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빗속을 뚫고 한줄기 빛이 내려오는 아름답지만 파괴적인 장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뇌우 시에 보이는 번개이다. 기상나팔보다 강렬하지만 그 소리가 온누리에 퍼지기에 온 생활관의 잠을 깨울 정도는 아닌 천둥도 뇌우 시에 번개와 세트다. 총기나 핵무기 같은 인간이 인간을 멸종시키려고 만든 무기가 없던 시대에는 아마 인간에게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번개 자체를 신으로 모시기도 했으며, 번개를 다루는 신들을 강력한 위치에 두기도 했다. 하지만 번개는 구름과 구름, 구름과 대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방전현상으로, 천둥은 공기 중의 전기 방전에 의하여 발생하는 소리로 과학적 규명이 이루어진 지금. 뇌우라는 것은 기상 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다만 군대에서는 경우에 따라 좋기도 귀찮기도 한 기상 현상이 다른 점이겠다.
고등학교 때 한 번 번개가 학교 앞에 쳤다가 온 공중전화와 인터넷이 끊긴 적이 있었다. 사실 군부대는 진짜로 기계를 직격하지 않는 이상 그 정도는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백령도 근처에서 뇌우 경보 발령된 게 한 두 번이 아닌데 한 번도 장비가 망가진 적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사실 번개 때문에 레이더 박살나버리거나 발전기가 날아가면 번개보다 무서운 북한군 쳐들어오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혹시 몰라 대부분의 전자 장비들은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을 놔두고는 다 끄게 된다. 백령도에 피뢰침이 얼마 없는 것도 한 몫 하겠지. 번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기는 하니까.
물론, CCTV도 끈다. CCTV란 건 컴퓨터라서 번개 한 방이면 터질 위험이 매우 크다. 그러면 CCTV병을 겸하는 나는 재빨리 CCTV전원이란 전원은 다 꺼버린다. 사실 끌 전원이 한 두 개가 아니라 배우는데 오래 걸리기는 했다. 아, CCTV끄면 북한군은 누가 감시하냐고? 우리 귀신 잡는 필승의 해병대가…읍읍. 아니다. 우리 부대는 우리 힘으로 지켜야지. 초소의 초병들과 순찰병을 겸하는 내가 취약지역으로 나아가 수동으로 감시한다. 즉, 인간 CCTV가 되는 것이다. 다행히 취약지역을 감시하느라 순찰을 잠시나마 안도는 건 불행 중 다행이다.
CCTV도 확인하고 순찰도 확인했으니 다음엔 뭐가 있더라? 아, 군견. 우리 군견은 튼튼해서 번개 맞아도 살아남을 것 같다. 물론 거짓말이다. 번개 맞고 살아남을 생명체가 몇이나 되려나? 취약지역 감시가 대충 마무리되면 견사에 한 번 씩 가줘야 한다. 잘 살아있는지. 견사 안에 있으니 아프지는 않겠지만 놀라서 까무러치면 큰일이니까. 이런 걱정과는 달리 대자로 뻗어 견사에서 쿨쿨 자다 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오히려 괜히 깨웠나 미안한 맘이 먼저 든다. 뇌우로 지친 심신에 잠시 일어나 나를 바라보는 똘망똘망한 우리 군견들의 눈빛은 힐링 그 자체다.
세계 끝날 것처럼 울어대던 천둥과 하늘 구멍 난 것처럼 쏟아지던 비 그리고 어두운 하늘을 가르던 번개가 영원할 것 같은 몇 시간이 지나면 검은색의 고요한 하늘만이 남는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다시 껐던 장비들을 켜야 한다. 이거 정말 힘들다. 끌 때는 맘대로지만 킬 때는 맘대로가 아니라는 그 컴퓨터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인생사 쉽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전원은 왜 다시 켰는데 너희는 다시 살아 돌아오질 않는 거니?”라며 좌절하고 있을 때쯤 구원자가 오신다. 우리 헌병 따위는 닿을 수 없는 저 아득한 이과의 세계란 놀랍기 그지없다. 컴퓨터를 다루는 전산병이 와서 부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만지면 30분 내로 다 켜진다. 자다 일어나 이런 일을 하는 전산병이 불쌍하지만 나는 이과가 아닌걸. 그저 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 이과에게 감사할 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원상 복구되면 부대는 예전과 같아진다. 부대를 한 때 쓸어갈 듯 했던 뇌우는 없었다는 것처럼. 뇌우의 덧없음을 느끼며 근무를 끝내도 돌아갈 때면 사회의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피식 웃곤 한다. 어떤 기상 현상이 있든 별로 신경 안 쓰며 비가 오면 맞고, 번개가 치면 치는구나 생각하던 내가 뇌우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해서 일 것이다. 사회에서는 작은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 사람이 너무 가벼워져 못쓴다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그리고 그게 마냥 옳다고 생각하며 좀 더 무거운 좀 더 진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떠한가.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자그마한 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감동받을 수 있다. 이 새로울 것 없는 부정적인 분위기 가득한 부대에서 뇌우라는 일에 일희일비함으로써 군생활을 해 나아가는 심적 동력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반복된 군생활에 지칠 때면 뇌우를 기다리기도 한다. 작지만 새로운 삶의 변화, 그게 내 군생활에서의 뇌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