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둘의 재촉이 시작된다. 요청을 넘어 강압적이다. 아니 협박이나 다름없다. 아내와 딸이 입을 모아 들볶는다. 얼마 전 모녀가 나로 인해 한 차례 예약까지 물거품이 되게 만들었으니 둘러대도 소용이 없다.
금년이 가기 전에 이제는 어른 되는 의식을 가져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딸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세로로 갖다 대면서 작은 방으로 사라진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다투듯 사람부터 데려오라는 말에 얼굴 잡티부터 제거하란다. 지금까지 여섯 번 강산이 변하는 삶을 이어오면서 직장 생활과 아들이 장가들 때까지 거리낌 없이 지내왔다. 남의 눈 때문에 스스로 움츠러드는 일은 나와는 별개로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집안의 두 여자가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말다툼이 또 벌어진다.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간다. 그러다 먼저 한마디 던진다. 내가 갔다 오면 데리고 올 것이냐. 대답 대신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더니 넌지시 넋두리하듯 받아넘긴다.
병원 특별 행사에 맞춰 방문을 한다. 아내의 손을 잡고 접수처 앞에 섰다. 순서에 이르러 상담이 이어지는데 점과 잡티 제거를 같이 하는 것이 낫겠단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애초의 행사 가격에 잡티 제거를 합쳐 처음 가격의 두 배가 넘는다. 시술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얼굴에 마취 연고가 발라지는데 피부가 화끈거린다. 몇 분 후 위치를 바꿔 레이저 시술실로 향한다. 눈을 감고 있으니 얼굴에 쏘아대는 뜨거운 열기는 따끔거리는 수준을 넘겨 고통의 연속이다. 티 없는 얼굴 만들기는 이토록 큰 통증을 동반하는가.
‘사람은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나이 사십 이전까지는 부모의 유전이 얼굴을 만든다. 사십 이후는 자기가 만든 얼굴이다. 부지런히 덕을 쌓은 자는 그 얼굴에서 덕이 빛날 것이다. 학문과 깨끗함을 추구한 사람은 선비 다운 고고함이 배어 있을 것이다. 반면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찬 인생은 그 얼굴에 불만과 불평, 자기중심적인 소견으로 자기 혼자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흔적들이 묻어나 있을 것이다.
두 번 만에 이루어졌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좋아라 하는 일에 마냥 거부할 수 없다. 이제는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바로 결정하였다. 예뻐지려면 고통이 따라야 하는 것인가. 얼굴 잡티와 점 제거를 받으려다 통증이 성가시어 두 번 다시는 시술대에 몸을 맡기고 싶지 않다.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이 성장하면 어느 시점에 배필을 얻어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요즘 세태가 결혼은 선택일 뿐이고 설령 결혼을 하더라도 부부 중심의 삶을 으뜸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형제가 여럿이라 자기 것 챙기는 일이 오히려 뒷전이고 서로를 위하는 행동에 정이 커갔던 시절이 우리 대의 모습이었다.
딸이 어떤 녀석을 우리에게 선 보일지 사뭇 궁금하다. 서른 넘긴 자식이 짝 없이 지내는 것이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주말이면 부모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안타까움으로 와닿는다. 서로 마음이 연결되고 챙겨 주는 정성이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있을까. 욕심을 내려놓고 다섯에 세 가지만 맞으면 되지 않으랴. 맞춤형도 아닌데 자기 입맛에 꼭 들어맞는 상대는 이상에 불과하다.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내듯 내가 원하는 대상이 얼마나 있을까. 자식의 행복을 마다할 부모가 세상에는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하는 나날을 기대한다. 여보게!. 어디 있다 이제야 온 거야. ‘어서 오게나’ 반가운 마음으로 외치는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