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습도를 관리해보자!

by baekja

전관개관이 끝나고 전시실 기획을 도와주셨던 연구원 분들이 모두 떠나셨습니다. 행사와 교육만 담당하던 시간들은 사라지고, 이제 전시실 관리를 도와드려야 했습니다. 큰 업무가 제게 넘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매일 매시간 해야 하는 업무 하나가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넘어온 업무는 제가 퇴직할 때까지 내려놓지 못한 업무이기도 합니다. 바로 전시실 온습도 측정입니다.


10시, 16시 두 번이었던 온도 측정은 지류 국보(실록, 의궤)의 중요성을 감안해 10시, 13시, 16시로 늘어났습니다. 전시실 순찰을 겸한 이 세 번의 온습도 측정은 말 그대로 습관이 되었습니다. 사무실을 빠져 나와 상설전시실의 온습도를 측정하고, 영상실의 영상이 문제없는지 확인한 후 기획전시실의 온습도를 측정합니다. 올라온 반대편의 계단으로 내려와 어린이박물관의 기기들이 문제없는지 확인하면 온습도 측정이 끝납니다.


대체로 항온항습을 위해 학예사님부터 인턴에 이르기까지 노력하기 때문에 온습도는 잘 유지되었지만, 매번 잘 유지될 수는 없었습니다. 일단 박물관이 관람객들이 계속 오가야 하는 개방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박물관이 지어진 지 안 되어 항온항습을 위한 기기 운용이 원활하지 않았던 점도 있었습니다. 특히,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면 습도가 갑자기 오르는 경우가 있어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습니다.


습도를 낮추기 위해서 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제습기 돌리기. 관람객들이 잘 볼 수 없는 곳에 제습기를 가져다 놓고 돌립니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분명 막을 수 있으며, 오래 사용할 경우 제법 효과도 있습니다. 제습기 돌리기로도 안 되면 히터를 킵니다. 살짝 더워지는 것을 감수하고, 습도를 낮추는 것이죠. 히터를 킬 경우 공기 자체의 수증기 보유 능력이 증가해 상대 습도가 낮아집니다. 또한, 히터의 바람이 수분의 증발을 빨리 일으켜 건조하게 만듭니다. 이런 방법으로 습도를 낮추어 항온항습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노력이 아닌 시스템이 온습도를 맞출 수 있게 해야 하기에 천장에 제습기를 설치했고, 제습기가 설치된 후로는 손쉽게 온습도 조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 온습도와 내부 온습도의 상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외부 온습도까지 확인해야 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감지덕지였습니다. 이처럼 현대 박물관에서도 지류는 예민한 유물이기에 온습도를 맞추는 데 심혈을 기울입니다. 실록과 의궤를 보관하던 사고(史庫)는 어떻게 온습도를 맞췄을까요?


임진왜란으로 인해 사고가 산으로 옮겨지긴 했지만, 이전에 사고들은 전부 평지에 있었습니다. 산에 있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산의 습기가 높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산으로 옮긴 후에도 이 걱정은 계속 되어서 조선 후기에는 사고에 온돌을 때어 습도를 낮추자는 상소가 올라오기도 하였습니다. 뭐, 당연하게도 거부되었습니다. 습도 좀 낮추자고, 온돌 땠다가 실록, 의궤가 불타면 난리가 날 테니까요.


온돌 때기는 불가능하니 습도를 잡기 위해서 몇 가지를 하긴 했습니다. 건물의 2층에 책들을 배치하였고, 천궁과 창포를 넣어 제습제(물 먹는 하마)의 역할을 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3년에 한 번 포쇄를 하게 하였습니다. 포쇄는 책들을 꺼내어 한 장 한 장 말리는 작업으로 바람부는 서늘한 그늘에서 햇볕 좋은 날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책들을 한 장 한 장 꺼내어 말리는 것이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기에 3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제대로 행해진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왕실의 비밀 기록인 실록과 주요 행사 보고서였던 의궤는 이제 문화재인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소중하게 다루어졌던 책들은 600년이 되도록 여전히 소중하고 예민하게 다루어져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월에 스러졌어야 할 책들을 계속 보존하는 것은 참으로 고된 일이지만,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온습도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이 어쩌면 그냥 관성적으로 행해진 일일 수도 있지만, 나름 사명감을 갖게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강원도의 산속에서 국보와 보물을 매일 대하며 그들이 가진 시간을 이어나가기 위해 했던 온습도 관리는 별 일 아니었을 수 있겠지만, 몇 달의 기억이 쌓이며 제 과거에 꽤 큰 부분을 잡아먹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온습도 관리는 사실 평범한 하나의 업무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책 하나하나를 살피며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넘겨 말렸던 예전의 포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요. 건조뿐만 아니라 책의 상태까지 확인해야 하는 포쇄는 완전히 다른 느낌입니다. 지금은 그런 포쇄를 하지 않고 있냐고 누군가는 물으실 것 같습니다. 요즘도 하고 있습니다. ‘국보˙보물 정기조사’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어떻게 아냐고요? 해봤으니까요. 시간을 느리게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노력, 정기조사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