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웬수야!]

by 우영이

만남은 기대와 즐거움을 안긴다. 보고 싶은 사람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가끔 부딪히는 걸 피하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 도망갈 수 없는 때도 있다.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둥지를 튼 지 이십여 년이 지난 처제가 잠시 귀국을 하였다. 직장을 다니면서 두 남매가 학교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피고 있다.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그곳에서 배움에 매달려, 전문직으로 만족하며 여유로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단다.
혼사 말이 오갈 무렵에 부모 형제를 떠나 멀리 홀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에 반대가 여간 아니었다. 어른들의 걱정이 쌓여 주름살을 늘게 만들 정도다.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을 쫓아 새로운 인생을 펼치겠다는 의지에 더는 말릴 처지가 못 되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애달픔도 그리움도 숯불의 재처럼 사그라들었다. 단지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길 빌었을 것이다. 형제보다는 부모의 마음이 늘 염려된다. 이틀이 멀다고 걸려오는 보이스톡이 빈 곳을 채운다.
여느 때보다 귀국 과정이 편했다지만 좁은 공간의 압박은 휴식이 제일이리라. 한나절이 넘는 시간의 비행기 탑승은 온몸을 짓누르는 모양일 것이다. 전화기로 환영 인사를 한다. 여전히 씩씩한 목소리다. 잦은 통화는 아닐지라도 아내의 수화기 너머 감정에 억눌렸던 기억이 스친다. 처제와 형부의 관계를 떠나 망망대해에 외로이 버티는 돛단배처럼 마음이 허허롭다.
약속한 전원주택으로 모인다. 한 시간여를 달려 닭들이 뛰어노는 집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가방은 던져두고 온돌방 부엌에 불부터 지핀다. 가랑잎처럼 마른 참나무 장작은 도끼로 속을 드러낸다. 이글이글 불꽃을 피우는 아궁이는 반으로 채워진 무쇠솥 물이 수증기를 내뿜어 올린다.
부엌에 적당한 간격으로 통나무가 얹힌다. 온돌 바닥이 미지근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살갗을 맨몸으로 버티기 어렵게 만든다. 저녁은 순수한 집밥이 차려졌다. 된장 시래기와 냉이 등 봄 내음도 함께 한다. 차 한 잔의 여유에 이어 창고에 마련된 탁구대에 라켓을 휘두른다. 어설픈 자세지만 공을 주고받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목소리가 높아진다. 자매 간 대결도 흥미롭다. 경기에 지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한 판이다. 아내의 승리다.
고개 들어 맞이하는 북극성 하늘을 뒤로하고 세 모녀가 한 방에 모였다. 달아오른 방바닥 덕분에 담요가 한몫한다. 묵직해진 등허리를 지지며 지난날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전달된다. 학창 시절 고되었던 통학 시간이 공부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즐거운 시간으로 바뀐 이야기와 사 남매 사이에 얽힌 불편함도 올려진다.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몇십 년 만에 꺼내 보는 보따리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자매 간 모녀간 대화는 거미줄에 연 걸리듯 이어졌다 끊기기를 반복하다 어느새 조용해진다. 오늘 같은 이 순간이 지나면 언제 이 같은 시간이 또 만들어질까. 영원한 물리적 공간은 없는 법이니.
만남은 새로운 도전을 만들어 낸다. 짧은 시간의 즐거움에 긴 이별이 가까워진다. 부모의 품에서 형제의 정을 가득 담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장모님의 건강이 허락된다면 기약할 수 있으리라. 다음날 봄꽃 축제장으로 세 사람을 태우고 갈 인력거꾼만이 먼저 이불을 덮는다. 매화꽃을 배경 삼아 세 모녀의 인생 사진이 건져 질려나 기대를 한다.

월요일 연재
이전 23화[교학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