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글을 읽으실 때 상상을 권하진 않습니다.
때는 4월 마지막 주 주말, 전관개관이 얼마 남지 않은 그때 친구들이 놀러왔다. 자그마치 새벽 5시까지 술을 먹고 설거지를 하러 주방에 갔는데 무언가가 내 눈을 스쳐지나갔다. 검은색 물체였다. 아,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마음을 다잡고 그곳을 다시 보았다. 그것은 없었다. 혹시 몰라 설거지를 재빠르게 하고, 약을 이곳저곳 뿌렸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친구들이 간 다음날 저녁. 퇴근을 하고 룰루랄라 라면을 끓여 먹던 나는 방바닥에서 뽈뽈뽈 기어가는 그것을 보고야 말았다. 뇌정지가 왔다. 놀랍게도 가로등 하나 안 켜지는 고등학교에서 벌레들과 3년을 보내고, 돈벌레가 천장을 메우는 견사 청소가 일상인 백령도에서 2년을 보냈지만, 바퀴벌레를 볼 일은 없었다. 푸르고 풍요로운 벌레 가득한 자연에는 우리가 싫어하는 벌레들이 모두 바퀴벌레의 천적이니까. 지네도, 노래기도, 돈벌레도 나를 그렇게 굳게 만들지 못하였다. 굳어 있던 것은 단 1초, 처리해야 했다. 저 녀석이 침대 밑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나는 며칠 밤을 새야 하리라. 슬며시 일어나 다가가 내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떨구었다. 파삭. 아 내 핸드폰 뒷면. 휴지와 물티슈를 들고 와서 핸드폰을 뒤집었다. 박살났지만, 여전히 형체를 가진 그것이 있었다. 휴지와 물티슈로 꽁꽁 싸매고,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바퀴벌레 약을 있는 대로 다 뿌렸다. 곳곳에 뿌렸다.
사실 집을 구할 때 무척 급하게 구하느라 이미 청소할 때 몇 개의 바퀴벌레 시체를 보고 들어왔다. 평창의 4월 중순까지는 영하가 기본이라 바퀴벌레를 볼 일이 없었는데 친구들 온다고 청소할 때 잠시 문을 열어놨을 때 들어왔었나 보다. 아, 싫다. 정말 싫다. 그때부터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다녔고, 곳곳에 바퀴벌레 약을 뿌려대며 살았다. 일주일간은 잠도 잘 자지 못했다. 다행히 어머니가 평창에 오시면서(갓머니!) 특효약이라며 바퀴약을 이곳저곳 놔주셨다. 그제야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전관개관까지 겹쳐서 얼마나 피곤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공무원 선생님들께서 술을 단체로 드셔서 다수와 카풀을 하던 어느 날 한 사고가 발생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화장실을 가는데 갑자기 발에서 퍼석하는 소리가 들렸다. 직감했고, 빠르게 발을 씻었다. 빠르게 발을 뗀 탓인지 시체가 발에 딸려오지는 않았지만, 소리가 난 곳엔 이미 깔려서 딱지 마냥 찌부러진 된 검은 것이 있었다. 급하게 치우고, 정신없이 준비해서 카풀을 타러 나갔다. 거의 늦지 않던 내가 1,2분 늦게 나오자 선생님들은 이유를 물으셨다. 내 대답을 들으시고는 참 같이 사는 아파트에 바퀴벌레 많이 나온다며 질색을 하셨다. 아, 망했네. 껄껄껄. 세상을 초탈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 몇 달 동안 바퀴벌레는 나오지 않았다.
다시 바퀴벌레와 마주한 건. 서울을 갔다가 11시가 넘어 들어온 어느 여름밤이었다. 아무래도 불을 끄고 있다 보니 바퀴벌레가 문 옆에 있다가 복도에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렇게 들어온 바퀴벌레는 샤워를 하고 있는 내 화장실로 들어왔다. 그렇게 어이없는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바퀴약을 가지러 갔다가는 저 날쌔고 영악한 벌레가 도망갈 것이 자명했다. 그것만은 안 돼! 문득 락스의 강력함이라면 바퀴벌레를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커플을 본 솔로들이 바텐더에게 락스를 찾는 것 마냥 빠르게 바퀴벌레에게 락스를 주입해주었다. 그리고 깔끔하게 배를 내밀어 항복의 표시를 보였다. 시체를 재빨리 치워버리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많이 봐서인지 그날은 잘 잤다.
하도 바퀴벌레약을 뿌려 대서 중간에 놀러왔던 친구가 만리장성이라고 이름 붙여준 바퀴벌레약통을 모아 놓은 곳이 있었다. 모으다보니 6개월 내내 얼마나 쓸지 궁금해서 버리지 않고 계속 쌓아두었다. 10개 이상 모인 바퀴벌레약이 마지막으로 쓰인 날은 이삿날이었다. 이삿날 아침 여기저기 뿌려둔 바퀴벌레약을 먹고 어머니가 주무신 방 앞에 바퀴벌레가 복종의 자세로 죽어있었다. 아, 도대체 언제까지 저걸 봐야 하는 걸까? 그 시체를 치우고,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하고 오는데 청소를 좀 하신 어머니께서 바퀴벌레 시체가 있는 곳을 봐야 한다며 하나씩 보여주셨다. 어머니, 그… 저한테 안 보여주고 치우시면 안 되었을까요? 이런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집어삼켰다. 이사도 도와주시고, 바퀴벌레도 잡아주시는 어머니한테 그럴 수야 없지. 베란다 구석, 부엌 구석, 그리고 세탁기 거름망. 도대체 얘네들은 뭐하는 친구들인지 궁금증만 쌓였다. 꼴도 보기 싫어서 바로 버려버렸다. 세탁기 거름망에 있는 친구는 이미 다 죽어버린 알집도 들고 있었다. 진짜……. 다신 바퀴벌레 있는 집에 안 가기로 마음먹었다.
전주에 이사 올 때 집안 곳곳을 다 뒤지며 검은 그것의 흔적을 찾았다. 없었다. 정말 열심히 뒤져서 부동산 중개업자님이 전에 살았던 집이 정말 힘들었던 것을 공감해주실 정도였다. 어우, 다시는 보기 싫다. 끔찍하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왜 사람이 바퀴벌레로 변하는 것으로 묘사했겠는가. 존재가 완전히 변하는 걸 극단적으로 표현할만한 게 그거니까 그렇지. 여러분과 나의 바퀴벌레 없는 삶을 기원하며 이만 글 마친다. 사라져라 바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