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도 끝나고 비도 잘 안 오는 요즘 가끔 내리는 소나기를 제외하고는 해가 쨍쨍한 맑은 날이 계속되고 있다. 비에 날개 젖을 일 없는 날벌레들은 이때다 싶어 열심히 날아다니는데 사실 이 친구들은 낮보다는 밤에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손전등을 키고 순찰을 도는 우리들을 향해 돌진하는 게 주 일과이다. 놀랍게도 팔이나 다리 몸통에 들러붙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얼굴을 자꾸 치고 가니 무척 아주 몹시 찝찝하다. 불만 들고 있으면 달려드니 떼 낼 수가 없다. 이렇게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들을 불나방이라고 하던가? 궁금해서 한 번 찾아봤다.
불나방은 그냥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을 총칭하는 줄 알았던 나는 검색한 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비목 불나방과에 속하는 정식 분류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나방들이 불나방이라 불리는 이유는 빛을 보고 달려들어서가 아니라 빛을 보고 일정한 각도로 날아가는데 이를 계속하다 보면 나선을 그리며 빛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하긴, 빛보고 달려들어 내 목이나 내 몸에 붙어있던 건 매미, 하늘소, 딱정벌레 등 너무 다양해서 말도 다 못하겠다. 그럼 내가 불나방이라고 통칭하려던 이 벌레들은 왜 빛을 향해 달려드는 것일까?
아마 짧은 수명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누려야 할 낮은 너무나 짧고 또 적어서 밤을 밝히는 빛을 향해 날아들고 거기서나마 밤이 아닌 낮을 더 누리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팔십 평생도 짧다고 느껴 불로불사를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고 의학을 발전시켜 수명을 연장하는 일도 계속해오고 있는데 다른 생명들은 오죽할까. 특히 매미는 적어도 7년을 땅 속에서 살다가 밖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이 가로등 아래의 벽에 밤에도 세차게 우는 울음은 자신들의 남은 생을 조금이나마 더 길게 느끼고 싶어서 하는 것일 게다. 밤에도 울다 보면 천적에게 당할 확률도 배도 늘겠지만 그걸 계산할 새가 없다. 당장 그 짧은 생을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선 밤도 낮처럼 사용해야 하니까.
짧은 생 때문에 밤에도 빛을 찾아다닌 다는 것은 너무 슬프다. 다른 이유를 찾아보자. 사실 태초에 생명체가 만들어졌을 적에 밤에 비추는 빛은 지구 밖의 천체들에게서 나오는 빛들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달, 개밥바라기, 견우성, 직녀성, 북두칠성, 남십자성 등등. 그들이 먼저 시작한 것은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름답고 찬란한 빛들을 평생을 날아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고 수많은 형제들과 자매들을 잃은 후에야 그들은 그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 먼 거리에서 지구에 까지 닿는 그 빛은 밤하늘을 수놓아 가장 빨리 눈을 매혹하지만 가장 밝게 보이지는 않는다. 생명이 만들어지기 전 이미 지구는 대기를 만들어 놓았고 그 대기에서는 각종 기후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불나방(밤의 불을 찾는 벌레들을 통칭하겠다.)의 마음을 뺏는 가장 강렬한 현상은 역시 번개였을 것이다. 어둡고 어두운 밤을 밝히는 단 하나의 빛. 눈이 멀어 버릴지도 모를 그 강렬한 빛에 현혹되어 날아갔겠지만 그 빛은 일순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순간의 현상은 지속되는 무언가를 만들어 놓았다.
원시의 식물들 그리고 산소가 형성된 대기가 완성되자 번개를 통한 연소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번개가 내리치자 상당히 높은 확률로 마른 식물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수 분 아니 길게는 수 시간동안 빛을 내는 새로운 현상이 지구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 현상에 감격하며 불나방들은 달려든다. 너무나 밝은 그것은 닿을 수 없는 별들과 순간의 번개와는 다르게 쉽게 닿을 수 있다. 그리고 똑같이 너무 아름답다. 주홍, 노랑, 빨강의 빛이 섞여 오묘하게 타오르는 그것은 찬란히 빛나는 영원의 빛과 일순간의 강렬한 창과도 같은 빛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매력으로 모든 불나방들을 매혹한다. 하지만 매캐하다. 너무 매캐해서 몇몇 형제들은 정말 조그마한 거리를 두고 아쉬움만 꿀꺽 삼킨다.
그리고 다시 인간의 짧은 수명으로는 셀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이 지나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인간은 거리에 가스와 전기를 보급해 곳곳에 예전의 별, 번개, 모닥불을 대신할 것들을 세워놓는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불나방들은 그 새로운 물건에 감탄한다. 강렬한 빛. 밤을 낮처럼 만드는 빛. 어둠을 걷어내는 빛.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 빛은 차갑기 그지없지만 칠흑의 밤을 걷어낸다는 그 자체의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리고 불나방들을 다시 한 번 그 아름다움에 다가간다. 너무 먼 거리도 짧은 시간도 매캐한 연기도 이제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다. 빛에 닿는다. 따스하다. 그리고 그 따스함은 뜨거움으로 바뀌고 끝내 그들을 집어삼킨다. 그리고 재가 되어 소멸한다.
불나방들은 분명히 순찰을 도는 나를 괴롭힐 생각은 없다. 그저 빛을 따라갈 뿐이지. 참 어리석어 보인다. 빛을 향해 분명히 나아가지도 못해 나에게 부딪히고 빛을 향해 나아가도 그들의 소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은 분명히 의미 있다. 삶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도 의미 있으며, 빛의 아름다움을 좇아 사람은 알 수도 없는 길고 긴 시간을 노력한 그들도 의미 있다. 나는 사실 아름다움을 좇는 그들의 삶이 조금 더 마음에 든다. 누군가는 고작 아름다움 하나를 추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삶의 쓸모없음을 한탄할지도 모른다. 아니, 쓸모없지 않다. 그들은 분명히 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평생을 바친 멋있는 삶을 살았다. 나를 되돌아보면 과연 어떠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좇아 일평생을 건 노력을 해보았는가? 그런 적이 없다. 아직 내 삶은 많이 남았다지만 그들이 빛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만큼의 무언가가 내 마음 안에 있냐를 물어보면, 부끄럽지만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이 이루고자하는 그 무언가가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될 지라도 부끄러운 나는 그저 그들이 부럽고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