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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의 기대]

by 우영이

주방 바닥은 발 디딜 틈 없이 음식 만든 도구가 널려있다. 손이 많이 가는 손두부 준비로 갈아 놓은 콩물이 넘쳐 지뢰밭이나 다름없다.


채소 건조기에는 지난가을에 수확한 무 채를 썰어 몇 개 층을 이루어 말린다. 뒷마당에 묻어 둔 배추는 노랗게 속이 차 쌈으로 최고다. 준비할 것이 쌓인다. 직접 기르는 청계와 토종닭 알이 상자에 담겼다. 이동할 때 손에 쥐어지는 짐 갯 수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발걸음이 가벼운데 말과는 달리 보자기까지 동원된다.


선물 받은 기차표는 새벽을 가른다. 맞춰진 알람보다 잠이 먼저 깨 옷차림을 한다. 목도리와 가죽 장갑까지 장롱 속에서 바람을 씐다. 서두른 덕분인지 택시 기사의 스릴 운행 탓인지 기차 출발 시간보다 이십여 분 빠르게 지정 좌석에 앉는다.

부부는 자연스럽게 한 몸인 듯 서로 어깨를 기대어 잠이 들었다. 목적지까지 십여 분 후 도착할 즈음,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떠 두리번 거린다. 앞차와의 안전거리 유지를 위해 서행 중이라는 안내 방송이 반복된다. 아들에게 이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도착하는 역으로 마중을 오고 있는 중이라는 문자가 와 있다.

역에 내려 출구로 찾아가는 길은 미로처럼 에스컬레이터 와 엘리베이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지상으로 나간다. 만나기로 한 출구와 반대방향이다. 샛길을 건너 가족이 상봉한다. 차에 오르는데 뒷자리에는 돌 지난 손주가 웃음을 머금고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든다. 급한 마음에 안아주고 싶지만 자리가 떨어져 있어 뒤로 미룬다.


아빠!, 아빠를 연거푸 부른다. 아기 재롱에 아내는 벌써 입이 귀에 걸렸다. 집까지 도착하는 십여 분 남짓 동안 부부는 릴레이 하듯 손주의 이름을 외친다. 두 달 전의 모습과는 또 다른 성장이 펼쳐진다.


지난주 이전 집보다 평수가 더해진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축하 겸 손주를 돌봐주러 왔다. 며느리는 삼 모녀가 처음으로 며칠간 여행을 간다. 아들의 육아를 거들기 위한 방문 요청에 흔쾌히 짐을 챙겨 나섰다. 이때 아기 엄마의 영상 통화벨이 울린다. 반가운 음성으로 인사를 받고 즐거운 휴식을 당부한다.


집에 도착하여 문이 열리자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고 손주를 품에 안는다. 이내 보드레한 피부가 볼에 와닿는다. 책꽂이에 놓인 책을 꺼내어 책장을 넘기다가 손을 들어 도움을 요청한다. 아비의 동화 구현이 시작되었다. 읽기가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책이 손에 들려있다. 음악 연주 버튼도 누른다. 다중화다. 음악 듣기와 책 보기가 같이 이루어진다. 그림 카드와 장난감이 거실 바닥을 채운다.


놀다가 졸음이 오면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잔다. 어느 정도 잤나 싶으면 밥 먹을 시간이다. 이유식을 아기용 실리콘 숟가락에 담아 내밀면 직접 손으로 잡아 자신의 입으로 향한다. 작은 입이 끊임없이 우물거린다. 딸기 두 알, 포도 한 개도 할머니 손에서 낚아 챈다. 맛 표현은 맞장구로 두 손이 쉼 없다.


나흘의 육아가 끝이 보인다. 놀아주고 먹이고 잠을 재우는 일이 쉽지 않지만 재롱을 눈에 담고 영상으로 남긴다. 자식 성장은 어느 세월에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다. 손주는 더 마음이 쓰이는데, 저녁상을 받아 자식과 술 한 잔 건배가 이어지고 지난날이 식탁 위에 오른다.


부모는 자식이 그 자식을 낳아 길러도 아이처럼 걱정을 한다. 내 부모가 자식에게 그러하듯이 늘 염려하는 당부를 이어간다. 며느리의 부탁이 귓전에 울린다. 아버님, 둘째 갖기 전에 부모님과 추억의 시간을 누리고 온다는 말에 반가움과 기대감이 크다. 둘째 손주를 안겨 주리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행복한 웃음이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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