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앞다투어 기지개를 켠다. 하얗고 보랏빛을 띤 목련에 이어 노란 개나리와 풍성한 벚꽃까지 거실 너머 창밖으로 고개만 움직여도 새로운 세상을 포근하게 안겨준다.
새 학기를 맞아 출강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만나는 아이마다 기대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가진다. 무한한 가능성의 청소년기, 내가 지나왔던 시대와 견주어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대부분 환경이 갖추어진 시대에 풍족한 학창 시절이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하다.
가끔 얼굴을 책상에 파묻고 있는 학생들이 가여워 다가간다. 어디 아픈 곳이 있는지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 허리를 곧추세운다. 지난밤에 무슨 일로 모자란 잠에 빠졌을까. 다행스럽게도 자세를 가다듬고 경청에 이어 활동지를 작성한다.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본다. 봄과 함께 찾아오는 졸음은 목고개가 연신 리듬을 타게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교사가 졸거나 딴짓하는 학생에게 수리검처럼 던져서 맞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교탁 앞에서 날아온 탄피에 화들짝 잠을 깬다. 매체에서는 딴지를 걸 때 분필을 던졌고 교사의 전유물처럼 비친다.
칠판에 사용한 도구는 오로지 색깔별로 분필이라 일컫는 탄산칼슘이나 석고를 주성분으로 배합해 만든 필기구가 전부였다. 손가락에 허옇게 묻고 어쩌다 칠판에 기댄 까닭에 양복 자락에 느닷없이 그림이 그려진 사실도 모르고 돌아다닌 적도 있다. 쉬는 시간 청소 당번이 빽빽하게 쓰인 자국을 지우면 날리는 가루는 성가시게 만든다. 분필 지우개는 교실 창밖 벽면에 커다란 자국을 만들어 지적받기도 하였다.
가루 날림 문제 등으로 한때 퇴출 순서를 밟기도 했다. 2000년대 대체재들이 대거 등장했고, 한국의 국민 소득도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옴에 따라 분필보다 훨씬 비싼 보드마커가 소모품으로 사용하여도 더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이 되지 않았나. 화이트보드가 등장하면서 교실과 교사의 위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손에 분필 자국이 덜 묻게 끼우는 도구가 학기 초마다 다양하게 등장하였는데 이제 그럴 이유가 없다.
언제부턴가 교실 환경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스마트 교실이 구축되면서 전자칠판이 필수화되었다. 단순한 칠판이 아닌 교실의 수업 문화를 바꾸는 새로운 도구다. 디지털 교육의 발전에 발맞춰 새로운 양방향 학습 환경을 완성한 셈이다. 뛰어난 연결성과 똑똑한 소프트웨어 직관적인 기능으로 향상된 수준의 미래형 교육이 가능하다고 할까. 전용 펜으로 원하는 바 색깔과 굵기를 목적대로 표현한다. 급하면 손가락으로 획을 만들어도 아무런 불편함이 따르지 않는다. 교실에는 원칙적으로 필기도구가 소용없다. 쉬는 시간이면 꽉 채워진 칠판을 지우는 수고로움도 사라졌다. 터치 두세 번으로 화면을 빈 곳으로 만든다. 서로가 에너지 소모를 덜었다.
편리한 만큼 부작용도 따른다. 기기마다 비밀번호를 설정해 허락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시스템 종료를 하지 않았을 때 학생들이 접근하여 동영상이 재생도는 바람에 쉬는 시간이 온통 춤판이 벌어지거나 자기들끼리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라고 했던가. 기기의 보급으로 여러 면에서 교실 환경은 개선되었다. 그에 못지않게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유용하게 이용하는 길만이 남았다. 매시간 잠금장치 해제를 하느라 등을 돌리고 약속된 버튼을 누르는 고충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