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참 좋아합니다. 이전에는 일주일에 3-4번 씩 술을 먹었지만, 건강을 한 번 해친 후로는 자제하는 편입니다. 다만, 혼자서 술을 먹는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의 분위기와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은 거니까요. 문제는 평창에서 같이 술 먹을 사람이 없단 거였습니다. 어디 술집을 가야할 지도 모르겠기에 말 그대로 친구들이 놀러 와서 술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적어도 직장에서 술을 좋아하는 것을 숨기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걸 눈여겨 본 다른 인턴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카카오톡을 걸었습니다. 지금 친구랑 있는데 술 한 잔 하시겠냐고. 세상 재밌는 순간이 될 거 같아서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저녁 먹으러 혼자 강릉에 와 있었기에 강릉에서 진부에 도착하면 거의 11시 여는 술집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동안 이곳저곳 다니면서 진부 상점들은 대충 외워뒀다고 생각했는데 찾아오라는 술집 이름은 3.3.5라는 처음 듣는 술집이었습니다.
진부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진부면내 훌랄라치킨집 앞으로 갔습니다. 3.3.5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그 치킨집 2층에 있더군요. 뭐랄까. 진부면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젊은 서울 느낌의 술집이랄까요? 거기서 첫날 먹었던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다른 인턴 분이 무지하게 취해 온갖 고생에 대한 말들을 쏟아냈던 것과 그걸 들어주며 놀려먹던 저와 인턴 분의 친구 분이 떠오릅니다. 그제야 조금 친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사 말고는 대화 한 번 제대로 안 해봤는데 1달 만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파악이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술자리의 몇 안 되는 순기능이겠죠.
이후로도 3.3.5는 늘 제 진부생활에서 함께였습니다. 특히 떠나는 분들과 마지막 술자리가 많았습니다. 연구원분들, 학예사님, 저를 비롯한 인턴까지. 무언가 정리를 하는 술자리에서는 늘 3.3.5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학예사님들이 생일 축하를 해주겠다고 하셔서 정말로 즐겁게 술을 마셨었습니다. 정말 좋은 추억이 그곳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추천 메뉴는 두루치기. 전체적으로 메뉴가 괜찮은 편이지만, 두루치기는 맛있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진부면의 술집은 무척 한정적이어서 12시를 넘어가면 정말 몇 개 없습니다. 보통 3.3.5나 지금 소개할 장터옛날통닭 둘 중에 한 곳을 갑니다. 장터옛날통닭은 가끔 오는 전기구이 통닭 트럭을 제외하면 치킨을 가장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이라 주말에 점심 먹을 때 종종 포장하곤 했습니다. 다만, 치킨 말고도 안주를 이것저것 파는 곳이라 회식 2차로 정말 자주 갔던 것 같습니다. 청장님이 오셨을 때나 워크샵이 끝났을 때와 같은 단체 회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했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먹었지만, 이곳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사이드로 나왔던 감자튀김과 마늘튀김이었습니다. 원래도 감자튀김과 마늘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 튀김의 바삭함이 절묘해서 시간이 되면 늘 사다 먹었습니다.
뭐가 됐든 튀김이 유명한 집이라 보통 맥주를 먹었는데 맥주가 배불러서 많이 못 먹는 제 입장에서는 소주를 시켜 놓고 홀짝홀짝 마시는 게 습관이 되었었습니다. 정작 회식 때는 이야기하느라 많이 못 먹어서 새로운 술을 시킬 일도 별로 없었지만요. 노란 벽면에 시끌벅적한 포장마차 분위기가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술집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깃집이나 치킨집, 횟집에 가서 술을 먹었습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롯데프레시 앞쪽에 있는 횟집은 새벽까지 해서 평창에서 어지간하면 멀쩡히 출근했던 제가 3차 후에 완전히 죽은 채로 출근하기도 했었습니다. 치킨집은 프랜차이즈가 많았는데 진미통닭이 진부면에만 있는 통닭집이고 맛도 괜찮아서 선호했었습니다. 고깃집은 퇴사할 때 학예사님이 사주신 청산회관의 양고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맛도 좋지만, 기억의 끝에 멋진 선물을 받은 것 같아 좋음이 오래 갔던 것 같아요.
진부면은 좁습니다. 진부 토박이들과 술집에 가면 늘 인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마당발이었던 인턴 친구분께서는 어른들과 인사하고, 친구들에게 얻어먹고, 후배들을 알고 있는 대단한 분이셔서 감탄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6개월 남짓 있었던 시간 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광경들을 술집에서 보았습니다. 사람이 적어서 시끄러움이 덜해 좋았고,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대화들이 오가서 좋았습니다. 이야기가 꽃피우는 술집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차가움과는 다른 시골만의 따뜻함이 진부 술집들의 차별화된 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시 갈 일은 거의 없겠지만, 언젠가 다시 간다면 이런 기억들 속에서 조금 더 즐겁게 술자리를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