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
한파주의보가 내린 어제. 남부의 전주도 내내 영하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맑은 날씨와 달리 살을 에는 추위는 평창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는 평창에서 학예사님들이 출장을 오시기로 한 날입니다. 평창에서 전주까지 먼 길을 오시는 학예사님들께서는 감사하게도 저를 잊지 않고 찾아주셨고, 일정이 끝난 저녁에 술 한 잔 기울이자며 연락을 주셨습니다.
어쩌면 스쳐갔을지도 모를 6개월의 인연은 오늘 다시 길게 이어졌습니다. 제가 매일 직장으로 향하는 사거리에 평창에서 뵈었던 학예사님들이 계셨고, 학예사 두 분을 저는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습니다. 맛집이 별로 없는 전주교대 앞에서의 고민도 촉박한 압박보다는 재밌는 긴장으로 느껴졌습니다. 가볍게 택한 치킨집에 들어가 생맥주를 시켰습니다. 무려 생맥주를 팔지 않는 진부면에 대해 이야기하며 정말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고 저를 놀리시더군요.
치킨이 나오고,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국가유산청의 이야기부터 평창의 이야기, 다음 학술대회와 몇 가지 역사 이야기까지. 즐거운 대화의 연속이었습니다. 평창의 아름다운 풍경과 좋은 공기 뿐 아니라 좋은 사람과 따뜻한 분위기가 첫 타지에서의 6개월을 버티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열릴 국제 학술대회에 놀러오라고 하시는 그 말에 어찌 거절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겠다고는 대답했습니다. 정말 갈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치킨집을 나와 순대국집을 가려고 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 가까운 포차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오징어 파전과 소주.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뭐 어떤가요. 맛있고 즐거우면 되었지. 계속 비워지는 소주잔과 함께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서로의 안부와 옛날이야기가 뒤섞였습니다. 여전히 국가유산청 직원(저는 현재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 있습니다.)이니 일 몇 개 좀 도와달라는 장난어린 부탁도 들었습니다. 웃음과 장난이 오가는 그 자리에는 약간의 추억과 현재의 즐거움이 묻어났습니다.
2차의 소주가 3병이 사라졌을 때 학예사님들과 저는 일어섰습니다.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과 같았지만, 모두가 살짝 취해 있는 것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만남이 있으면 다시 헤어짐이 있는 법이죠. 처음 만난 사거리에서 선물을 드리고 헤어졌습니다. 서로의 행복한 미래를 비는 따뜻한 말과 미소 속에서 제가 왜 그리 평창의 인턴 생활을 사랑했고, 좋아했는지가 떠올랐습니다. 아, 아직 완전한 이별은 아닙니다. 내일 국립무형유산원을 방문하기로 하셨으니까요.
들뜬 마음은 가벼운 발걸음에 드러났습니다. 좋은 기분은 시선으로 이어져 땅바닥이 아닌 밤하늘을 향하게 했습니다. 맑은 밤하늘은 그 무엇보다 검었습니다. 그 어둠 사이로 밝은 별들이 새어나왔습니다. 빛이 내리는 그 속에서 기분 좋았던 과거와 기분 좋은 현재를 떠올렸습니다. 아름다운 시간의 속에서 빛을 발하는 공간이 제 마음에 기쁨만을 가져다두었습니다. 즐거웠던 과거의 평창이 여전히 현재의 전주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기쁨이 몰려들다 가시니 살짝 걱정이 됩니다. 내일 해설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내용이 모자란 건 둘째 치고 차고 넘쳐흘러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염려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정말 어리버리했던 과거를 친절하게 도와주시고, 지금의 저를 잊지 않고 만나주신 분들입니다. 그냥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어제의 만남에 주셨던 따뜻함만큼 말입니다.
전주는 좋은 도시입니다.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며 인프라가 제법 갖춰진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도시일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전주 방의 창문을 열 때마다 종종 생각이 납니다. 평창의 아파트에서 열었던 창문 밖에 보이는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현재가 좋다고 과거가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창문 밖에 그리움이 오늘만큼은 조금 뚜렷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