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미드

by baekja

보통 미드라는 말은 middle, 그러니까 중앙의 줄임말로 사용된다. 요즘에는 더 나아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의 중앙 포지션을 흔히 미드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헌병반에서 불리는 미드는 상당히 다른 말이다. “근무 미드냐?”라는 것은 중앙에서 근무하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오늘 새벽 근무인지를 묻는 말이다. middle이 아닌 midnight의 줄임말이다. 이 근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 자는 새벽시간에 깨어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다가 새벽 3시에 일어나 근무를 가야함에 있다.


군생활 처음 시작할 때 근무 중 지나다니는 차량이 없는 미드 근무 자체는 좋아했지만 미드 근무를 가기 전까지 일어나는 게 고통스러워 미드 근무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새벽 2시에 알람 맞춰놓고 일어나 선임들을 깨워야 한다는 부담감은 깊은 잠에 들지 못하게 했고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단 한 번도 선임을 못 깨운 적은 없었지만 선임을 깨워야하는 조심스러움과 깜깜한 생활관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선임을 찾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잘못했다. 불 한 번 잘못 켜서 같은 생활관에 있는 선임이 단체로 일어나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익숙해질 때쯤 나는 이 부담감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4일에 5번 근무하는 초병에서 3일에 5번 근무하는 군견병으로 바뀜에 따라 근무시간이 훨씬 많아진 대신 새벽에 깨움을 당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근무시간은 많아졌을지언정 편하게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아주 행복해졌다. 편하게 자고 누군가의 깨움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은 전에는 경험할 수 없던 신세계였다. 순찰을 가장 길게 돌긴 하였지만 그 정도 육체의 고통은 덜어낸 정신적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미드 근무 때 이것저것 일이 많긴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별로 없었고 근무 시간이 일정치 못한데서 나타난 숙면의 어려움에 대한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전날에는 밤부터 새벽 3시까지 근무를 하다 보니 그 여파가 미드를 해야 하는 다음날까지 이어져 미드 근무하기 직전까지 눈이 말똥말똥 감기지 않는 경우가 엄청 늘어났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열두시에서 새벽 두시에는 잠에 들 수 있어 자고 상번할 수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나중에 생겼다.


이별을 경험한 이후로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 미드 근무에 자고 들어간 것이 언젠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밤낮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고 미드 근무자체에 문제는 없었지만 낮에 업무를 보고 일과를 할 때마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 불면증은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후에도 계속되어 거의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눈에는 다크서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근무 중에는 말도 줄었으며 속에서 우울해지고 짜증이 늘어나는 게 너무나 잘 느껴졌다. 차라리 주간병사로 근무시간이 일정했다면 불면증이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때마다 고통은 배가 되었다. 결국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휴가를 길게 써서 간신히 수면 패턴을 되돌려 놓은 것이 지금이다.


하지만 오늘 새벽 1시에 잠이 들은 나는 새벽 3시에 복귀한 후 첫 미드 근무를 뛰게 되었다. “남희억 병장님 일어나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습관은 무서워 몸을 일으켜 전투복을 갈아입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떠지지 않았다. 간신히 비몽사몽인 상태로 근무지에 도착했을 때는 도저히 버티지 못하리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후임한테 양해를 구하고 먼저 CCTV를 봐달라고 부탁한 뒤 옆에 의자에 앉아 20분쯤 졸았다. 그렇게 졸다보니 후임이 “남희억 병장님 순찰 나가실 시간입니다.”라며 나를 깨웠다. 미안하기도 왠지 낯부끄럽기도 해서 벌떡 일어나 순찰을 돌기 시작하니 잠이 깼다. 그리고 미드 근무 때 존 것이 얼마만인지 생각하며 수면 패턴이 돌아온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이 새벽에 일어나는 걸 몇 번을 더 해야 하나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처음 헌병이란 특기를 선택할 때부터 아마 이 미드 근무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지만 근무 자체는 즐길 수 있을지언정 불면증은 다시 일생에 겪고 싶지 않은 경험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이 불면 기간에 도서관에서 연등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부대 사람들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이라도 있어야지.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 받은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던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반복되는 나의 이야기들을 끝까지 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다. 아마 이제는 그렇게 새벽 세시까지 못잘 정도로 힘든 일도, 그 때까지 풀어내지 않고 담아 놓기엔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그저 늘 하듯이 반복적인 일들을 행하며 잔잔한 일상이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을 예측하고 조정할 수는 없지만 정상적인 수면 패턴으로 인해 항상 조금은 피곤한 미드 근무가 되기를 바라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군대 일상-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