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다니는 27개월 인생 손주가 친구 손가락을 깨물었다. 이번이 두 번째다. 손가락에 이 자국이 남아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아이 아버지까지 어린이집에 전화하여 따져 물었단다.
이런 난처한 일이 있나. 자식 부부가 시름에 잠겨 목소리가 축 늘어졌다. 가해 아이의 부모로서 가정에서 단단히 지도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단다. 다른 아이를 문 행동 자체는 분명 잘못된 것이기에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담당 선생님과 상황을 공유하기로 했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러한 행위는 고의적 공격이 아니라 감정 표현의 미숙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이라고 한다.
가정에서 훈육하지만 어떤 연유로 일이 생겼는지 과정을 알지 못한다. 주변 영상이라도 챙겨봐야 할까 보다. 물림 사고는 감정보다 상황 파악이 먼저라고 한다. 또이런 경험은 사회성을 배우는 과정이고 갈등도 성장의 과정이란다. 아이들은 또래와 부딪히고 서운해하고 다시 가까워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사회적 행동 방식을 배운다.
깨물기나 깨물림은 어른들이 볼 때 충격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아이들 세계에서는 아직 감정과 행동이 분리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란다. 중요한 것은 이 경험을 통해 아이가 조금씩 배워간다는 점이 아닐까. 아, 이렇게 하면 ‘친구가 아프구나. 내가 싫었던 건 말로 할 수도 있구나. 친구와 놀려면 서로 지켜야 할 게 있구나.’ 이런 깨달음은 실제 관계 속에서 충돌을 겪으며 더 깊게 자리 잡는다고 한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표정과 늘어나는 어휘 수를 떠올린다. 영상 통화로 마주하는 모습은 할비 할미의 눈에 넣어도 모자랄 판이다. 저런 꼬마가 어쩌다 다른 아이를 물게 되었을까. 가까이 있으면 꼭 안아 주고 싶다. 아이들은 매일 새롭고 더 나은 표현을 익혀 가며 한 걸음씩 자란다.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과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속도를 결정짓는 건 우리 아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피해자 부모의 덧붙여 온 말이 가슴을 짓누른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된다며 ‘아이의 행동은 기관 생활 할 때 좋지 않게 작용할 테니까’라며 교육을 철저히 하란다. 어린이집에서는 분리해서 밀착 관리하겠단다.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먼 옛적 우리가 자라고 아이들을 키울 때와는 너무도 다르다. ‘싸우며 큰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나, 우리 아이만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식만 소중히 여긴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육아를 배우고 커뮤니티에서 관계를 맺는다.
부모의 안정된 태도는 아이의 기준점을 만들어 주고, 그 행동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건 부모의 마음이고 유아를 믿어주는 시선이 결국 아이의 내일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