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뜨거운 볕 아래 목이 말라 애타게 비를 기다리며 물 조리개로 퍼다 나르던 기억을 뒤로하고 어느새 배추 모양이 웬만큼 만들어졌다. 무는 무성한 잎 아래 흰 뿌리가 땅 위로 솟아올라 팔뚝 굵기만큼 자랐다. 배추 포기는 김장 담그기에 넉넉하지는 않지만 크게 모자람은 없을 듯하다.
무는 떨어지는 기온에 수확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시기를 놓쳐 다 키운 농작물을 유용하게 쓰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기예보에 눈이 자주 간다. 주간 예보에 민감해진다. 배추는 김장 일정에 맞추기 위해 우선 보온 덮개를 펼쳐 임시방편으로 뽑는 시기를 늦춘다. 두 세 포기는 쌈과 배춧국의 재료로 차에 싣는다. 노란 배추 속은 아삭하고 달달한 맛을 식탁 위로 이어준다. 텃밭 농사를 짓는 기쁨이 따로 없다. 내가 심고 수확해서 먹으니 먹거리에 대한 안전에는 친환경 무공해의 최고 상품이다.
텃밭 정리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강나루로 향한다. 잘 정리된 체육 시설이 꾸며져 있다. 야구장과 농구장에 이어 파크 골프장이 넓게 눈앞에 다가온다. 최근 관심을 가지게 된 운동 종목이기에 처음으로 찾은 구장이다. 자동차를 세워두고 공과 클럽을 챙겨 운동장으로 향하는데 앞서가는 사람을 좇아간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데 부부가 운동장에 나왔단다. 처음 만난 사람과 함께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덕분에 널찍한 마당으로 달려가 마음껏 휘둘러보는 기회를 얻었다.
마흔다섯 개 홀이다. B구장부터 잔디를 밟는다. 낯선 구장의 운동장 구조는 공의 방향이 마음먹은 대로 나아가지 않는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타수를 줄여 나간다. 보기가 줄어들고 파와 가끔은 이글이 나온다.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며 응원해 준다.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아 야외 활동에 모자라는 것이 없다.
라운드 전후 사정에 따라 느리게 걷기도 하고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부부의 뒤를 따른다. 근처에서 제조업을 하면서 틈날 때마다 운동장에 나오는 모양이다. 나와는 비슷한 연배인데 그의 부인과는 동갑내기였다. 남편과 아내가 경기를 이어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서로를 챙겨 주는 장면이 가슴을 저민다. 그린 가까이 올린 공에는 파이팅을 외치고 구역 바깥으로 나간 공은 타격 자세와 힘 조절을 일러준다.
부부는 경기장에 나가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잔디 위를 걷는 일이 건강뿐 아니라 서로가 자기주장만 늘어놓는 일은 줄어들었단다. 구력이 늘어나면서 승부욕보다는 둘의 애정이 쌓여감을 고맙게 여기는 형세다. 남편과 아내가 같은 종목으로 취미 활동으로 이어지는 일이 이렇게 부러울 수가 있나. 나는 왜 이렇게 하지 못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경기 막바지에 이른다. 코스가 마무리될 때마다 서로의 조언이 그치지 않는다. 공치는 거리와 방향은 물론이고 가정 일까지 대화의 중심에 있다. 제삼자와 경기를 하면서도 서슴지 않고 주고받는 표현들은 두 사람의 너그럽고 온화한 인품까지 보여 주는 듯하다. 두 자녀가 요즘 추세를 앞서가는 연령에 결혼하여 손주까지 안겨 주었다니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지만 상대적 만족감은 당사자의 가치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몇 경기를 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지만 다른 일정이 있어 아쉽게도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먼저 구장을 빠져나왔다. 초겨울 붉게 드리우는 노을에 둔치의 억새 군락은 일렁거리는 강물에 하얀 꽃배를 만든다. 마음만 가지면 옆 집 나들이 가듯 다가갈 수 있는 거리에 이같이 시간적 여유를 누리는 시설 이용은 부러움만 가득하다.
이제 시작이다. 아내에게도 똑같은 공과 채를 준비해 주었다. 시작이 반이라 했다. 처음으로 서로를 맞추어 함께 운동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아내는 온라인에 동호회부터 가입하는 민첩함을 보인다. 관심만큼이나 실력을 쌓아가길 기대한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 했다. 누구 못지않은 부부애를 기대해 본다. 행여 싸움이나 생기지 않을는지 자신을 다잡는 계기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