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한 진부 여행
‘집’이라는 단어는 그냥 사는 곳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편안함, 따뜻함, 그리움, 쾌적함 등의 단어들과 함께합니다. 어쩌면 고향의 의미도 집에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평창에 전입신고를 하고, 진부면민이 되었음에도 제게 평창은 늘 집처럼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창문을 열면 느껴지는 청정한 공기, 앞 산 위에 걸린 구름, 강만큼 넓은 천, 그 천을 가끔 돌아다니는 고라니까지. 저는 6개월 동안 진부에서 늘 여행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집 앞에서 산만 본 것을 여행이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집에서 그리 멀지는 않더라도 마실에서 조금 더 나아가 소풍 같은 느낌은 되어야지 여행이라 이름 붙일 수 있겠죠. 동계올림픽 이후 유명해진 평창.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심리적, 물리적 거리만큼은 원래 집이던 오산에서 한참 멀었습니다. 그 먼 곳에서 한 달 넘게 바삐 일하고 나니 5월 황금연휴가 찾아왔습니다. 드디어 소풍을 나갈 여유가 생겼고, 그 기간에 어머니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제 집에 여행을 오신 것이죠. 사실 미리 여행을 왔던 곳에 어머니가 같이 여행하러 오신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진부의 서늘한 공기에 들떴던 2025년 5월 4일, 어머니와 함께 했던 집 주변 소풍이자 진부 여행의 기록입니다.
5월 3일 늦은 낮에 도착하신 어머니와 수다를 떨다 잠에 들고, 5월 4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미 한 달이 넘은 기간 동안 몇 가지 맛집과 볼 곳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제가 일하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었습니다. 그날도 일하고 계셨던 공무직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담당 학예사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학예사님은 정말 감사하게도 친히 나와주셔서 저희 어머니께 <오대산 가는 길> 특별전 전시해설을 해주셨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해설이 끝나고, 상설전과 영상실을 돌아보며 한 달 동안 했던 일들을 어머니께 자랑스레 이야기했습니다. 상설전의 보물과 국보를 지키고 있던 이야기, 팜플릿의 영상실 사진을 제가 찍은 것으로 정한 이야기 등등. 어머니는 흥미 있게 들어주셨습니다. 정작 제가 하는 역사 해설엔 전혀 관심이 없으시더군요. 예전엔 저와 동생을 교육시키신다고 그렇게 도슨트를 따라다니셨는데. 시간이 지났음이 조금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박물관을 보고나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점심은 오대산산채마을의 산채정식 집에서 해결했습니다. 봄나물이 아직 제철인지라 맛이 신선했습니다. 산채비빔밥을 먹고 나니 배가 좀 찼습니다. 날은 맑고, 오대산의 바람은 선선하여 참으로 나들이하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직장 근처로 온 나들이라니. 이상했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배도 채웠으니 어머니의 차를 타고 오대산 등산로의 입구인 상원사로 향했습니다. 현재 유일한 비포장길 버스 상설 노선이 가는 상원사는 박물관에서 차로 2~30분 정도 더 가야 합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오산시 택시가 보였습니다. 괜스레 반갑더군요. 오산에서 이 멀리 여행을 오신 분이 있다는 생각에 뭔가 자부심도 들었습니다. 상원사 자체를 어머니는 크게 감탄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오대산에 둘러싸인 상원사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시다가 상원사 앞의 벚나무에 시선이 멈추셨습니다. 5월 초 여전히 다 스러져 떨어지지 않은 벚꽃 잎의 흰 빛이 무척 생경했습니다. 그 생경한 아름다움에 어머니와 같이 몇 분을 쳐다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원사를 나와 월정사로 향했습니다. 2025년의 5월 황금연휴에는 부처님 오신 날이 끼어있었습니다. 월정사의 주차장은 꽉꽉 들어차 있었고, 가까스로 천변의 새로 생긴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늘 걷던 산책길을 지나 어머니와 월정사를 올랐습니다. 어머니의 환한 웃음 연두색 오대산 비탈면에 가끔 보이는 흰색과 분홍빛의 어우러짐에서 봄이 보였습니다. 월정사 8각9층석탑 위로는 창천 아래 뭉게구름이 지나가고, 흐릿하게 코를 감싸는 향의 냄새가 거기에 더해졌습니다. ‘번뇌금지, 부처님 상습 출몰 구역’이라며 재밌게 써놓은 문구가 와 닿았습니다. 자연 곳곳에 부처님이 있었고, 여행의 순간에 즐거움이 가득하여 번뇌가 들어찰 틈이 없었습니다.
월정사를 벗어나 다시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학예사님이 선물을 준비해서 전달해주셨고, 저는 감사한 마음에 커피를 사다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도록을 잘 살펴보면 교정에 제 이름이 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정말 제 이름이 있었습니다. 도록에 제 이름이 실리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기에 무척 기뻤습니다. 일상의 한 순간이 새로움과 기쁨으로 덮여 여행의 순간에 뒤섞였습니다.
마지막 방문지는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황금연휴를 맞아 다양한 이벤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관심이 없었지만, 어머니께서 관심이 많으셔서 같이 식물 따라 그리기를 했습니다. 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식물원을 걷다가 비안의 언덕에 이르렀습니다. ‘숨겨진 편안함’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언덕에는 대관령을 넘어가려는 봄바람이 숨을 잠시 거르고 가는 듯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불었습니다. 따뜻한 햇살과 세찬 바람이 어울려 딱 적당한 날씨가 되었습니다. 봄바람의 숨겨진 편안한 쉼터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비안의 언덕을 나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밀의 화원이라 이름 붙여진 그곳에는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털진달래가 곳곳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봄꽃들이 다 지나갈만한 5월, 여전히 봄은 그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봄이 가장 늦게 오기에 봄이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그곳에서 저는 가장 그윽하고 깊은 봄향을 오래도록 만끽했습니다.
따스한 해가 넘어가는 저녁 어머니와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메밀이 유명한 평창, 밥은 막국수였습니다. 이미 블루리본 맛집으로도 유명한 그 맛집에서 들기름 향이 짙게 나는 꿩만두와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한 돼지 수육, 그리고 여태까지 먹어본 막국수 중 가장 맛있는 막국수를 시켜 어머니와 나누어 먹었습니다. 밥도 맛있었지만, 여행 온 어머니께 밥을 사드릴 수 있다는 기쁨이 무척 마음에 남았습니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한 달 넘게 지낸 집에 돌아온 것 같으면서도 여행 숙소에 들어온 듯한 기묘한 기분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진부의 밤공기는 찼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일교차가 큰 봄의 심술이 채 가지 않은 그곳에서 저는 긴 소풍이자 짧은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음날 어머니께 작별인사를 건네었습니다. 여행 온 사람을 떠나보낸 그곳에서 저는 앞으로도 4개월 넘게 집이라 불러야 할 그곳에 남았습니다. 평창군 진부면, 짧은 집이자 긴 여행의 숙소인 그 장소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