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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봄날]

by 우영이

사람이 살면서 세상을 마주하는 마음은 제각각 다르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에도 사생결단을 낼 듯이 다툼을 벌이고 갈등에 분함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길지 않은 삶을 되돌아보면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한 일터에서 삼십사 년 간 큰 어려움 없이 지내다 가족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얼마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퇴직을 하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여기지만, 여유와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에서 새로운 봄이 다가왔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출근을 위해서 급하게 챙겨야 할 일도, 업무로 동료나 상사와 언쟁을 주고받을 것도 없어졌다. 뒤돌아보면 자신의 주장을 펼치다 핀잔을 받기도 하고, 주변의 눈총 아닌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속 전체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기에 후회는 없다. 대신 그 상황에서 상대의 동의를 구하면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못내 든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시간에 쫓기듯 행한 나만의 취미생활과 하루하루의 일상이 함께 지내는 가족들에게는 상처로 남고 그것들이 쌓여 큰 병을 얻게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고 이야기했던가? 나 자신도 그전에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에 무신경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내와 어머니가 병원 신세를 지면서 갑자기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연이은 두 사람의 입원은 지금껏 행해오던 내 삶의 일정을 빼앗았다. 친구들과의 모임, 수십 년 간 매일 써 오던 붓글씨 등이 뒷전으로 밀리고, 정성은 부족할지라도 환자 중심으로 생활을 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원할 당시보다 병의 증세가 나아져 조금씩 일상생활을 같이 누릴 수 있다는 것에 작은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남편에 자식 둘, 뒷바라지하면서 학원까지 운영해 온 이십여 년이 아내의 몸에 무리를 가져온 것이다. 조금이라도 일찍 짐을 서로 나눌 수 있었더라면 하는 반성의 시간이다. 나 위주의 생활을 하면서 상대에 대한 배려나 공감보다는 이해를 바라며 지금까지 지내왔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나온 시간은 이제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가득하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사람은 계기가 있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인생 이정표에서 보는 큰 발자국만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직장에서의 관계가 가족보다 먼저였기에 가까이 있는 가족과는 오히려 멀어졌다가 이제 자신 주변 사람의 입원과 직장의 퇴직, 이런 것이 가족을 우선하는 지금의 나로 바꾸었다.


사랑은 멀리 있거나 큰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실제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이기에 어쩌면 결국 큰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 작은 행복을 찾고 나아가 넓은 사회로 연결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삶이 아닐까?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세상은 다양한 관계에서 꾸려가는 세상살이가 다양한 의견이 많아지는 사회다. 작은 사랑이 모여 큰 기쁨으로 가족의 아픔을 포근함으로 감싸고 하찮은 손짓에서도 다른 마음의 행복을 다시 기다리게 한다.


젊은 시절에 가슴 가득한 포부를 안고서, 성공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리는 야생마처럼 왕성한 실적만 내세울 것이 아니다. 이제는 성숙한 삶의 발자국으로 가족과 주변을 챙기고 돌아본다. 즐거움과 아픔을 함께 하면서 공감하고 동화(同化)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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