪽으로 와서 농사짓는 분도 계셨고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예비군을 하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예비군이란 건 무척 귀찮은 일입니다. 병영 캠프니 무척 쉬운 일이라느니 말은 하지만, 다들 가기 싫고 하기 싫은 건 모두가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의무라서 하는 거지 막 좋아서 가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평창에서 예비군을 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똑같은 예비군 훈련일지라도 다시는 가보지 못할 곳들을 가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요. 비슷한 경험을 다른 장소에서 한다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예비군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제 짧은 진부 인턴 생활의 큰 매력이었습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