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멀리 도망가듯 하루가 달라지는 2월을 보내고 자연이 만물을 토해내는 3월이 코앞에 섰다. 늘 이맘때쯤이면 기다려지고 설렌다. 여느 곳의 시작과 달리 학년도가 마무리된 후, 새 학기를 앞두고 이번에는 어떤 아이들과 만남이 이루어질까 기대를 한다.
오전 일과가 끝나면서 급식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바짓가랑이를 좌우로 흔들어 작은 소리가 그날의 수고로움에 손뼉 치게 만든다. 학생들은 1분이라도 먼저 먹으려고 두 계단씩 건너뛰어 달음박질이다. 복도와 식당 입구에는 귀를 자극하는 지도 교사의 호루라기 음이 성가시다. 한 끼 배를 채우는 점심시간은 결투의 장 구경꾼처럼 밀려오고 밀려 나간다.
이때가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만날 기회다. 다양한 연령대와 남녀 구성이다. 한 주에 두 번씩 얼굴을 대하니 가끔은 서로의 속마음을 내놓는다. 여기저기서 웃음 대신에 한숨이 더 정겹다. 어느 반 누구 때문에 ‘더 빠르게 늙는다’. 정말 ‘못해 먹겠다’라는 신세타령까지 등장한다. 그만두고 싶어도 자식이 어려 어떻게 할 수 없고 무슨 핑계를 만들어서 휴직이라도 해야 할 판이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전보다 녹록지 않은 건 사실이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세월을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지낸다. 현직에 있을 때는 발 등의 불에만 신경 쓰느라 옆과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퇴직 후 한발 물러나 객관적인 자세로 동료와 아이들을 살펴보는 짬이 생겼다.
강사라는 신분으로 나에게 주어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여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본성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교실은 지식 전달이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원칙과 도리에 어긋난 행동은 굳이 참견해야 직성이 풀린다. 인성 교육이 별도로 행해져야 할 항목인가. 언젠가부터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 교육이 뒷전으로 밀렸다. 댓바람에 밀려가는 지푸라기처럼 어떤 것이 우선해야 할 일인지 순서가 바뀌었다.
전년도까지 강의 나간 학교의 관리자에게 전화가 왔다. 안부에 이어 올해에도 아이들을 위해 지도를 해 줄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다. 감사의 인사와 더불어 일정이 나오면 수업에 참여하겠다며 통화를 끝낸다.
중년의 나이에 하릴없이 왔다 갔다 시간만 흘려보내는 일보다 내가 지닌 능력을 재능기부라는 자세로 어디에서든 지식 전달과 인격도야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지속해서 하고 싶다. 몇 차례나 더 부름을 받을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신념으로 교실에 들어설 준비를 한다. 아니 실제 마지막일 수 있다. 생물학적 나이보다 법적 현상은 도리가 없다.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오래도록 아이들의 머리에 기억이 되는 시간이 되고 싶다.
이전보다 아이들이 귀엽게 다가온다. ‘할아버지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그래’하고 등을 쓰다듬고 이름을 물어본다. 앞 호칭은 덤이리라. 나의 이름이 불리는 것은 친밀도가 더해져 학생들과의 거리가 좁혀졌다는 증표다.
주변까지 챙기는 나날이다. 운동과 책 읽기에 파묻혀 한 달을 지냈다. 머지않아 새로운 강의실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과 학습의 장을 연다. ‘처음처럼’ 자만하지 않고 이 시간이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우치며 하루하루를 여닫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