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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람회의 그림]

by 우영이

몇 년 전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강좌가 계기가 되었고, 자서전 쓰기는 애당초 나와는 거리가 있었다. 글쓰기는 젬병이요,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즐거워 빠짐없이 출석하였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여유롭게 도착한 날은 근처 구덕산 산책로를 따라 편백 향 가득한 숲길을 걷는다.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와 저수지에서 내뿜는 분수는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오솔길 옆 자락에는 부산의 시인 중 가려 뽑은 시가 돌에 새겨져 발걸음을 느리게 만든다. 언덕 위 공간에는 숲 속 도서관까지 자리 잡았다.
십여 명이 모인 자리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다. 강사가 과제로 내준 글쓰기는 뒷전으로 하고, 어울릴 듯 말 듯, 한 문장 한 줄로 뭇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관심을 가져본다. 휴식 시간에 이어 강좌 종료 후 점심 식사가 이어지고 서로의 사생활 이야기까지 주고받는다. 사람의 속마음은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라고 한 말이 빈말이 아니다.
강좌 이수 후에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다. 덕분에 작가들이 주관하는 여러 행사에 초대되어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식견을 지녔고 그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다. 누구나 한 가지씩의 전문 분야는 있기 마련이지 않나.
두어 차례 연락이 오가면서 본의 아니게 코가 꿰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독서 모임에 함께하자는 요청이다. 기존 회원들에게 나를 과대평가하는 사설도 늘어놓은 모양이다. 주중과 주말에 독서 토론 모임 두 곳에 임하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토론회에 동행하는 것이 맞는지 중심을 잡지 못하였다. 오락가락하는 마음이 날아온 문자 한 통에 며칠간의 갈등을 접었다.
화요일 저녁 찾아든 곳, 최근 개관한 도서관이라 기존 여느 시설과 비교가 된다. 학당이라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마주 보는 좌석 배치다. 회장의 안내로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첫 대면이라 간단한 다과를 챙겨 책상 위에 놓는다.
독서회 발제자로 오늘 모임을 이끌어 간다. 간단한 자기소개에 이어 사전에 준비한 네 가지 발제문이 차례로 이어졌다. 참석한 이들이 입 맞추듯 난해한 질문지였다며 따가운 눈총으로 마주하는 듯하다. 주고받는 토론에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는다. 깊이가 더해진다. 삶의 무게가 엿보인다.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전람회의 그림' 독서 모임 덕분이다.
시간에 쫓기어 발제를 마무리하면서 첫 모임을 뒤돌아본다. 말이 중복되거나 끼어든 것은 아닌지. 책 한 권의 내용에 이토록 다양한 의견이 녹아들 줄이야. 예술이 그렇듯 한 곳에 빠져드는 일은 다르지 않다.
차기 연도 도서 선정을 뒤로하고 독서 모임을 마무리한다.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첫 대면의 하루가 저문다. 다음 달은 자유 도서라 부담을 들었다. 편한 잠자리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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