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은 민박집

by baekja

평창에 왔습니다. 친구들이 제법 있다 보니 평창에 있다는 걸 듣자마자 “이때다”를 외치며 저희 집에서 자고 평창 구경 좀 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저희 집에서 자고 간 주말은 총 5번, 거기에 당일치기로 왔다간 친구가 1명. 외로운 타지 생활에서 고마운 힘이 되어준 친구들이었습니다. 친구들 오는 날은 대청소에 이불빨래까지 다 하는 날이었으니 집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저희 집이 민박집이 되었던 이야기, 조금씩 간추려서 해보고자 합니다.


첫 방문은 제 인생에서 가장 친한 형과 제 대학 생활을 모두 책임진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의 여자친구한테 네가 다른 여사친이랑 노는 건 질투가 안 나는데 저랑 노는 건 질투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 다했죠. 사실 둘은 평창 관광을 왔다기 보다는 공기 좋고 물 좋은 산골 친구 집에서 MT를 즐기러 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날 하나로마트에 가서 막걸리를 정말 종류별로 집어와 사다놓았습니다. 감자, 메밀, 당귀, 더덕, 곤드레, 옥수수 등등 그리고 도착 당일에는 메밀전병과 메밀부침개를 사다 쟁여두었습니다.


20250404_185642.jpg 사다 둔 막걸리들


16시 30분이 넘어서 형과 친구가 도착했고, 수호랑과 반다비 앞에서 사진을 찍은 후 시내 버스를 타고 진부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근처에서 족발을 포장하여 집으로 가서 바로 술을 마셨습니다. 문제는 친구가 전날 일도 많이 하고 술도 엄청 먹고 와서 피곤에 찌들어 있었습니다. 금방 뻗더군요. 무수한 광대 짓 끝에 친구를 깨우는 데는 성공했으나 술을 다 같이 제법 들이부은지라 12시에 잤습니다. 4월 초인데 춥기는 무지하게 추워서 난방을 진짜 열심히 땠습니다. 다음날 일어나서 하나로마트에서 콩나물을 사와 라면을 끓여 해장까지 했습니다. 그러고 떠났습니다. 정말 평창 여행이라고는 하나도 즐기지 않은 MT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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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문은 동아리 동기와 후배였습니다. 대학 수업시간에 소맥을 같이 말아먹은 정말 절친한 사이입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쨌든 둘도 거의 MT 느낌으로 왔습니다. 4월 말에 온 둘도 추위가 가시기 전에 와서 서늘함을 열심히 느끼면서 술을 먹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진미통닭이라는 치킨 맛집을 알게 되어서 그걸 사두었고, 삼겹살을 사서 집에서 구워먹었습니다. 세상을 진짜 열심히 사는 후배가 이번에 회사에서 삼겹살 못 굽는다고 한소리 들었다며 삼겹살 굽는 연습을 했습니다. 제법 잘해서 다음번에 잘할 거라고 위로해준 뒤 술을 먹었습니다. 22시쯤 나와서 산책하는데 추워서 술이 다 깨더군요. 지나가는 고라니나 구경하고 소주를 더 사들고 들어가 새벽 5시까지 술을 먹었습니다. 아침 8시쯤 비몽사몽한 상태로 깨서 월정사 전나무숲길에서 해장 산책을 한 뒤 진부면 카페에서 떠들다 역까지 걸어갔습니다. 역까지 가는 길에 꽃이 가득하여 서울은 이미 꽃이 다 졌는데 여기는 피어있다고 별천지 같다고 말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공기가 좋은데다 날이 서늘하여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다 술이 깨어 있던 것이 정말 최고였습니다.


세 번째는 중학교 동창들의 방문이었는데 이 방문은 대관령면 여행이어서 나중에 따로 쓰려 합니다. 네 번째는 첫 번째 방문한 친구와 같이 자주 보는 친구였습니다. 인천에 살고 있어서 말 그대로 동서를 횡단해서 왔습니다. 친구는 와인 한 병을 사왔고, 저는 담금주를 꺼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밤 10시부터 시작한 술자리는 대략 새벽 2,3시에 끝났습니다. 와인 도수가 높았고, 담금주 도수는 더 높아서 기분 좋게 취해서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나오니 추워서 겉옷을 입고 돌아다녀야 할 정도였습니다. 6월말이었는데 말이죠. 월정사와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월정사성보박물관을 구경하고 유천막국수를 먹은 다음 집으로 보냈습니다. 친구는 막국수 국물을 바지에 흘리고, 저는 카페에서 음료를 바지에 흘린 참사를 만든 후에 일정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뭐에 홀린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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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는 다른 동아리 후배의 방문이었습니다. 7월 중순 한 여름의 방문이었는데 그 와중에 밤엔 에어컨을 안 켜도 되었습니다. 이야 대단한 평창. 후배와는 강릉에서 만났습니다. 평창의 산보다는 바닷가가 보고 싶다는 후배의 의견을 참고, 강릉에서 놀다가 밤에 저희 집을 가서 자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강릉중앙시장 지하의 수산시장에 가서 회에 소주를 낮부터 즐겼습니다.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강릉 안목해변의 카페거리로 갔습니다. 해장으로 음료를 하나씩 시켜 먹은 뒤 저는 바닷물에 발만 담그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는 길에 벽화로 커플 그림이 있어서 솔로인 둘이서 ‘열받네.’를 외치고 집에 왔습니다. 이미 회와 소주로 배가 차서 집에서는 적당히 먹고 잔 후에 다음날 아침 돌려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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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는 친구의 방문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막차를 타겠다며 제가 떠나기 바로 전 주말에 당일치기로 왔습니다. 그 주말 일정이 정말 힘들었던 게 금요일에 양고기로 고별 회식하고, 토요일에 새벽부터 일어나 비를 헤치고 대전 결혼식을 평창에서 당일치기한 뒤 일요일에 친구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완성된 관광 코스를 따라 점심은 유천막국수를 먹고, 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들렸습니다. 이 친구는 약간의 산행을 원한다기에 한 번도 안 가본 오대산 적멸보궁 코스를 골랐습니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는 왕복 1시간이 조금 넘는 코스였는데 특별한 게 딱히 있지는 않았고, 다람쥐가 가는 길에 많아 참 귀여웠습니다. 9월 말이라 문제는 산행 후에 약간 추워졌습니다.(평창은 이때부터 단풍이 슬슬 듭니다.) 그래서 완전 새로운 밥집을 꺼내들었는데 그게 친정 엄마였습니다. 다슬기된장국이 따스하게 먹기 좋을 것 같아서 했는데 친구가 만족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친구를 역까지 데려다주고 제 민박업 및 여행가이드업은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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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친구를 데려다주는 마지막 길, 우: 다슬기된장국


평창은 공기 좋고, 물 좋고 1년 내내 서늘하여 저와 매우 잘 맞는 곳이었지만, 무척 외진 곳이어서 외로움이 쉽게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고플 때쯤 저를 찾아와준 친구들이 있어 6개월 동안의 평창 생활을 정말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찾아온 친구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이 글 마칩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