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은 어디에서나]

by 우영이

겨울이 멀찍이 달아난 듯 둘러진 외투가 무겁게 다가온다. 24 절기 중 하나인 대한이 코 앞인데 화단에는 매화 꽃망울이 흰색을 내민다. 봄은 아직 서두르지 않는 듯 기온만큼은 그렇지 못하다.
요즈음 생활 스포츠 종목으로 부쩍 인구가 늘고 있는 공원 골프에 푹 빠졌다. 해뜨기 전 희뿌연 달그림자를 벗 삼아 클럽을 휘두른다. 저녁노을이 물들어가고 서녘 하늘 겨울 철새가 떼를 지어 둥지로 날아들 무렵에야 운동장을 빠져나온다. 운동량이 많아지고 스윙이 반복되면 될수록 지식의 깊이를 더해간다.
내 집 놀이터처럼 익숙한 구장을 벗어나 강변 운동장으로 찾아간다. 교육 이수 동기생과 시간이 조율되어 처음으로 접하는 곳이다. 홀 간 간격이 어른 두 팔 벌려 닿을 정도의 공간에서 운동하다 몇 곱절 넓은 홀에 이르니 마음부터 여유롭다.
우리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음을 새삼 느낀다. 출발선에는 벌써 몇 개 조가 대기 중이다. 여기는 규모로 보나 운동장 상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설레게 한다. 부부와 팀을 이뤄 출발하는데 두 사람의 경기력이 부럽다. 정확한 티샷과 공 다루는 능력이 예사롭지 않다. 시간이 흐르고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행동 하나하나에 눈길이 머문다. 같이 걸으면서 몇 마디를 건네는데 구력뿐만 아니라 대회 입상 이력까지 훌륭한 조력자의 만남을 영광으로 돌린다.
자신보다 나은 기량을 가진 사람과 동행하는 일은 큰 즐거움을 준다. 상대의 자세에서 나의 실수를 줄이고 한 단계 높은 역량을 채울 기회다. 항상 있는 일이 아니다. 부부의 금실은 덤이다.
준비한 과일과 음료로 배를 채울 즈음 집에서 준비해 온 초밥을 슬며시 내민다. 잠깐 함께 한 운동 시간이 서로의 마음을 가깝게 만들어 준다. 사람 사는 정을 불러온다.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보내는 아쉬움만이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너그럽고 편안한 오후를 기원한다.
오후 일정은 오롯이 두 사람의 선택만 남았다. 오전에 라운딩 한 경기장을 한 바퀴 다시 가기로 하였는데 빈자리가 없다. 두 사람이 나뉘어 각각의 조에 클럽을 대기시킨다. 경기가 진행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느니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조정 경기장을 지나 갈대와 억새가 뒤섞인 강 언저리다. 깊숙이 흐르는 강물은 살찐 하마처럼 느릿느릿 깊이를 알 수 없다. 하늘을 토막 내고 강 건너 산자락을 막아선 대교를 지나는 육중한 도시철도 두 칸은 느긋하다.
차례가 되어 출발선에 들어섰는데 나와 한 조를 이룬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보지만, 인기척이 없다. 몇 분을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는다. 규정에 따라 클럽을 맨 마지막으로 돌리는데 혼자 남은 나만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이런 경우가 있나, 운동장에 경기를 임하기 위해 한 시간가량을 기다렸는데 동행들이 자리에 없어 경기에 나가지 못한다니. 말로만 듣던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얼떨결에 자리를 빼앗겼다. 마땅히 함께 나갈 사람을 구하지 못한 그것이 패착이다.
규칙은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설령, 내가 피해를 보게 되더라도 예외가 있어선 안된다. 공정한 적용만이 모두에게 편안함을 준다. 이 운동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줄을 잘 서야 한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시간적 손해를 보게 만든 이들을 탓해 본다. 아니 자신에게 화가 난다.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이 안타깝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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