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그 모습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들
아이가 자라는 건 기쁘고 놀라운 일이지만, 어느 순간 문득 마음이 먹먹해질 때가 있습니다. 어제 했던 동작을 오늘은 하지 않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달리던 손짓이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그걸 보고 '잘 컸구나'라고 말하면서도 내 안 어딘가에서는 작은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매일매일 아이는 조금씩 달라지고, 그 변화는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은 어제의 아이와 작별을 반복하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표정, 이제는 하지 않는 습관, 그리고 더 이상 필요 없는 나의 손길까지.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작별을 받아들이는 연습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부터 꺼내보려 합니다.
육아는 늘 비슷한 하루의 반복처럼 느껴집니다. 같은 시간에 울고, 같은 이유로 먹이고, 같은 장소에서 재우는 일들. 그 안에서 부모는 익숙함에 기대어 겨우겨우 하루를 버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날과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했던 그 안에서 아이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줍니다.
늘 찾던 장난감을 더는 찾지 않거나, 이전에 무서워하던 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거나, 혹은 아무렇지 않게 당신을 바라보다 어느새 엄마라는 말을 또렷하게 내뱉는 순간.
그 변화는 크지 않지만, 부모에게는 시간이 멈춘 듯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어제 그 아이는 이제 없는 걸까?"
그 질문은 서운함도, 놀라움도 아닌 작은 이별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천천히 자리를 잡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하루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에게는 그 하루가 완전히 새로운 장면으로 채워지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잊고 있던 표정 하나가 불쑥 눈에 들어옵니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웃던 모습, 잠든 얼굴에 살짝 남아 있던 미소, 입꼬리보다 먼저 반짝이던 눈동자.
그 표정은 분명 어딘가에서 매일 보던 것 같았는데 지금의 아이를 아무리 바라봐도, 이제는 그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씩 자라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며 그 표정들은 아이의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사진은 남았지만, 그 표정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때의 촉감, 냄새, 온도,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고 나는 그걸 뒤늦게 알아차리고 나서야 그 표정과 작별해야 했다는 걸 깨닫습니다.
아이의 변화는 그렇게 다가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한 채 떠나버리는 모습들. 그건 너무 조용해서 아프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쉽습니다.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이 말로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지나갈 거야."
밤마다 울던 아기가 어느새 통잠을 자기 시작하고, 끝없이 떼를 쓰던 시기가 점점 줄어들며, 정말로 그 순간들은 하나씩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토록 지나가길 바라던 시간이 막상 지나가고 나면 묘한 허전함이 남습니다. 고됐던 순간인데도 그때만 가졌던 눈빛, 그때만 나눴던 온기, 그 모든 것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기억이 되니까요.
'지나간다'는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좋았던 것도, 나빴던 것도, 온전히 그 시기여야만 가능한 장면들이 있다는 걸 우리는 지나가고 나서야 압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게 되죠. 힘들었던 순간도,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만의 풍경이었다는 것을.
분명 몇 시간 전만 해도 생생했던 장면인데, 잠깐 다른 생각에 잠기고 돌아서면 그 순간이 흐릿해지곤 합니다.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무슨 소리를 내며 웃었는지, 그 웃음에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조차 기억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육아는 매일이 다급하고, 그 안에서 감정은 금방 흘러가고, 기억은 버텨내기 위해 자꾸 뒤로 밀립니다. 그래서일까요. 어제 찍은 짧은 동영상 하나를 다시 볼 때마다 "이런 웃음을 지었었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놀라는 날이 많아집니다.
우리는 아이의 성장을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아니,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도 그 장면을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밤, 무심코 눌러둔 메모장이나 사진첩 속 짧은 기록들이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이 됩니다.
그 기록은 단지 아이의 변화만을 남기는 게 아니라, 그때의 나, 그 순간의 내 마음을 함께 불러오는 창이기도 합니다.
성장이라는 건 그렇게 빠릅니다. 아이의 키가 하루아침에 자라는 건 아니지만, 반응이 달라지고, 시선이 달라지고, 익숙했던 행동이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은 예고 없이 훅 다가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 품에서만 안기던 아이가 이제는 낯선 얼굴에게도 미소를 짓고, 나보다 다른 장난감에 먼저 손을 뻗습니다. 그걸 보고 기뻐해야 하는 걸 알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또 하나의 시기를 보내는구나' 하는 마음이 뒤늦게 따라옵니다.
특히 9개월 아기처럼 발달이 급격히 이루어지는 시기에 부모는 그 변화의 속도를 체감하게 됩니다. 정서적으로도, 인지적으로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 앞에서 가끔은 내 감정이 너무 느리게 따라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정말 그만큼 빠르게 자라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부모에게 매일 조금씩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을 배우게 만듭니다.
매일같이 스쳐가는 아이의 표정, 소리, 움직임들 속에서 어느 날은 분명히 느껴집니다.
"아, 이제 이 순간은 끝났구나."
그 마음이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건, 그 시간이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라졌다고 해서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때의 온기까지 잊히는 건 아니죠. 작별은 늘 예상보다 조용하게 오지만, 그 뒤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남습니다. 그건 어떤 사진보다 또렷하게 기억 속에 머무는 감정이고, 아이가 자라며 내게 남긴 흔적입니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며 내 안에 머물고, 나는 작별하면서도 사랑을 쌓아갑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수많은 장면들이 비록 다시는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자란 감정만큼은 내 삶을 조금씩, 더 깊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눈에 띄는 성장과 동시에, 아주 작은 이별의 연속입니다. 어제의 모습은 오늘과 다르고, 오늘의 모습은 내일 또 바뀌겠지만, 그 변화 속에 쌓여가는 마음은 결코 작아지지 않습니다.
지나간 장면들이 아쉬운 건, 그만큼 내가 그 시간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오늘도 아이를 바라봅니다. 조금 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조금 더 천천히 작별하고 싶은 마음으로.그리고 그렇게 오늘을 또 함께 살아냅니다. 익숙했던 표정과 몸짓을 보낸 자리엔 어김없이 새로운 감정과 사랑이 도착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