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사님과 막국수 한 그릇

두일막국수, 유천막국수

by baekja

평창의 문학하면 조금 아는 분들은 이미 떠올리셨을 겁니다. <메밀꽃 필 무렵>. 한국의 시골 정경을 무척 아름답게 담아낸 이 문학은 평창을 계속 메밀의 고장으로 남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면뿐만 아니라 진부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부면에는 특히 유명한 두 메밀 막국수 집이 있었는데 하나는 두일막국수요, 다른 하나는 유천막국수였습니다.


두일막국수는 진부면 두일리에 있는 막국수집입니다. 막국수를 제외하면 감자전이 참 맛있는 집입니다. 처음 간 것은 어머니와 함께였습니다. 여기에 무슨 맛집이 있겠냐며 투덜대는 제게 어머니는 두일막국수를 찾아 핸드폰을 내미셨습니다. 몇 년 째 블루리본을 달고 있는 그 집은 흥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어머니의 차를 타고 시골길을 따라 10분 이상을 들어가니 두일리 정류장 앞에 두일막국수가 있었습니다.


제법 오래되었다는 두일막국수의 건물은 완전히 새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사장님께 물어보니 최근에 건물을 새로 지었다고 하더군요. 후에 다른 인턴 분과 인턴 분의 친구 분과 술을 먹을 때 동창이란 분이 술값을 긁고 가주셨는데 그 동창이 두일막국수 아드님이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역시 맛집은 돈을 잘 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 쨌든 맛집이라고 유명해졌더라도 중요한 건 제 입맛에 맞느냐겠죠. 맛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엄청 맛있지는 않았지만, 남들에게 추천해줬을 때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딱 그런 맛이었습니다. 한 그릇 비우기에 정말 괜찮은 맛. 어머니와 저는 간만에 막국수를 잘 먹고, 감자전까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역시 평창은 메밀이 맛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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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막국수를 처음 먹은 것은 전관개관이 끝나고 학예사님의 차를 타고 퇴근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예사님이 시간 괜찮냐며 저녁으로 막국수를 사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집 가는 길에 있는 대관령면 유천리의 유천막국수로 저를 데려가셨습니다. 면을 무척 좋아하신다는 학예사님은 처음 부임하셨을 때 겨울에 1주일에 한 번 꼴로 유천막국수를 가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면을 좋아해서 온갖 막국수를 먹어보신 분이 전국에 이정도 막국수 몇 개 없다면서요. 그래서 먹었는데 예, 정말 이 가격에 이 맛을 먹어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맛이란 것은 무척 주관적입니다. 결국 혀의 미뢰에서 느낀 것을 뇌가 받아들여 생각하는 것이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같은 종이니까 보편적인 맛있음은 어느 정도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천막국수는 90% 사람이라면 딱 좋아할 만한 그 맛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빔막국수도 어지간히 괜찮았고, 간장베이스라는 물막국수도 괜찮았습니다. 들기름 향이 가득한 꿩만두나 담백한 수육도 참으로 먹을 만했습니다. 전주에 있는 지금도 가끔 생각날 정도로요. 진부면에 다시 간다면 무조건 다시 먹고 싶은 맛입니다.


그 이후로 유천막국수는 아는 사람이 놀러올 때마다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셨을 때도, 고향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도, 대학 친구가 놀러왔을 때도, 예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놀러왔을 때도 점심이나 저녁에 한 번은 유천막국수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늘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엄청 맛있다!’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고, 맛있다.’라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꿩만두의 들기름 향에는 모두 매혹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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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주 갔던 유천막국수와 달리 두일막국수는 딱 두 번 갔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어머니와 갔던 것과 학예사님이 저를 데려가신 것. 주말에 교육 프로그램을 끝내고 학예사님 차를 타고 갈 때 학예사님이 이번에는 두일막국수를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맛 비교를 해보자면서요. 둘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두일막국수가 나쁘지는 않으나 유천막국수가 낫다. (다른 학예사님은 두일막국수를 선호하셨습니다.)


사실 그날은 두일막국수의 맛보다 감자꽃이 기억에 남습니다. 두일리에서 진부면의 중심 송정리로 돌아오는 길에 하얀 감자꽃이 가득했습니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저와 학예사님에게는 무척 새로운 풍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차를 세워두고 감자꽃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마 올해 여름에도 감자꽃이 하얗게 진부면의 밭을 물들이겠죠. 저는 떠났지만, 학예사님은 또 보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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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막국수 한 그릇들이 모여 평창의 기억을 이루었습니다. ‘맛있는 막국수’하면 이제 저는 늘 평창을 떠올리겠죠. 서울에서 먹었던 막국수는 비쌌지만, 평창의 그 맛을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립습니다. 간장베이스의 깊은 육수를 품은 물막국수와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비빔막국수의 그 맛이. 학예사님과 함께 대화하며 먹었던 맛있는 막국수 그릇에 몇몇 그리운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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