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오감에 의존해서 세상을 자각하고 자신의 뇌에서 재편성한다. 이 오감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시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은 청각이다. 눈을 감아도 들리는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등은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물론 모든 소리가 다 듣기 좋고 나를 안정시켜주는 것은 아니지만 소리의 종류는 어찌 되었든 나의 군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들리는 소리 중 내가 빼놓지 말고 들어야 할 소리가 있다. 딱 오늘 유튜브로 뉴에이지 곡을 듣던 나에게 평화와 안식을 깨뜨려 버린 소리이다.
“전달! 전달! 전달! 훈련 상황! 훈련 상황!” 높이 째지는 간부님의 목소리와 그걸 받쳐주는 소리의 내용은 여유롭던 내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조급하게 출동하게 만들었다. 이후에 들리는 이런 저런 소리는 별로 듣기 좋지 않다. 방독면과 방탄조끼를 매며 나는 슥슥 소리. 총기를 꺼내다가 어디 부딪혀 나는 쇳소리가 섞인 탁 소리. 그리고 상황이 벌어진 곳으로 급히 뛰어가는 군화의 탁탁 소리. 매번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소리다. 그리고 무전기에서 나는 지직 소리와 간부님들의 무전기 대화가 끝나면 가장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훈련상황 종료.” 물론 내 잔잔한 마음을 바꾸는 소리가 이걸로 끝일 리 없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기상나팔 소리가 아닐까 싶다. 정말 들을 때마다 사람의 짜증을 유발하는 이 소리는 새벽 6시 30분에 사람을 깨우기에 딱 알맞은 소리이다. 아마 사회에서 알람으로 쓰면 내 기분은 더러울지언정 가장 효율적이긴 할 것 같다. 그 자매품으로는 “남희억 병장님, 근무 가셔야합니다.”가 있다. 잠이라는 세상 달콤한 휴식에서 다시 회색빛의 차가운 부대의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정말 썩 기분 좋지 못하다. 간신히 일어나 반쯤 눈을 뜨고 생활관을 나가는 문을 열면 바람이 나에게 부딪힌다. 그리고 내 기분은 갑자기 변하기 시작한다.
아직 겨울바람은 아니라 날카로운 바람의 위잉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 풀에 스쳐지나가는 스윽하는 소리 그 소리가 참 좋다. 그리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풀들 사이에서 열심히 그리고 구슬프게 우는 귀뚜라미의 귀뚤귀뚤하는 그 소리가 좋다. 늦여름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버린 몇 안 되는 고독한 매미의 마지막 맴맴 소리도 좋다. 그렇게 지나가는 중 서걱서걱하며 밟히는 흙과 자갈의 소리에 짜증으로 요동치던 내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그리고 도착한 근무지엔 웃으면서 반기는 후임들의 경례소리가 참 좋다.
이제 순찰을 나갈 시간이다. 탄알이 들어있는 탄창을 탁탁 두드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보고 후 고생이 많다는 당직 사관님의 말씀에 웃으며 순찰을 떠난다. 아뿔싸! 비가 조금씩 내린다. 비 내리는 걸 좋아하지만 총이 젖으면 생각보다 고역이다. 다시 올라가 총을 내려두고 곤봉을 들고 나온다. 곤봉이 손에 감기며 나는 착착 소리가 듣기 좋다. 한결 가벼워진 맘으로 밖으로 나가 순찰을 돈다. 순찰 내내 나를 따라오는 비 떨어지는 톡톡 소리가 기분을 참 좋게 만든다. 원래라면 짜증을 냈어야 할 펜이 종이에 스치면서 나는 순찰카드 적는 소리가 비에 약간 젖어버린 순찰카드 탓에 나지 않아 기분이 더 좋아진다. 비에 젖어 자갈을 밟을 때 나는 자박자박 소리와 부대까지 들리는 파도소리가 참 좋아 이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아무 생각 없이 흥얼거리기 시작한 콧노래는 순찰이 끝날 때까지 내 기분을 비행기 태우기만 하고 내려놓을 줄을 모른다. 그리고 순찰을 돌고 와서 부스럭부스럭 거리며 옷을 정리하고 하번 할 준비를 한다. 당직사관님의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근무를 끝낸다. 근무 끝나고 후임과 담소를 나누며 생활관 돌아오는 길에 높아지고 밝아진 후임의 억양에 나도 기분이 더 좋아져 웃으며 생활관으로 돌아온다.
아차! 비에 맞았으니 씻어야 한다. 비를 맞고 난 후에 노곤한 몸을 이끌고 옷을 찾아 덜컥 문을 열고 샤워실로 들어간다. 샤워실 창문을 여니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샤워기를 트니 쏴아아 하는 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제법 음악이 된다. 이번엔 가만히 눈을 감고 두 소리를 듣자 비오는 폭포를 맞으며 가만히 명상하는 기분이 들어 편안해진다. 그렇게 즐거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방송에서 부식 가져가란 소리가 들려 노곤했던 몸은 피로에서 풀려나 활동할 준비를 한다. 부식을 담아와 배분하고 컵라면의 비닐을 부욱 뜯는다. 시원한 그 소리가 듣기 참 좋다. 그리고 라면스프를 넣은 후 쪼르르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 다음 그 컵라면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위잉 소리가 내 기대감을 높여 더 행복해진다. 기분 좋게 라면을 후루룩 먹고 나니 이제 좀 할 게 보인다. 책을 읽는다. 책에 손이 스치면서 나는 소리와 책이 넘어갈 때 나는 펄럭 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제 잘 시간이다. 이불을 덮고 몸을 잠시 편한 자세로 만드는 스삭스삭 소리에 기분이 참 좋다. 그리고 소리가 사라지고 잠이 든다.
늘 이렇게 소리를 기분 좋고 행복하게 들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이 소리들이 나의 군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나에게 다소 위안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가끔 매일 보이는 똑같은 풍경이 답답할 때면 바람 잘 통하는 곳에 가서 눈을 감는다. 바람의 시원한 촉감, 바람 부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가 어느 한 바닷가에 앉아 혼자 평온히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상상을 하게 해준다. 이런 상상에 기분은 청량해지고 잠시 군부대가 아닌 바닷가에 놀러온 느낌을 받는다. 부대를 바라보고만 있을 때 얻을 수 있던 경험과는 다른 경험을 겪었다는 새로움과 잠시나마 자유로워진 느낌에 기분이 참 좋아진다. 내가 가끔은 좋아하는 시각을 버리고 청각에 집중해 소리를 듣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